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날 불안하게하는 너, 누구니?

웨딩홀 계약하기 -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

by 유연





결혼까지 D-7개월



철학자 샤르트르가 말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산다. 선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크게 의식하지 않고 행하는 소소한 선택이라면 다른 하나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고민해야 하는 결단이다. 후자는 지금 이 순간의 결정에 따라 내 인생이 180도 달라질 수도 있고, 그에 따라 수반되는 비용(혹은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에 신중을 기할수 밖에 없다.


살면서 우리는 몇 번의 이런 중대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점심메뉴 정하듯 단순하게 결정할 수 없는 이 결정의 기로에 설 때면 자연스럽게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나에겐 십 대 끄트머리에 맞이한 대학 입학, 그리고 이십 대 중반에 맞닥뜨린 퇴사의 순간이 그랬다. 계속 알아보고 비교하고, 주위 의견도 물어보고,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면서 거짓말 조금 더 보태면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한 번의 결정으로 인생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니 섣불리 "그래! 일단 해보는 거야!"라고 말할 수가 없더라. 재고 따지고 고민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웠다. 물론 그 모든 과정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길의 성장통이었겠지만. 결혼 준비의 과정에서 만난 수 많은 결정의 순간들도 이와 비슷했다.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바뀔 수도 있고, 비용의 편차도 크다. 신중하게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을 줄지어 맞닥뜨리게 된다.


출처: google


결혼 준비가 꼭 고3 수험생활 같다고 생각했다. 수능시험을 향해 달려가는 수험생처럼, 결혼식이라는 마지막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예비신랑과 신부. 그 과정 속엔 수많은 숙제들과 모의고사를 치르듯이 때가 되면 해결해야 하는 미션들이 줄지어 있었다. 제출 마감일까지 숙제를 잘 풀어서 내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을 반복하는 여정.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숙제엔 정답도 해설지도 있었지만 결혼 준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첫 미션은 웨딩홀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난 화려한 결혼식 원치 않아!'라고 선언했기에 적당한 곳은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호텔처럼 으리으리하지 않아도 교통이 편리하고, 홀 분위기도 화려하지 않고 깔끔한 곳. 무엇 보다도 연회장 식사가 조금 맛있는 편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조건에 부합하면서 식대와 홀 대관료까지 비교적 저렴한 곳이라면 금상첨화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적.당.한' 곳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처음엔 '한번 알아나 볼까?'에서 시작했다. 광화문에 데이트하러 나갔다가 우연히 가성비가 좋다는 인기 웨딩홀 옆을 지나게 되어서 그냥 견적만 받아보겠단 마음으로 가봤다. 사실 프러포즈를 받은 후에도 미리부터 준비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미루고 있었는데, 일단 한번 발을 떼고 나니 뒤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아니 뒤가 보이지 않았다.



신부님! 왜 이제야 오셨어요. 인기 있는 시간은 진작 다 마감됐는데...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전에는 알아보셔야 해요.

처음 방문한 웨딩홀은 나름 핫플레이스 중 하나였다. 서울 시내에 있는 웨딩홀 중 '적.당.한' 곳이 몇 군데 없는데, 여긴 그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곳이었다. 깔끔한 분위기, 연회장 음식 맛, 교통편, 그리고 단독홀이란 게 마음에 들었다. 양가 부모님을 배려하는 부분도 있어서 더욱 좋았다. 하지만 내 마음에 들면 다른 사람들 마음에도 드는 법. 이미 원하는 날짜와 시간은 다른 사람이 계약해놓은 상태였다. 그나마 저녁 예식은 남아있다고 했지만 양가 모두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터라 저녁을 잡을 순 없었고, 비교적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늦은 오후 예식 한 타임, 단 한 날짜만 남아있다고 했다.


"남은 시간은 이날 하루뿐인데... 이 타임도 지금 계약 원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빨리 결정해주셔야 해요."


상담해주시는 분이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았다. 내 뒤에도 상담 예약하러 온 커플들이 여러 명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상상 속엔 없던 경쟁자들을 실제로 만나니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눈 앞의 케이크를 경쟁자들이 달려오기 전에 내 입에 집어넣어야만 마음이 놓일 것처럼 초조해졌다.


하지만 아직 상견례도 안 했는데 웨딩홀부터 덜컥 계약하는 게 말이 되나 싶어서 일단 좀 더 고민해보겠다 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른 웨딩홀도 이럴까?' 싶어 그날 2군데 정도 더 돌아보았는데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날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고 고민하다 일요일 아침해가 뜨자마자 S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있지... 우리 오늘도 웨딩홀 알아보러 다니면 안 될까? 나 너무 불안해."


