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모든 게 완벽할 순 없다

선택 장애와 완벽주의의 상관관계

by 유연

어릴 적 내 꿈은 '결점 없는 완벽한 여성이 되는 것'이었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은데 성격도 쿨하면서 늘 약자를 먼저 생각하고 게다가 공부까지 잘해서 친구들과 선후배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될 법한 그런 사람. 이를테면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윤지후(김현중)의 첫사랑이었던 민서현(한채영) 같은 이미지라고나 할까. 아! 설명을 좀 더 덧붙이자면, 극 중 민서현은 국내 최고 로펌 오너의 외동딸이자 파리 유학 중 국제 변호사에 합격했는데도 모델 활동도 하고 있는, 게다가 마음씨까지 아름다운 뭐 하나 모자랄 것 없는 인물이다. 여하튼 난 십 대때부터 만화에서만 등장할법한 그런 무결점의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가끔 김태희나 송혜교도 내장기관은 못생겼을 거란 농담을 하긴 하지만 어쩌면 그녀들이야말로 내가 꿈꾼 완벽한 인간의 현실판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보살 같은 성격을 지녔다고 칭찬받는 사람은 어쩌면 일 눈치가 없단 단점이 있을 수 있다. 일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에겐 이기적인 성격이 흠결일 수도 있다. 누구든 부족한 점 하나 정도는 지니고 있다. '인간적이다'란 말이 괜히 생겨났겠는가.


불완전체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완전체가 되기 위해 성장하면서 사는 게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 부족하기 때문에 실수할 수밖에 없고 이를 발판 삼아 발전하고 다시 실수하지 않게끔 노력하는 게 인생이다. 공자 왈 맹자 왈 같은 진부한 말이지만 이것이 진리다. 정말이지 머리로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친구들에게도 조언해주기도 했다. 너무 완벽하려 하지 말라고, 그럴수록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게 될 뿐이라고,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고 말이다.


모순 덩어리인 난 남에겐 조언도 잘 해줬으면서 스스로는 저 말대로 살지 못했다. 항상 남에게 나의 모자라는 부분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했다. 그래서 내 단점을 애써 감추기 위해 늘 노력했다. 행여나 누군가 그걸 알아채고 지적하는 날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창피하고 한심하고 속상했기 때문이다. 몇 년이 지나도 그 창피함은 잊히지 않는다. 완벽한 인생을 만들고 싶어서 그 오점을 애써 지우개처럼 지워보려 해도 자꾸만 좀비처럼 살아나서 나를 괴롭힌다.


choice-2692575_960_720.jpg


결혼식장을 계약하는 순간부터 나의 완벽증은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앞서 글에서도 썼지만 식장 인테리어가 경건하고, 홀 위치도 좋고, 피로연장 밥 맛도 훌륭하고, 거기에 가격까지 저렴한 곳을 찾고 싶었다. 지금은 '그런 곳은 없단다!'라고 단박에 말할 수 있지만 그땐 그런 곳이 어딘가에 박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자꾸만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 선택을 미루고 미뤘다. 선택지가 늘어날수록, 결정이 늦어질수록 마음의 부담감은 쌓여만 갔다.


새 보금자리를 정할 때에도 그랬다. 괜찮은 집을 보고 돌아와도 '이 집이 정말 베스트일까?' 생각했다. 이성적으로 따져보았을 땐 지금 이 집을 계약하는 게 맞았지만, 또 어딘가에 나를 기다리고 있을 베스트 아파트가 숨어있을 것만 같았다. 서울 시내 모든 동네를 다 뒤져서 검토하지 못한 게 못내 찜찜했다. 완벽하지 못한 선택에 만족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어야 했는데 자꾸만 알아보지 못한 동네들에 미련이 남았다.


스드메는 어떤가. 내 생애 한 번 뿐일지도 모른다는 단서가 붙는 특별한 미션. 그래서 더욱더 잘 해내고 싶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기에 알아보고 또 알아보았다. 괜찮다 싶으면 '그것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고 일단 '킵(keep)'해두고 다른 걸 더 찾아보았다. 찾고 또 찾고, 파고 또 팠다. 전철로 이동할 때도, 회사에서 짬 날 때에도, 잠들기 전까지, 아니 꿈속에서도 계속 알아보고 고민했다. 킵 해놓은 선택지들 중에서 결단을 내려야 했지만 '이것이 최고의 선택일까?'란 생각에 단숨에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그다음 날이 되면 또 다른 선택지를 알아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살림살이를 구매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름의 소비 기준을 세우고 미니멀리즘이 되겠다며 물건을 많이 구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소비는 더욱 신중해야만 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딱 하나의 물건만 구매하겠다 다짐했기 때문에 실수란 없어야 했다.


