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CQ에서 5
시간은 12월을 향해 달렸고, 날씨는 눈에 띄게 더워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BRCQ에서 일을 시작한 지 2개월이 되었고 나는 업무에서도, 직원들과의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여전히 와플을 많이 구웠고, 바빠지면 손님 응대도 함께 했다. 날씨가 따뜻한 날이면 BRCQ를 찾는 손님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그만큼 진상 손님도 많았다. 오늘은 내가 받은 손님들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 가게는 서큘러 키(Circular Quay) 역에서 내려서 오페라 하우스로 도보로 이동하는 바로 그 중간지점에 있었다. 매장 안에서 역사와 선착장이 눈에 보일 정도로 탁 트인 공간에 위치해 있었다.
위치가 좋은 만큼 아이스크림이 비쌌다. 한 스쿱(한국의 싱글 레귤러)에 6.9 달러였고, 와플콘이나 이것저것 토핑을 추가하면 10달러는 우습게 넘겼다. 그래서인지, 파인트나 패밀리 사이즈 같은 포장 위주의 상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오페라 하우스로 걸어가면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한 스쿱, 두 스쿱 아이스크림이 주로 판매되었다. 문제는 콘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다는 것이었다. 컵이나 와플콘의 경우 입구가 충분히 커서 아이스크림이 떨어지는 사태가 거의 없었지만, 일반콘은 작아도 너무 작았다. 심지어 일반콘에 두 스쿱을 주문하게 되면 작디작은 콘 위로 아이스크림을 두 덩이나 올려서 서빙해야 했다.
아이스크림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질기도 하고, 혹시나 먹는 사람이 떨어뜨릴까 봐 직원들이 (특히 작은 일반 콘에 담을 때는) 최대한 꾹꾹 눌러서 담아준다. 대부분의 손님들도 그걸 알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먹거나, 주로 컵에 담아서 먹는데, 아이들은 그러지를 못했다. 아이들은 컵보다는 먹을 수 있는 콘에다가 아이스크림을 담아 먹고 싶어 했는데(와플콘은 대게 크기도 크고 가격도 추가되어 부모님들이 잘 사주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세심하게 컨트롤하지는 못했다. 직원들이 아무리 세게 눌러 담아 주어도, 아직 녹기 시작하지 못한 아이스크림은 결국 콘 위에 살짝 얹힌 형태로 서빙이 나갔고,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콘 위에 스쿱이 통째로 바닥에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콘을 떨어뜨린 건 아이들의 잘못이기 때문에 이미 돈을 받고 서빙을 해준 직원들이 떨어뜨린 아이스크림까지 변제해 줘야 할 이유는 당연히 없었다. 우리도 최대한 안 떨어뜨리게 눌러주기도 하고 심지어 서빙 나갈 때 조심하라고 경고까지 해 주는걸. 손님들도 열에 일고여덟은 다시 돈을 내고 주문을 했다. 떨어진 아이스크림은 우리가 청소해야 했지만. 그런데 꼭 떨어졌으니 우리 책임이라며 다시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미 서빙을 나간 것이고 그렇다고 바닥에 떨어진 것을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것이라 공짜로 다시 줄 수는 없다고 설명하지만, 진상들이 으레 그렇든 도저히 말이 통하지를 않는다. 한낮에 정말 손님이 몰려오는 시간대에는 이런 진상들을 일일이 실랑이 해 가며 봐주고 있으면 주문이 계속 밀리기 때문에 결국 대부분은 다시 퍼 주었다. 다시 퍼 주는데, 이번만 해 드리겠다는 분노의 첨언과 함께.
대부분의 배스킨라빈스가 그렇듯, 우리 가게에도 밀크셰이크 메뉴가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한 덩이 넣으면 밀크셰이크, 두 덩이를 넣으면 띡 셰이크(Thick Shake)로 구분해서 판매하였다. 이것도 물론 정량이 정해져 있었고, 아이스크림을 많이 넣으면 손해가 나므로 맛을 내기 위해 시럽을 조금씩 추가했다. 그 편이 더 달고 맛있기도 하고.
하루는 와플을 목표치를 다 굽고 서빙을 돕고 있었다. 중동인으로 보이는 커플이 와서 딸기 밀크셰이크 두 잔을 주문했다. 나는 당연히 정량대로 맞춰서 서빙하였고, 그들은 돈을 내고 밀크셰이크를 가져갔다. 한 5분쯤 뒤에, 그 커플이 다시 와서는 이 밀크셰이크는 맛이 이상하다며 환불을 요청했다.
"이거 먹어봐! 이게 무슨 밀크셰이크야? 아이스크림 맛이 하나도 안나잖아! 다시 만들어줘"
"우리 규정상 셰이크 류는 교환 환불이 안돼. 그리고 먹어보니까 딸기 아이스크림 맛이 나는데? 뭐가 문제야?"
"이건 그냥 딸기 우유지 무슨 밀크셰이크야? 아이스크림을 더 넣어야지."
"혹시 셰이크가 너무 묽어서 그래? 우리 띡 셰이크라는 메뉴도 있어. 3달러만 추가하면 아이스크림을 더 넣어서 만들어 줄 수 있는데 추가해 줄까?"
"아니, 지금 밀크셰이크 얘길 하잖아! 이건 밀크셰이크가 아니라니까?"
"우리는 정량을 넣어서 셰이크를 제조해. 다른 손님들도 다 너와 같은 밀크셰이크를 받아."
"이봐 친구. 나 셰프고 우리나라에서 밀크셰이크 많이 만들어 봤어. 나는 밀크셰이크 만드는 법을 알아. 이건 밀크셰이크가 아니야. 아이스크림을 더 넣어야 한다고. 무슨 뜻인지 알아? 너네가 파는 건 밀크셰이크가 아니라고! 빨리 새로 만들어서 줘!"
'그렇게 만드는 법을 잘 알면 니가 재료 사서 혼자서 만들어 처먹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겨우겨우 참았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를 벌였다. 손님이 많은 시간대는 아니어서 나도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고 응대했다. 그들은 내가 절대 다시 만들어 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느꼈는지,
"이봐, 그냥 환불해줘. 우리 그냥 갈 거야."
원래는 셰이크 류는 환불이 안된다고 해야 하지만, 이미 내가 너무 화가 나 있었다. 이 진상들과 한 마디라도 더 하면 당장 꺼지라고 소리 지를 것 같아서 겨우겨우 분노를 참고 돈을 돌려주었다. 내가 법정 최저요금도 못 받으면서 이렇게 일하는데 왜 겨우 진상 하나에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싶었다. 일하는 시간만큼이라도 즐겁게 해야지. 그냥 내 돈으로 메꾸는 걸로 하고 환불해줘서 진상들을 보냈다. 그날 옆에 Hannah 누나와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누나도 내 표정을 봤는지 환불해 주는 걸 보고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많이 화나 있던 게 티 났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