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 인테리어
결혼 준비를 하면서 추구해야 할 삶에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단기간에 이렇게 큰 지출을 해본 적이 없기에 나만의 소비 기준이 필요했다. 세상에 예쁜 건 많았고, 예쁜 건 하나 같이 다 비쌌다. 사회생활을 하며 업그레이드된 센스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그 브랜드를 알지 못했다면, 차라리 인테리어 감각이 없었다면 좋았을 것을...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봤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셋트장 인테리어들을 보며 자취방에 대한 로망을 키웠다. 창이 크고 해가 잘 드는, 복층에 거실과 주방, 공부방이 있는 곳에서 당연히 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구할 수 있는 방은 5평이 채 안 되는 조그만 원룸이었다. 현실과 드라마는 많이 달랐지만 내게 주어진 이 방을 어떻게든 예쁘게 꾸며보고 싶었다. 네이버에 '5평 원룸 인테리어'를 검색해서 하루 종일 사진만 쳐다봤다. '피터팬 자취방 구하기' 카페에 올라오는 우리 집 인테리어 자랑 글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꿈꾸곤 했다.
'나도 저렇게 내 집을 예쁘게 꾸며놓고 살거야.'
당시에 북유럽 인테리어가 한참 유행했다. 순록 얼굴만 댕강 잘려서 벽에 걸어놓은 듯한 헌팅 트로피, 책꽂이 대신 벽을 뚫어 선반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인테리어가 유행했다. 다 예뻐서 보는 사진마다 족족 저장해두었다. 그런데 나중에 모아놓고 보니 사진마다 콘셉트가 가지 각색이더라. 따뜻한 느낌의 일본 스타일의 인테리어도 있었고, 쨍한 색감의 알록달록한 북유럽 컨셉도 있었다.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 사진도 뒤섞여 있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서 의욕만 앞섰던 나는 일단 예뻐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구매하기 시작했다. 까만 책상과 새빨간 서랍장, 흰 선반과 타탄체크 커튼까지. 하나씩 봤을 땐 분명 예뻤던 아이템인데 하나로 모아놓으니 정신 사납기가 이를 데 없었다.
게다가 공간 규모를 생각하지 않고 질러서 5평짜리 원룸은 더 협소해졌고, 이를 수습하기 위한 아이템을 또 지르느라 내 월급통장은 늘 가난했다. 그렇다고 다 갖다 버릴 수도 없었다. 일터에서 피 땀 흘려 번 돈으로 샀기에 아까웠고 기능적으로 멀쩡했기 때문이다. 물건을 살 때 큰 고려 없이 일단 덮어놓고 지르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지난 4년간 제대로 경험했다. 사기는 참 쉬웠고 버리긴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지난 4년간 벌인 나의 시행착오들을 후회하진 않는다. 물론 돈은 돈대로 들고 애초 목표했던 바를 이루진 못했지만, 적어도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신혼집을 꾸밀 때 내가 지향하는 컨셉이 무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세상에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던데. 이럴 때 쓰는 말인가보다. 하하.
마음에 들면 일단 사고 보아야 하는 성미도 많이 자제하게 됐다. 물건을 사기 전에 뜸을 들이는 시간이 전보다 길어졌다. 나만의 컨셉이 생겼고, 기준이 생겼고 그에 따라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모두에게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나에겐 정답일 수 있는 기준을 세웠다.
1. 물건을 위한 물건을 사는 일은 지양하자.
(ex. 수납함, 라탄 바구니 같은.... / 물건이 많지 않으면 수납함이 필요 없다.)
2. 물건을 살 때 다른 물건과의 통일성을 고려하자.
(예를 들면 디자인(원형/각진형), 색깔(무채색, 베이지/화이트, 짙은 네이비, 차콜 등), 주변 물건들과의 조화)
3. 지금 당장 없어선 안 되는 물건부터 차근 차근히 사자.
(배송비가 아까워 한꺼번에 많이 사다 보면, 굳이 필요 없는 물건을 사게 될 수도 있다. 2500원 아끼려 5천 원을 더 쓰지 말자.)
4. 당장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도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자. 1주일 혹은 1달 후에도 사야 한단 생각이 든다면 그땐 뒤도 돌아보지 말고 사자.
5. 꼭 사고 싶지만 가격이 좀 비싼 편인 물건과 썩 맘에 들진 않지만 가성비가 괜찮은 물건이 있다면, 가격이 좀 더 나가더라도 꼭 사고 싶은 아이템으로 사자.