휴지통 하나 사는데도 이케아와 무인양품, 이마트 자주(JAJU), 다이소, 이마트몰, 11번가, 한샘몰 등을 돌아다니며 사이즈, 편리성, 디자인을 각각 비교했다. 천삼백케이와 모던하우스, 개인이 운영하는 쇼핑몰까지 들여다보았다. 비슷한 디자인에 저렴한 대체제를 팔지도 모른단 생각이었다. 요즘 핫한 집 꾸미기 앱에서 검색해서 얼마나 대중적인지, 후기는 없는지 더 알아보았고, 그렇게 했는데도 부족하다 싶으면 레몬테라스 같은 정보 공유 카페에 들어가서 가성비 대비 괜찮다고 소문난 또 다른 브랜드가 있는지 검색했다. '원 샷 원 킬'이라 했다. 한 번에 완벽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 부단히 알아봐야 했다.


수저세트, 밥그릇, 국그릇, 면기, 접시, 오일병, 반찬통까지... 뭐 하나 쉽게 산 것들이 없다. 그래서 구매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비교적 오래 소요됐다. 자취할 땐 성급하게 주문했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많기 때문에 천천히 오랫동안 알아보고 오래 고민해서 결정을 내렸다. 욕실 발매트는 이사한 지 2달 만에, 책꽂이는 3달 만에, 주방용 싱크대 발매트는 4달 만에 샀다.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 친구가 수개월 전부터 침대 옆 협탁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5달째 기다리라는 말로 달래는 중이다. 아마도 난 '모든 선택지를 완벽하게 다 검토해 보았는데 그중 이 상품이 딱이었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상품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target-1955257_960_720.jpg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쌀을 5kg짜리를 사게 되어 보관할 쌀통이 필요하게 됐다. 한 번에 제대로 된 걸 사야만 했기에 며칠 간 열심히 서칭 했고 고민 끝에 스스로 만족할 만한 브랜드로 샀다. 쌀통에 쌀벌레가 생기지 않아 좋다는 후기글이 많다는 점이 그 브랜드를 선택한 주요 이유였다.


그러나 완벽한 구매였다고 자화자찬했던 그 쌀통은 결국 지금 창고 구석에 처박혀있다. 여러 후기들처럼 정말로 쌀벌레는 생기지 않았지만 그 대신 쌀에 곰팡이 생기더라. 하하. 5kg 전부를 눈물을 머금고 버렸다. 혹시나 곰팡이 핀 쌀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해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쌀을 어디에 보관했는데 곰팡이가 나?"라고 엄마가 물었다. 난 당당하게 "쌀통 좋은 거 샀는데도 곰팡이가 났어."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으이구. 왜 그렇게 보관했어. 쌀통 말고 생수 페트병에 보관하라니깐. 쌀통 사기 전에 전화해서 물어보지!"


매 선택이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이제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내 인생의 모든 행보가 완벽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껏 내가 결정 내린 선택들도 완벽하지 않았다. 만일 완벽했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진 않을 것이다. 대학 입시도 잘 보았을 테고, 목표했던 대학과 학과에 들어갔을 테고, 취업준비도 척척 잘 준비해서 가고자 했던 회사에 입사했을 테고, 하고자 했던 일을 하며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겠지. 물론 비싼 돈을 주고 산 쌀통에 곰팡 이따윈 생기지 않았을 테고.


내 맘에 쏙 드는 완벽한 선택은 없다. 완벽한 선택을 위해 세상에 있는 모든 선택지를 검색하고 검토할 수도 없다. 애초에 완벽한 인생이란 없다. 그러니 선택 앞에서 우물쭈물하지 말고, 더 나은 옵션이 있을지 모른단 미련 따윈 갖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완벽에 집착하지 말고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믿어주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완벽해'란 말보단 '최선을 다했어'란 말이 왠지 모르게 더 아름다워 보인다. 정감이 간다. 인간적으로 보인다. 다만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설득하기 위해 모든 선택지를 다 검토하려 해선 안 되겠지.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알아야 하고 데드라인에 맞춰 내린 결정이 진정 최선이었음을 믿어줄 마음가짐이 꼭 필요하다. 아니다. 최선의 선택이 아니면 또 어떤가? 사람이 실수도 하고 그러는 것 아니겠는가. 쌀통 하나 정도 잘못 사면 뭐 어떤가. 물론 비용 출혈이 있긴 하지만 스스로가 스튜핏이라고 너무 자책하진 말자. 만 오천 원짜리 쌀통 하나 잘못 샀다고 내 인생이 하루아침에 실패의 구렁텅이로 빠지진 변하진 않는다.


삶의 기로에서 내리는 모든 선택이 완벽할 순 없다고,

결혼까지의 여정에서 맞닥뜨릴 수많은 선택지들 앞에서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내가 내린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스스로 믿어주면 되는 거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5. 나만의 소비 철학 세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