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힘을 가진 글을 쓰고 싶어요
영영 돌아올 것 같지 않던 가을이 왔다. 가장 먼저 가을 내음이 찾아오더니 가을 하늘이 뒤따라 왔고, 사람들 모두가 하늘을 보며 감탄을 하고 있을 때 남몰래 스르륵 가을비가 찾아왔다. 그렇게 으름장을 놓던 무더위는 9월까지도 기세를 몰아갈 것만 같더니 하루 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혹시나 가출한 무더위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까 여름 옷가지도 모시 이불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나. 오늘 아침기온은 무려 18도란다. 설마하는 마음에 얇은 가디건 하나를 걸치고 출근했다. 아뿔싸. 기상청은 절대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오늘은 믿었어야 했나보다. 매꼬롬 하게 내민 맨다리가 우중충한 하늘 아래에서 괜시리 쓸쓸하고 애석해 보였다.
날씨가 추워지니 자연스레 글이 쓰고 싶어 졌다. 으잉? 추워진 날씨와 글이 무슨 상관이냐고? 왜 관계가 없나. 날씨가 더우면(특히 올해처럼 살인 폭염일 때엔 더더욱)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더 격렬히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진다. 물론 내부 온도를 시원하게 하여 환경을 쾌적하게 만든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 것은 전기세 폭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의 재력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할 것이다. 올해 여름에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꾹 참다가 오늘 최초로 공개하자면,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피서를 보내고 집으로 와선 회사보다 더 고통스럽게 몸뚱아리와 전기세 걱정으로 지끈지끈한 머리를 침대에 고이 뉘이고 움직이지 않았다. 밥도 잘 안 해먹었다. 밥과 요리를 하면 방 온도가 더워지니까. TV나 영화에 집중할 힘도 없었고, 책은 뭐 말할 것도 없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올 여름 내가 한 일은 눈을 감고 명상 아닌 명상을 한 것, 그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여름, 그 수많았던 명상의 나날 중 어느 날 문득 깨우친 사실이 하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너무 불만스럽다는 사실, 나는 이 불만스러운 것들을 외면할 자신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외면하려 할수록 내면에 화가 쌓여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이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민을 가고 싶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언젠가 낳게 될지도 모를 내 아이에겐 다른 국적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모든 면이 미성숙해 보이는 한국이 싫었다. 흔히 살기 좋다 말하는 국가들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여행을 다녀오면 올수록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문제점들이 너무도 많이 보였다. 고쳐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닌데 그걸 어느 세월에 고치려나… 고쳐지긴 할까… 어느새 나는 내가 눈을 감기 전까진 절대 변할 일이 없다고 단언했다.
매일 뉴스를 볼 때마다 쌓이는 화를 해소할 창구가 필요했다. 내가 옳다 생각하는 바를 글로 쓰고 싶었다. 하지만 비루한 실력과 얕은 지식 때문에 섣불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날카로운 글을 쓰고 싶다. 상대방의 심장을 정확히 강타해서 그도 모르게 내 주장에 끄덕일 수 밖에 없는 그런 예리한 글을 쓰고 싶다. 누군가를 공격하는 글을 쓰고 싶단 말이 아니다. 내 주장을 정확하게 담은 논리 정연한 글을 쓰고 싶다는 뜻이다.
어릴 땐 괜히 폼나보이는 감성적인 글을 쓰고 싶어했고, 근래엔 흔적을 남길 요량으로 일기처럼 그날의 생각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면 이젠 명확한 글쓰기가 쓰고 싶어졌다. 독자층을 정확히 고려한 맥아리있는 그런 글 말이다. 어릴 땐 내 글에대한 비판이 두려워 애매모호 두루뭉술하게 썼다면, 이제는 타인의 비판을 받아들일 자세도 되어 있고, 왠만한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마음도 생겼다. 내 생각과 주장을 세상에 펼쳐보이고 싶다. 혹시 내 생각이 한국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데 (아주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이 이렇게 생각하게 된 가장 강력한 동기이다. 결국 나는 글로써 한국을 바꾸고 싶다.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로,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나라로 말이다. 그러려면 내 주장을 잘 펼쳐줄 무기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글이 되어 준다면 좋겠다. 아무리 써도 소진되지 않는 특급 총알.
간절히 희망하는 걸 갖기 위해선 큰 노력이 필요하 듯, 쉬이 얻을 수 없는 글 실력을 위해 지금부터 연마해야 한다. 노력이 아닌 ‘노오력’이 필요한 험난한 길. 한번 재밌게 부딪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