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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플 베이커

BRCQ에서 4

by 지안

혹시나 내 글을 앞으로도 쭉 읽어주실 고마운 분들에게 미리 말씀드리면, 나는 더 이상 이직은 하지 않고 2019년 6월인 한국에 돌아오는 달까지 BRCQ에서 일했다. 중간에 돈이 조금 모자라 져서 다른 투잡을 뛸 생각으로 이력서를 돌리긴 했지만 결국 일을 찾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BRCQ에서는 손님들에게 나가는 와플콘을 직접 구웠다. 매장 한편에 작은 와플 기계가 두 개 비치되어 있었고, 직원들이 배달 오는 와플 가루를 직접 물과 배합해 반죽을 만들고 와플을 구웠다. 그리고 넓게 펴져서 구워진 와플을 아직 뜨거울 때 재빨리 건져내서 원뿔형 틀에 넣고 직접 힘을 주어 돌려서 콘 모양을 만들었다.


아직 BRCQ에서 일한 지 한 달이 채 안되던 때였다. 나는 오픈 조로 10시에 일을 시작했고, 곧이어 11시에 일을 도와줄 Jayden형과 Alisa가 출근했다. Jayden형은 내가 BRCQ에 면접을 보러 온날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퍼준 (그리고 실수를 해서 옆 직원에게 핀잔을 받은) 그 직원이다. 그는 180이 넘는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을 가진 형이었는데, 매장 직원들은 다들 그가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고 말이 너무 많다고 질색해할 때가 많았다. 내향적인 나에게는 쉽게 말을 붙여주고 빨리 친해져서 좋은 형이었다. 그는 매장에서 가장 오래 일한 직원들 중 하나였는데 호주에서 영주권 취득을 목표로 다른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었다. 레스토랑 일이 메인잡이고 BRCQ가 서브잡이었다. 그래도 BRCQ에서 오래 일하며 즐거운 분위기를 돋아주는 형이었다. 내가 일을 시작했을 때, 꽤나 좋아했는데 매장에 남자 직원이 너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매장에 남자 직원은 나를 포함해서 4명뿐이었고, 그중 한 명은 고등학생이어서 일을 자주 하지는 못했다. 아이스크림을 배달하거나 창고로 옮길 때 힘이 어느 정도는 있는 남자 직원들이 부족했는데, 내가 와서 조금 숨통이 틔였다나.


Alisa는 나보다 4살 어린 여자 직원이었다. 피부가 약간 까무잡잡하고 눈이 굉장히 커서 인상에 남는 직원이었다. 그녀 역시 매장에서 3년 넘게 일했고, 매니저님을 제외하고 매장에서 두 번째로 일을 오래 한 직원이었다. 말수가 굉장히 적고 낯을 좀 가렸는데, 일을 시작한 지 몇 주 뒤에는 금방 친해졌다. 그녀는 아주 어렸을 때 호주로 이민을 와 시민권을 취득했고, 당시에는 대학을 다니며 용돈벌이로 BRCQ에서 일하고 있었다.




매니저님이 출근하기 몇 분 전, 매장에 와플콘이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와플콘은 주로 매니저님이 만들었는데, 그녀가 가장 잘 만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서빙을 계속 하기보다는 와플콘을 만들면서 와플이 구워지는 시간에 이것저것 보충적인 일(줄어든 아이스크림 통을 교체한다던지 바빠서 마저 못한 설거지를 한다던지 컴플레인이 들어왔을 때 대처한다든지 등등)을 하기 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매니저님이 출근하지 않았다고 와플콘 없이 판매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Jayden형과 Alisa 가 와플을 굽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에 일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냥 서빙만 하며 그 둘이 만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문제는 그 두 직원이 와플콘을 너무나 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손님들에게 정량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가게이니 만큼(아이스크림 정량을 측정하는 연습을 할 정도로 중요하다) 콘이 너무 크거나 작으면 안 됐다. 그런데 이미 만들어 버렸으니 어쩌랴. 우리는 큰 와플콘으로 결국 서빙을 시작했다.


십 여분이 흐른 뒤 매니저님이 가게에 도착하자, 불같이 화를 냈다. 이게 뭐냐고, 잘못 만든 콘 개수만큼 너네 급여에서 다 깎아버리겠다고 소리를 쳤다. 비록 몇 주 밖에 되지 않았지만 항상 웃고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매니저님이었는데, 이렇게 화를 내니 깜짝 놀랐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Jayden과 Alisa 역시 마찬가지로 놀란 표정이었다. 그들은 살벌한 분위기에 차마 죄송하다는 말도 못 하고 우울한 표정으로 다시 서빙을 시작했고, 매니저님은 매장에 오자마자 와플을 다시 굽기 시작했다. 나중에 분위기가 좀 누그러들었을 때 매니저 님께 괜찮으시냐고 여쭤보니, 본인이 옛날에는 더 많이 화도 내고 불같은 성격이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조금 먹으면서 많이 누그러 졌다고. 아, 나는 실수 안 하게 조심해야겠다.




매니저님이 한 시간 정도 와플을 굽더니 나를 불렀다. 나에게 와플 굽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방금 다른 두 직원이 와플을 잘 못 구워서 그렇게 혼나는 걸 봤는데... 열심히 머릿속으로 암기하면서 와플 굽는 걸 배웠다. 사실 와플 믹스(가루)가 이미 만들어진 상태로 배송이 왔고, 그걸 물이랑 반죽해서 굽는 것은 그다지 별 것 아니었다. 다만 감으로 어느 정도를 베이킹 기게에 부어야 하는지가 관건이었다. 혹시나 너무 크게 구울까 봐 와플을 구우면서 계속해서 매니저님을 불러 검사를 받았다. 이 정도면 괜찮은 가요? 너무 큰 건 아니죠..?


여담으로 이때 와플 굽는 걸 제대로 익혀서 인지, 나는 BRCQ에서 일한 8개월의 시간 동안 7개월 이상이 주 업무가 와플을 굽는 것이 되었다. 나중에는 나보다 일을 오래 한 다른 직원이 와플콘이 이상하면 나한테 뭐가 문제인지 물어볼 정도로... 분명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하는데 항상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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