(결국 미련이 남아 사고 싶은 걸 다시 사게 된다. 돈이 이중으로 나간다.)
6. '5번'의 경우, 최대한 손품, 발품을 다 팔아서라도 최저가로 사도록 하자.
7. 공간에 여백을 두자. 물건으로 다 채우려 하지 말자. 비울 수록 공간이 환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8. 모조리 비싸고 최고급 제품으로 채울 필요가 없다. 대체품도 비슷한 디자인도 얼마든지 찾으면 나온다.
9. 여분을 많이 사놓지 말자. 일단 지금 당장 쓸 것 하나씩만 사자.
물건을 많이 사서 쟁여놓게 되면 그 물건을 수납할 수납장이 또 필요하게 된다. 공간은 점점 협소해지고, 솔직히 지금 사놓은 여분은 언제 쓰게 될지도 모른다(중간에 취향이 바뀌어 영영 안 쓰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10. 어떤 물건을 사고 싶다면 일단 정리부터 해보자.
(옷을 사고 싶으면 옷장 정리, 책을 사고 싶으면 책꽂이 정리를! 예상외로 비슷한 걸 갖고 있는데 까먹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신혼 가구와 가전을 알아보러 다닐 때였다. 신혼부부를 위한 세트 판매가 많았다. 세트로 구성해놓으니 마치 그 모든 물건이 다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TV거실장+쇼파+침대+침대 옆 협탁+옷장+화장대+식탁' 구성으로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쇼룸을 그대로 옮겨서 우리 집에 Ctrl+V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걸 알기에 하나씩 뜯어놓고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먼저 TV 거실장이 꼭 필요한지 생각했다. 없으면 죽을 것 같나? 사는데 지장이 있나? TV 거실장이 있으면 오히려 거실이 더 좁아 보이고, 그 위에 먼지가 쌓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고, 선반 위에 물건을 습관적으로 올려놓게 되어 지저분해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과감히 구매 목록에서 제외했다.
그다음은 옷장. 남편이 자취 시절 쓰던 행거를 가져와 임시로 쓰고 있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다. 물론 미관상 예쁘진 않지만 그럴수록 꼭 필요한 것부터 산 후에 다시 고려해보자. 그렇게 구매 목록에서 제외!
그렇다면 식탁은? TV를 보면서 식사하는 습관이 있는 우리 부부에겐 식탁은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일단 내 자취방에서 쓰던 2인용 테이블이 있으니 쓰다가 불편하다 싶으면 그때 사기로 했다. 그러니 지금 당장 구매할 목록에선 제외!
그 외에도 쇼핑 사이트에서 꼭 필요한 것처럼 설명해놓은 아이템들을 보고도 웃으면서 지나칠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 마치 '생수 1병 사러 대형마트에 가서 정말 '딱 생수 1병만' 사고 올 수 있는 엄청난 내공'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싶다. 라면과 간식을 담아놓을 틈새 수납 트레이도 으리으리한 책꽂이도 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일단 없이 살아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사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유예기간을 좀 더 준 것이다.
아직은 초보이지만 소비 내공을 조금씩 쌓아가는 중이다. 여전히 내 메일함에는 쇼핑몰에서 보내오는 꼬드김 메일로 가득하다. 휴대폰 메인화면엔 쇼핑 앱이 보내는 푸시 메시지가 겹겹이 쌓여있다. '너희가 아무리 꼬셔봐라. 내가 넘어가나~'의 내공까지 올라서진 못했다. 그래서 아직은 최대한 그런 메시지들을 외면하려 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생각에서도 사라진다.
나만의 소비 기준을 세우니 물건을 살 때 한 결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무엇보다도 소비를 해도 찜찜하지 않다. 남들 추천에 따라 산 게 아니고 내 기준에 따라 사니까 '혹시 팔랑귀가 된 건 아닌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는 너무 집에 썰렁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들어도 상처받지 않는다. 나는 이런 내 집이 좋다. 내가 구상한 기준에 따라 하나씩 채워나가고 있는 우리 집. 물건으로 채우지 않은 공간에는 우리 부부의 추억을 채워 넣을 것이다.
P.S. 행여나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이 글은 미니멀리즘만 옳다고 말하는 글이 아니다. 난 내가 지향하는 바가 미니멀리즘이란 걸 깨달았을 뿐 이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자신만의 인테리어 컨셉을 찾고 그에 합당한 소비 철학을 세우고 지키는 게 중요하단 말이었다. 혹시나 오해하실까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