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면추상화가인 마크 로스크의 '초록과 밤색(Green and Maroon)'시리즈는 1950년대 중반에 완성된 작품으로 대형 캔버스에 여러 점 그려졌다. 이 시기의 다른 작품들은 모두 비슷한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색상과 구성 비율에 따라 분위기가 매우 다양하다. 이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붉은색과 초록색은 마침내 캔버스 위에서 어우러진다.
Green and Maroon, 1953
로스코는 색을 사랑했다. 반면 그만의 색의 추상적 전환에도 불구하고 형식주의적 추상 예술가로 여겨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자신의 예술은 비극적이든 황홀적이든 인간의 경험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증류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말보다는 감정, 느낌, 몰입이 우선이었다. 그는 곧 캔버스, 색, 나아가 그 울림 속 침묵과 고요가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내가 어렸을 적부터 명심한 가장 좋아하는 문구다.
Silence is so accurate.
Mark Rothko
로스코의 작품에서 직사각형과 그 주변 공간은 그 존재로서 동등한 중요성을 지닌다. 그는 그림의 완성 상태에 대한 선입견 없이 직관적으로 형태를 조정하여 항상 수평 또는 수직 직사각형 형태를 정면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작업해 왔다. 로스코는 도형의 높이, 너비, 모서리, 캔버스 가장자리와의 거리, 도형 간의 상호 관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다 보니 그의 모든 형태는 주변 공간과 융합되는 부드러운 경계를 가지고 있다.
이 경계의 하이라키는 그 색상에 따라 달라진다. 로스코는 다양한 색의 느낌, 채도를 통해 표면의 질감을 만들어 내기 위해 여러 번 레이어링 하고 혼합했다. 이 짙은 초록색과 짙은 피의 색도 마침내 서로를 융합하며 캔버스를 하나로 끌어안았다. 그가 배치한 보색의 구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야를 혼동시키는 것이 아닌 몰입과 깊숙한 내면의 감정을 일으킨다.
나는 로스코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이 구성과 색이 마음에 든다. 아무래도 난 쇼핑을 할 때 물건을 짚고 나면 대부분 초록색을 집었다. 집을 꾸미겠다고 구매한 바닥의 러그도 초록색이었다. 나는 이 미스터리 한 초록색, 그리고 이 로스코의 작품에서 동일하게 느껴지는 깊이감 있는 초록색으로 향하곤 했다.
짙은 초록색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우러나오는 안정감과 고상함 때문인 것 같다. 이건 묵묵하고 너무나 고요해서 귀가 멍멍한 느낌인데, 마치 내가 잔잔한 숲 속에 비가 내리는 공간 정 가운데에 있고, 곧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도 대부분 이 어두운 초록색이 스며든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물밀듯 밀려오는 듯하다.
한편 짙은 와인색인 maroon색을 좋아해 본 적은 없지만 이 초록색이 어룰리는 게 신기했다. 내가 사랑하는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최근 앨범엔 "Maroon"이 있다. 앨범 커버가 그 깊은 밤 색이다. 곡 내내 나오는 이 오묘한 색을 그녀는 "Maroon", "Blood", "Scarlet", "Rust" 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웅웅 거리는 베이스 소리와 구성이 이 짙은 마룬을 그린다. 이 작품과 함께 들어보는 것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