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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Nov 06. 2017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통

영화 <리빙보이 인 뉴욕> 리뷰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거다. 그때 잠시 다녔던 피아노학원엔 여자와 남자 선생님, 그러니까 두 명의 원장 선생님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고가의 피아노 여러 대를 혼자 사기엔 무리가 있으니 동기생 둘이서 동업한 게 아닐까 싶다. 그 둘이 실제 어떤 관계였는지 기억 나지 않지만 어쨌든 어린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걸 좋아했던 나는 두 원장 선생님이 약혼한 사이라고 생각했다.


두 분은 나를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다.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저녁이 되면 학원이 한적해졌는데 연습실이 많이 비어있으니 언제든지 놀러 와서 피아노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물론 우리 집에도 피아노가 있었지만 선생님에게 관심 받는 게 좋았던 어린 나는 엄마가 차려준 저녁밥을 마다하고 늘 학원에 갔다. 두 분과 함께 도시락도 먹고 컵라면도 끓여먹고 간식도 먹었다(먹을 걸 주셔서 더 좋아했나보다). 물론 피아노 연습도 열심히 했고 학원에서 친구들이 하는 얘기를 잘 간직했다가 선생님들께 쫑알쫑알 전해드리기도 했다. 나는 두 분을 제 2의 부모님처럼 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따랐던 여 선생님이 그만 두게 되었고 그녀 대신 다른 여 선생님이 원장으로 부임한단 소식을 엄마로부터 전해 들었다. 어린 마음에 배신감이 꽤 컸다. 나에게 그 상황은 마치 엄마와 아빠가 이혼해서 엄마가 날 두고 떠나버리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날 두고 떠난 여자 원장님을 향한 원망 보다 그렇게 만든 남자 선생님을 더 미워했다. 왜냐하면 새로 온 여자 선생님이 예전 원장님보다 백배는 더 예쁘고 세련미가 넘쳤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는 나름의 논리적인 생각을 하려 했던 것 같다. 젊고 예쁜 선생님이 둘 사이를 갈라놓은 악마일 거라고, 그래서 조강지처가 버림받듯 예전 원장 선생님이 버림받은 것이라고. 그녀가 떠난 날 밤,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었다. 엄마 잃은 아이 마냥 슬퍼했다.


나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한 친구와 함께 작당모의를 했다. 배신의 아이콘이 된 남자 원장님에게 천벌을 내려 주리라!(아무래도 즐겨보았던 만화 천사소녀 네티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우리는 뾰족한 돌멩이를 찾아냈고 그걸로 원장 선생님의 차를 긁기로 했다. 지익 지익 지이이이이익.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 정도 더 돌았다. 낙서도 했다. ‘나쁜 놈’ ‘바람피우지 마세요’ 뭐 이런 문구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지금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계속 긁어댔다. 하지 말란 짓을 할 때, 그러니까 나쁜 짓을 그것도 성공했을 때 드는 희열감, 짜릿함은 꽤 현혹적이어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오고 얼마 있지 않아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수화기 너머 남자 원장 선생님에게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전까지 너무도 당당했던 나는 엄마의 표정이 변화하는 걸 지켜보면서 점점 움츠러들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한동안 두려움에 매일 벌벌 떨었다. 학원은 당연히 그만두었고, 함께 일을 저지른 친구와도 만나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내가 저지른 잘못된 행동이 떠올라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맏딸로서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게 무서워 단 한 번도 말썽 피운 적 없는 착한 아이였던, 내 생애 첫 일탈이었다.


내가 한 행동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는 걸 말 그대로 큰돈을 주고 배웠다(지금도 차 도색비로 엄청난 돈을 냈다며 언제 갚을 거냐고 종종 말씀하시곤 한다). 물론 잘 한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나를 둘러싼 안전한 보호막을 발로 차고 거친 세상 밖으로 반항하듯 뛰쳐나왔다. 그렇게 바깥세상의 혹독한 민낯과 제대로 마주쳤다. 나의 첫 일탈은 고통스러웠지만 어쩌면 인생에 한 번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성장통이었던 것 같다.


