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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직장

BRCQ에서 1

by 지안

때는 양산박의 포지션이 변경되기 전, 검트리에서 이력서를 넣은 배스킨라빈스 매장에서 연락이 왔다. 써큘러 키(Circular Quay) 역에서 아주 가까운 매장이었고, 써큘러 키 역에서 내려 오페라 하우스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지역에 위치했다(배스킨라빈스 써큘러 키 지점 Baskin Robbins Circular Quey 의 약자를 따서 BRCQ라고 불렀다). 위치만으로도 여름이 되면 엄청난 고객들이 몰려올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분명 영어로 올라온 공고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한국어로 답장이 왔다. 매장 사장님은 한국 분이었고, 당연하게도(?) 매장 매니저를 포함한 직원들은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매장은 도보 쪽으로 오픈돼있는 형태로 홀은 따로 없었고, 직원들이 손님들을 맞고 바로 아이스크림을 내주고 다음 손님을 맞는 형태였다. 매장이 있는 건물은 호텔 건물이었고, 배스킨라빈스 말고도 각종 레스토랑과 편의점들이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대부분은 도보 쪽으로 오픈돼있는 형태였다.


wfeewf.JPG BRCQ ©Jian


면접 일정을 잡고 면접을 보러 갔다. 9월 말이었고, 덥지는 않았지만 햇볕이 머리 위로 쨍쨍하게 쬐는 날이었다. 매장에 도착해서 면접을 보러 왔다고 하니, 직원이 사장님께 연락했고, 잠시 기다리자 사장님이 호텔 건물에서 나와 나를 맞아주었다. 사장님은 60대 정도로 보이고, 키 180 정도 되는 남자였다. 우리는 호텔 건물 2층 로비에서 간단하게 면접을 보았다. 질문을 별게 없었고 지금 다른 하는 일은 없는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정도를 물어보았다.


"아참, 지안 씨. 우리 가게가 아까 보셨다시피 한 타임에 일하는 직원이 많은 편이에요."

"네."

"다른 현지 가게들은 가능하면 직원수를 줄이려고 한단 말이야, 여기는 최저시급이 높아서.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면 한 사람이 일을 다 감당을 못해요, 여름이 되면 많이 바빠지거든. 그래서 한 타임에 일하는 직원들을 좀 늘려주고, 피크타임 직원을 따로 뽑지는 않아요. 지금 지안 씨를 뽑는 것도 곧 여름이 되니까 일손이 부족해질 수 도 있어서 뽑는 거예요.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일하는 직원들이 한 타임에 많아지면 당연히 일이 강도가 좀 낮아지겠지? 그래서 그만큼 시급이 좀 적어요. 아마 지금 지안 씨가 일하고 있는 고깃집 보다도 적게 줄 수밖에 없어요."

"아.. 네, 혹시 그럼 제가 일하게 되면 시급이 얼마나 될까요..?"

"지금 우리 시급은 13불이에요. 어떻게.. 그래도 일할 수 있겠어요? 내가 근무 시간은 충분히 줄 수 있어요. 하루 6시간 이상."


당시 호주 최저시급은 18불이었는데 13불이면 확실히 적었다. 이래서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곳은 피하려 했던 건데.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당시 양산박에서는 여전히 하루 3시간 일하고 있었고, 돈을 좀 모으고 문화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다른 일이 하나 더 필요했다. 잠깐의 고민 후에 결국 승낙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6시간 동안 BRCQ에서 일을 하고,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양산박에서 일을 했다. 이번에도 역시 캐시 잡이었기 때문에 세금을 따로 떼지는 않았다.




면접이 끝나고 사장님은 나를 데리고 1층 매장으로 다시 내려와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 중에 한 명에게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한국에서는 싱글레귤러라고 한다) 나에게 주라고 했다. 키가 크고 건장해 보이는 남자 직원이 나에게 맛을 한 가지 골라달라고 했다. 나는 사실 그전까지 배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많이 사 먹어본 경험이 없어서 뭐가 무슨 맛인지 잘 몰랐다. 그냥 눈앞에 보이는 '월드 클래스 초콜릿' 맛을 골랐고, 직원이 컵에 퍼다 주었다.


아이스크림 재질이 좀 꾸덕꾸덕하고 잘 안 뭉쳐지는 것이었는지 그는 아이스크림을 퍼내는데 약간 애를 먹어 멋쩍어했다. 옆에서 다른 여자 직원이 장난스럽게 그것도 못 하냐고 핀잔을 주며 웃었다.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일하기 시작하면 저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서 빨리 친해져야겠지. 아, 어렵겠다.' 내성적인 성격인 나에게는 약간 걱정되는 일이었다. 직원들은 서로 모두들 친해 보였다. 관계가 굳어진 사회에 끼어들어가 내 자리를 찾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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