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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좀 많이 하는 것 같아

BRCQ에서 3

by 지안

저녁에는 양산박에서 일을 해야 하니, 자연스럽게 BRCQ에서 일하는 시간은 오전으로 고정되었다. 가게는 아침 10시에 오픈이었고 저녁 11시에 마감을 했는데, 직원들은 6시간씩 일을 했다. 10시 오픈 조는 오후 4시에 퇴근했고, 11시 마감 조는 오후 5시에 출근하고, 미들 조는 12시쯤에 출근해서 오후 6시 전후로 퇴근했다. 시간표는 매주 사장님이 직접 짰고, 대부분 직원들은 한 조에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으로 움직였다. 양산박과 마찬가지로 주 6일 근무가 기본이었는데, 한 가지 좋은 점은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직접 적어 제출하면 사장님이 최대한 고려하여 배치해 주었다는 점이다. 어떤 직원은 주말에만 일을 했고, 어떤 직원은 일주일 내내 일을 하기도 했다.


나는 오픈 조에 거의 고정되었다. 오후 4시에 일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 잠깐 쉬며 늦은 점심을 먹고, 6시까지 양산박으로 가야 했다. 하루 9시간 정도 일하는 셈이었는데, 그래도 견딜만했다. 무엇보다 시드니의 우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쌀쌀한 오전에 오페라하우스까지 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려서 손님을 단 3명만 받은 날도 있었다. 사람들은 비가 내리는 날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오지 않았고, BRCQ에서 업무는 거의 한가한 편이었다.




문제는 양산박에서 포지션이 변경되면서 일어났다. 나는 양산박에서 주 6일, BRCQ에서도 주 6일 일했는데, BRCQ에서는 오후 4시에 퇴근이 고정이었고, 양산박은 테이블 정리에서 바(Bar)로 포지션이 바뀌며 5시에 출근을 해야 했다. BRCQ에서 양산박까지 이동시간은 대략 30분 정도였고, 5시에 바로 업무에 투입되어야 했기 때문에 유니폼을 갈아입고 워키토키를 차기 위해서는 10분 정도는 일찍 도착해야 했다. 결국 중간에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20분 정도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식당이나 노점에서 음식을 시키면 나오는데 까지 10분은 걸리기 때문에 나는 남은 10분 안에 음식을 해치우고 바로 일에 투입되어야 했다.


양산박 포지션은 10월 셋째 주에 바뀌었고, 날씨는 벌써부터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BRCQ는 조금씩 바빠졌고, 양산박은 늘 그렇듯 변함없이 바빴다. 두 곳 모두 주 6일씩 일했고, BRCQ와 양산박에서 모두 6시간 정도 일했으니 하루 12시간, 한주에 72시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이 시작되었다.


이때 즈음부터 살이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했는데, 체중계가 없어서 정확히 측정하지는 못했지만 10kg 이상이 빠졌던 것 같다. 호주에 오기 전에는 약간 과체중이었는데, 배가 쏙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포지션 변경 이후 첫 며칠은 그래도 이것저것 챙겨 먹으려고 노력했다. 양산박 근처에는 중국식 전병(煎饼 지엔빙, 밀가루 반죽을 얇고 둥글게 펴서 안에 각종 고기와 야채 등을 넣고 동그랗게 말아먹는 일종의 샌드위치)을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나는 매번 그곳에서 음식을 사다가 양산박 탈의실에서 먹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것마저 귀찮기도 하고 10분 내로 음식을 먹어치우기가 영 힘들어져서, 근처 편의점에서 에너지 드링크를 사서 그걸로 하루를 버텼다. 양산박 직원들이 그렇게 일하는 나를 보고 모두들 걱정해 주었는데, 나도 어쩔 겨를이 없었다. 양산박 포지션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릴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으랴.


주 72시간 노동은 3주 동안 계속했었는데, 결국에는 양산박을 그만두면서 멈추게 되었다. BRCQ의 사장님이 일할 시간을 더 줄 테니 양산박을 그만두고 BRCQ에만 올인하라는 제안을 주기도 했고, 몸이 도저히 버텨주지를 못하기도 했다. 그래도 3주간 벌어들인 수입은 고생한 만큼 경이로웠는데, 한주에 1044 달러, 총 3000달러(당시 환율 기준 대략 한화 250만 원) 정도를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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