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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중국사람인 거죠?

BRCQ에서 6

by 지안

BRCQ는 아이스크림 가게인 만큼 주말에는 확실히 바빴다. 하루는 인도인 가족이 가게를 방문했다. 한창 바쁠 때, 한 가족이나 한 팀을 여러 사람이 동시에 주문을 받으면 나중에 계산할 때 꼬이게 되어서, 인도인 가족 전부를 나 혼자 서빙을 했다. 부부와 아이 셋으로 5명 가족이었는데, 주문을 말해 주는 대로 먼저 서빙을 해주다 보니, 아빠 아이스크림이 가장 먼저 나갔고, 아이들 아이스크림이 가장 나중에 나가게 되었다.


인도에서도 스몰 톡이 보편적인 걸까. 내가 먼저 내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가족에 아빠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놀랍게도 중국어를 할 줄 알았는데, 직원들이 모두 동양인인 것을 보고는 우리가 중국인인 줄 알고 중국어로 말을 했다.


"중국사람들 인가요?"


나는 약간 당황했지만, 뭐, 상대가 굳이 중국어로 물어보는데 영어로 대답해 줄 필요가 있을까 싶어 (불타는 서비스 정신으로) 중국어로 대답해 주었다.


"아뇨, 저는 한국사람이에요. 하지만 중국어를 배워서 할 줄 압니다."


그는 내 대답에 약간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중국어를 이어나갔다.


"나는 중국어를 할 줄 알아요. 비즈니스를 하며 배웠어요."

"아, 네. 잘하시네요."

"그러니까 당신들은 중국사람인 거죠?"

"아뇨 아뇨. 한국인이에요. 저도 중국어를 배웠어요."

"중국사람이 아니에요?"

"아니에요. 한국사람입니다. 중국어를 2년 정도 배웠어요."

"어... 중국어를 할 줄 알아요. 그러니까 중국사람인 거죠?"


나는 대화를 이어나가기를 포기했다. 얼른 아이들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서빙하고 결제를 도와주었다. 혹시나 해서 총금액을 중국어로 말해주니, 그는 귀찮다는 듯 카드를 넘겨주며 얼른 계산하라고 손짓했다. 가족들에게 자신의 중국어 실력을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그러기에는 말하기 말고 듣기도 연습하셔야 할 것 같네요 아저씨. 그래도 말을 먼저 꺼내는 그 용기는 인정입니다.




아무리 가게가 유명 관광지 근처라 해도, 아니 오히려 그래서인지 아침에 오픈 직후에는 손님이 거의 오지 않았다. 특히 오페라 하우스 밑에는 크고 유명한 바(Bar)가 있어서 대부분 관광객들은 야경도 볼 겸, 칵테일도 한 잔 할 겸 저녁 시간대에 주로 오페라 하우스를 방문했다.


하루는 오픈 조로 배정되어 아침에 문을 열었다. 10시에 오픈했지만 11시까지는 거의 손님이 없었고, 11시가 되자 두 번째 근무자인 Katie 누나가 도착했다. Katie 누나는 30대 초반의 여자 직원이었고, 영주권 획득을 위해 호주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이가 매니저님 다음으로 많은 큰누나/큰언니 여서 그런지 다른 직원들도 잘 따랐다. Katie 누나는 조용조용한 성격에 가까웠다. 그것 때문에 처음에는 낯을 가리는 내가 잘 말을 걸기 힘들었지만, 점점 함께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많이 편해진 동료였다. 그녀 말로는 내가 들어오기 전에 다른 남자 스탭들이 다들 말이 많고 시끄러운 성격이라 피곤했는데 과묵하고 일만 열심히 하는 내가 들어와서 꽤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나중에 다른 직원들에게 들었는데, 내가 없을 때 다른 스탭들에게 내 칭찬을 특히 많이 했다고. 덕분에 다른 직원들과 빠르게 친해지기도 했다. 여러모로 고마운 누나였다. 또 그녀는 눈치가 빠르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배려가 담겨있어서 함께 대화하는 것도 부담스럽지 않았고, 함께 일할 때도 손발이 척척 맞는 사람이었다.


11시에 Katie 누나가 도착하고 얼마 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젊은 엄마 손님이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왔다. 나는 전날 와플콘이 다 떨어졌는 데도 새로 구워놓지 않은 마감 조 인원들을 속으로 불평하며 삐죽 대면서 와플을 굽고 있었다. 와플콘은 단순히 와플을 구워서 원뿔형으로 말아서 나가는 기본 와플콘이 있었고, 와플콘 상단에 초콜릿 코팅을 해서 스프링클이나 잘게 부순 아몬드 가루 등을 코팅해서 나가는 스페셜 와플콘이 있었다. 당시 스페셜 와플 콘이 모두 떨어졌었고, 나는 그걸 만들기 위해 와플콘을 열심히 굽고 있었던 것이었다.


문제는 우리 매장이 스페셜 와플콘 모형을 일종의 미끼상품처럼 매대 위에 진열 해 놓는다는 점이었다. 젊은 엄마 손님은 Katie 누나에게 스페셜 와플콘으로 서빙을 부탁했고, 누나는 당장 스페셜 와플콘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매진 상태이고 다른 직원이 열심히 만드는 중이다고 설명을 했다. 그러자 손님은 짜증을 내며 왜 없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와플콘 담당이 나였기 때문에, 나는 사과드리기 위해 잠시 매대 쪽으로 나가 손님을 응대하였다.


"손님 죄송합니다. 해당 상품은 지금은 모두 매진이 돼서요. 지금 제가 열심히 만들고 있..."

"매진이라고요? 그럼 저기 진열되어 있는 걸 다 치웠어야지요! 우리는 저걸(스페셜 와플콘)을 보고 먹고 싶어서 왔는데 매진이라고 하면 다예요?"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제가 만들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됐어요! 우린 젤라티시모(BRCQ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다른 아이스크림 가게이다)에 갈 겁니다. 당신들 서비스는 필요 없어요!"


젊은 엄마는 그러고는 아이를 데리고 가 버렸다. 1분만 기다려 주시지. 금방 만들 수 있는데.


손님이 떠나고 나와 Katie 누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엄청 막무가내네 그치 지안아."

"네... 우리 스페셜 와플콘이, 뭐랄까... 참 맛있어 보이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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