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마지막, 봄 비가 추적 내리고, 진득한 더움이 다가오는 날씨였다. 잠깐 분리수거를 하러 집을 나섰다가 봄비를 맞고 돌아왔는데도 기분이 좋다. 앙리 루소 작품이 떠올랐다. 무더운 열대 속 싱그럽고 즐거운 상상의 공간.
The dream, 1910
앙리 루소의 「꿈」은 생생한 색채와 세심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상상 속 이국적인 풍경은 그가 꿈꾼 새로운 세상이다.
솜니움(Somnium)이라는 단어가 있다. 라틴어로는 꿈을 의미하는데, 마침 요하네스 케플러의 공상과학소설의 제목이 이 꿈 「Somnium」이 원제이다. 등장인물이 초자연적인 힘으로 달을 향해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다. 이들의 꿈은 현실 속 상상과 몽상과 같다. 존재한다고 믿지만 가보지 못했거나, 실제로 존재함에도 믿지 못하거나, 이 심오한 영역을 탐험하기 위해선 우리는 상상의 한계가 없는 꿈이라는 경로가 필요하다. 인간이 풀지 못한 수수께끼 영역으로 안내하는 관문과도 같다. 루소는 깨어 있는 현실과 잠들어 있는 꿈 속에서 펼쳐지는 경계를 모호하게 즐거운 정글로 표현했다.
요하네스 케플러의 소설, 꿈 「Somnium」
작품은 생명과 활력이 넘치는 열대 오아시스, 초록빛 낙원으로 가득하다. 높이 솟은 야자수가 바람에 흔들린다. 잎사귀들은 우아하게 늘어져 있다. 이국적인 꽃들은 형형색색으로 피어난다. 루소의 세심한 붓자국이 나뭇잎과 꽃잎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표현하여 열대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왼쪽엔 한 여성 인물이 누드 상태로 올랭피아를 상징하듯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다. 그녀의 손짓을 따라가면,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위풍당당한 사자, 수풀 사이를 슬금슬금 기어 다닌 뱀, 장난스러운 원숭이. 루소는 동물들을 여럿 포함시킴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영역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강조하며 자연을 표현하고, 현실의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의식적으로 재현되지 않은, 무의식이 중심이 되는 이 솜니움의 영역은 흥미롭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를 꿈의 영역으로 탐험하도록 초대하는 일종의 포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몽환적인 내러티브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잠의 영역으로 넘어가 무한한 생각을 할 수 있다.
바람이 선선하다. 눈을 잠시 감고, 상상 속에 어우러진 나의 꿈과 욕망, 열망을 그려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도시 속, 도로 위 비를 뚫고 달리는 차들, 깔깔대는 이웃 소녀의 웃음소리, 시원한 바람, 내가 방문하고 싶은 공간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