<리빙보이 인 뉴욕> 스틸 샷


뉴욕에 살고 있는 아주 평범한 대학생 토마스는 마음속으로 작가를 꿈꾸지만, 잘나가는 출판사 대표인 아버지의 반대로 꿈을 포기한 후 방황하고 있다. 그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짝사랑하는 그녀, 미미와 시간을 보내는 일뿐. 이미 남자친구가 있는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여러 번 고백했지만 매번 돌아오는 대답은 ‘우린 친구잖아’란 말뿐. 친구 사이마저 잃게 될까봐 그녀를 모질게 외면하지 못하고 애인인 듯 애인 아닌 애인 같은 관계를 이어나가던 어느 날, 우연히 아버지와 어떤 젊은 여자가 외도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충격에 휩싸인 것도 잠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만 매력적인 아버지의 내연녀 조한나에게 빠져들게 된 토마스. 결국 아버지 몰래 그녀와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나게 되고 얼마 전 윗집에 이사 온 노인 제럴드에게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대학생이 되었지만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토마스는 영화 초반부터 시종일관 부모에게 종속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의 첫 소설을 읽고는 “serviceable(봐줄만 하네)”라 평한 아버지의 한 마디에 상처받아 꿈을 접어버린 어린 애이고, 어머니의 우울증이 악화될까 두려워 엄마의 모든 히스테리를 말없이 다 받아주는 유약한 마마보이이다. 한국 부모들이 원하는 효자 탈을 쓴 그가 어쩐지 좋게 보이지 않는다. 효심이 대단하단 생각보다 몸은 다 컸는데 아직도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토마스가 한심해 보일 뿐이다. 


연애는 또 어떤가.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누가 보아도) 어장관리 멘트를 남발해대는 미미를 맹목적으로 사랑한다. 남자답게 내 것으로 만들던지 이 관계를 청산하던지 결판을 내지 못하고, 아이처럼 그녀에게 사랑해달라고 징징댈 뿐이다. 풋내기의 사랑은 의존적이다. 아침, 점심, 저녁, 그녀만 졸졸 따라다닌다.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끝낼 때까지 책방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아버지의 내연녀를 미행할 때에도 수업에 들어가지 말고 옆에 같이 있자고 한다. 내 사랑이 너무 크면 상대방 마음이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 토마스는 사랑에 빠진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었을자 모른다(그럼에도 미미가 토마스에게 자꾸만 ‘넌 참 착한 아이야’라며 여지를 준 건 나쁘다고 생각한다. 이 어장관리녀!!).


<리빙보이 인 뉴욕> 스틸 샷


어린 아이가 성장하려면 울타리 밖을 나서야 한다. 장애물을 만나면 두드려도 보고 넘어져도 보고 싸워보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장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부모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게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만 자란 어른은 어른의 모습을 한 아이일 뿐이다. <트루먼쇼>에서 짐 캐리도 결국 세트장을 박차고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가.


완벽한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불운한 유년 시절에 대한 트라우마로 우울증에 빠진 어머니를 속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는 지금까지 참 바르게 자랐을 것이다. 그 흔한 ‘No’란 말조차 해본 적이 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조한나와의 만남은 울타리 속에서 자란 토마스에겐 굉장히 짜릿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금기된 사랑이란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욕망에 뒤늦게 눈을 뜬 이 아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성장통을 뒤늦게 겪는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혹독하게.


바깥세상을 알아버린 이 아이는 이제 부모가 쳐놓은 울타리 밖을 넘어가기 위해 발버둥치기 시작한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와 착한 남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기로 결심한 듯한 행보를 이어나간다. 아버지에게 조한나와의 관계를 실토하기까지 수없이 고민했고 고통스러웠지만, 사실 지나고 나서 보면 상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벌어지지 않았다. 우려했던 부자간의 관계가 깨지지도 않았고, 아버지의 외도에 충격을 받아 어머니가 쓰러져 돌아가시거나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상황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예상했던 대로 두 분은 이혼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서로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었다. 결국 어린 애송이였던 토마스는 조한나의 말대로 ‘인생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아이였고, 조한나라는 장애물을 만나게 되면서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었다.


P.S.

영화 <리빙보이 인 뉴욕>의 스토리가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 재벌까진 아니지만 유명 회사 대표인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기에 2% 부족해 보이는 아들, 어머니의 우울증과 아버지의 외도, 내연녀에게 현혹된 아들, 거기에 한국 드라마의 흥행 치트키라 불리는 출생의 비밀까지 등장한다. 한국의 수많은 여성들을 TV 앞에 앉게 만들었던 막장 스토리의 진가를 할리우드가 드디어 알아본 것일까? tVN 광고에서 보았던 ‘문화 수출’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물론 농담이다). 60부작 일일 드라마에서 서서히 진행될 법 한 이야기가 86분이란 짧은 시간 내에 휘몰아치듯 전개된다. 드라마를 보던 긴 호흡으로 보다가는 숨이 가빠져 중간에 쓰러져버릴지도 모른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고 예상보다 빠른 전개에 놀라지만 늘 그렇듯 결말마저도 한국 드라마스럽다. 


아, 헐리웃영화 스럽다고 해도 맞는 말이겠다(기승전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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