출처: pinterest



그렇게 3주 동안 주말 이틀을 모두 웨딩홀 투어에 반납했다. '미션 컴플릿!'을 위해 전철과 두 다리에 의지해서 동서남북 분주하게 뚜벅뚜벅 돌아다녔다. '조금만 더 알아보면 괜찮은 데가 나오지 않을까?'란 믿음은 시간이 갈수록 흐릿해졌다. 많은 곳을 돌아볼 수록 원하는 게 또렷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웨딩홀투어 3주째가 되던 일요일. 오늘은 반드시 끝내겠단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100% 만족하는 곳은 없으니 80% 정도만 마음에 들어도 일단 계약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한 곳을 선택했는데, 또 다시 계약서 앞에 서니 마음이 흔들렸다.


현명한 선택일까?

내가 조금 알아본 건 아닐까?

가격이 남들에 비해 너무 비싼 건 아닐까?

더 저렴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혹시 있을까?


편의점에서 주전부리 사 먹듯 결정할 순 없었다. '신중해야 해. 꼼꼼해야 해. 밀당해야 해. 호구처럼 만만하게 보이면 안 돼.'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그렇지만 큰 금액을 이렇게 짧게 고민하고 결제하려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내린 판단에 대한 확신이 서기 전이어서 그랬나 보다. 그렇지만 지금 결제하지 않으면 이 마저 놓칠 수 있지 않은가? 초조했지만 일단 결제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또 불안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게 뻔했다.



계약 후에 홀가분해졌을까? 전혀. 더 나은 게 있을지도 모른단 찜찜함과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더 예쁜 데에서 할 걸 그랬나'란 미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선택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흔히 겪는 증상이다. 선택하기 전에도, 선택한 후에도 여전히 불안하다. 이때 깨달았다. 아무리 많은 선택지가 있다고 해도 모든 걸 다 확인할 수는 없다고. 그리고 적정 수준에서 만족하기로 했으면 더 이상 다른 옵션을 생각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만족하는 법'을 몰랐던 나는 결혼 준비를 하면서 크게 배웠다.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없고, 그 어떤 선택도 완벽할 수 없다는, 여태껏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인생의 진리를 몸으로 경험했다.


출처: 123GF.com


돌이켜보면 웨딩홀을 구하면서 느낀 불안감은 단 한 가지의 이유로 생겨난 게 아니었다. 넘쳐나는 정보들 사이에 내가 보지 못한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남보다 비싸게 결제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 수많은 웨딩홀 중 '과연 여기가 최선일까?'하는 불안감, 지금 놓치면 다른 이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내가 정한 웨딩홀을 부모님들께서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시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이 모든 종류의 불안감들을 극복해내려면 나 스스로 중심이 잡혀있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의 기준을 먼저 정해놓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디에 더 중점을 두고, 어떤 것을 포기할 것인지 미리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놓는 것이다. 재벌이 아닌 이상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으니까.


그리고 남들의 의견보다 자신을 믿는 게 중요하다. 내 결심이 남들이 무심결에 던진 한마디에 흔들리지 않도록 뚝심을 가지고 헤쳐나가야 한다. 생각보다 나의 결정에 '그건 별론데...'라며 한 마디씩 던지는 지인들이 많을 테니까. 내가 웨딩홀을 정했다고 했을 때에도 '거긴 교통이 별로던데', '더 예쁜데서 하지 왜 거길 했어'라고 하는 지인들이 꽤 있었다. 다들 원하는 기준이 다른 건데 '이왕이면 좋은 말만 해주지'라며 서운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말들 또한 아무렇지 않게 걸러서 받아들일 수 있는 현명함이 예비신부에겐 필요하다. 남들의 조언은 그저 '의견'일뿐 '법'이 아니니까.


결론적으로 나는 저렇게 현명하게 잘 헤쳐나갔느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많이 힘들었다고 대답할 것 같다. 현명하려고 노력했지만 나 또한 수 없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좌절하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결혼 준비가 앞으로 맞이하게 될 인생의 축약판 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수많은 상황들과 그 안에서 정답을 몰라 헤매고 있을 내 모습이 보인다. 부디 지금처럼만 잘 해쳐나갈 수 있길. 흔들리고 앞이 깜깜해서 불안해도 잘 이겨낼 수 있길.


수 많은 난관을 지나 빨리 알콩달콩 신혼생활로 가고 싶다. <출처: tVN 신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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