살아가면서 배우고 싶은 것들

왜 무국적 현상에 주목하는가

by 한지애

오늘 날 우리는 '글로벌'한 사회, 초국가적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가상' 세계 속에도 살아가고 있는데

난 아직 그 세계는 잘 모른다. 브런치 공간도 가상이긴 허지만 나에겐 콘텐츠 개발, 접근, 공유 등 소통의 창이다.


말라위에서 생활 했을 때도

북한 인권 활동을 할 때도

개발협력이든 인권활동이든 그쪽 분야로 접근할려고 하면 나에겐 이해하기 더 힘들었다. '기술'과 특정'접근'을 통해서, 익히고 기르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뜨거운 '심장'이 없으면 안되지 않는가? 그러나 차가운 이성도 필요하다. 차가운 이성과 실수없는 전문성과 기술도 뜨거운 심장이 그를 위한 동력이 된다.


요즘 내가 몰두하고 있는 주제는 무국적 현상이다.

'무국적자'

'탈북자'

무슨무슨 사람

이상하게도 난 영어와 한국어로 했을때 동의어가 동질된 의미로 전달이 안되는 것을 느끼는데 그 두드러진 예가 바로 이 '-자' 붙은 글자들이다.


Stateless person 무국적자

North Korean defector 탈북자


한국어에서 더 부정적인 사회적 스티그마가 가득 담겨진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한국에서 내가 만약 이 주제들을 접했다면 아마 지금같은 근본적 탐구와 호기심을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무국적 현상은 나에게 여러가지로 복합적인 계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첫째, 북한 인권상황과 특히 여성들의 삶과 탈북후 중국에서의 생활, 생존에 대해서 공부를 하던 때,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수 없는 북한 여성들의 삶에 대해 큰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여기에는 북한 사람인 것을 밝혀질 경우, 다시 북송되는 페널티가 있기에 여성들은 침묵 속에서 살아간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의 자녀들이다. 북한여성과 중국남성 사이 태어난 아이들 중 약 3000 명 정도가 무국적 상태라도 예측하고 있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가 없으나, 중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도착한 탈북 여성들 중에서도 중국 남성 사이에 자녀가 있을 경우에는 북한에서 태어난 자녀가 아니기에 탈북 아동들과 다른 지위를 갖거나 한국에서도 무국적 아동이 된다.


둘째, 한나아렌트는 내가 항상 영감을 받고, 배우는 정치 철학가이자 근현대 빼놓을 수 없는 사상가이다.

그녀 역시 2차 대전 전 1930년대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반유대주의 (Anti-semitism) 분위기가 고조되고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의한 분리가 심해지자 1933년에 프랑스 파리로 떠난다.

이후 40년대 초에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마침내 미국행으로 더 멀리 떠나며 거기서 시민권을 받기까지 십여년의 세월을 무국적자로 살아간다.

때로 학자들은 한나아렌트가 독일을 떠난 때부터 무국적자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언제 그녀가 무국적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공식적 합의는 없는 듯 하다.

한나아렌트는 연구자로서, 철학자로서 자기 중심적이거나 어떤 특정 사상의 틀에서 설명하기보다 니체처럼 세상을 어떻게 볼것인가, 무엇에 주목해야하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놓치고 있는지를 그녀만의 언어와 현상학적 기술로 보여줬다.


어쩌면 이 동기만으로 나의 무국적에 대한 탐구는 실제로 무국적 경험을 한 사람에 대해 부족하고 피상적일 수 있다. 그리고 무국적도 다 같은 무국적일 수가 없기에 이를 일반화하는 것도 불가능할것이다.


살아가면서 무언가에 깊게 빠지고,

사람들이 흔히 겪지 않는 것들을 겪으면서 우리에게 전달이, 전파가 충분이 되지 않은 휴머니즘적인 이야기.


아렌트는 극단으로 폭력적이고 슬픈 현실을 보면서도 동시에 사랑에 대해서, 그리스 철학과 고전적 낭만을 포옹하며 살았던 사상가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그것이 정말 멋있다고 본다.


늘 누군가는 해야하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 바로 이 이유때문이다.

사람들이 다 하는 뻔한 이야기가 아닌

정말 몰랐고, 알기 힘들었고, 접하기 힘들었던 주제, 이야기들.


하나씩 하나씩 내가 다리가 되어보려한다.


무국적현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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