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CQ에서 7
가게 스탭 중에는 Hee라는 남자 직원이 한 명 있는데, 그는 매니저보다 오래, 대충 4년 정도 BRCQ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이었다. 아직 미성년자였는데 15살 때부터 일해 왔다고 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만 일했고 학교 시험 등으로 바쁜 날에는 한 달에 한두 번만 일했다. 그는 부모님은 한국사람이었지만 Hee가 태어나기 전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고, Hee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키위(Kiwi, 뉴질랜드 사람들은 스스로를 키위라고 불렀다)였다. 이후 부모님이 시드니로 와 정착했고 그와 형제들 역시 호주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Hee는 일을 오래 하긴 했지만, 나이도 어리고 성격도 활발한 편이라 모두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는 직원이었다. 그는 한국어를 듣기는 하지만 말하기는 조금 부족하여 한국 직원은 그에게 한국어로 말하고, 그는 우리에게 영어로 대답하는 기현상이 항상 펼쳐졌다.
주말에 미들조로 일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Hee와 나 그리고 다른 직원 둘이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한 할머니와 손자 손님이 찾아와서 아이스크림 한 개를 주문했다. 맛은 아이가 고른 걸 보면 아이를 위한 것이었겠지. 그런데, 계산을 하는 중에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 가게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줄여서 아멕스 AMEX라고 한다) 카드를 받지 않는다. 비단 BRCQ뿐만 아니라 시드니의 많은 다른 가게들도 아멕스 카드를 받지 않았다(일전에 일했던 양산박도 그러했다). 아멕스 카드가 다른 카드사보다 수수료가 비싼가? 아니면 결제기기에 터미널을 등록하는데 더 돈이 드는 걸까? 아무튼 아멕스 카드는 단순히 직원 재량으로 받는지 안 받는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게가 가지고 있는 결제 기계에 터미널 자체가 등록이 되지 않아 결제 자체가 진행이 안되었다.
할머니 손님은 손자에게 그가 고른 코튼 캔디 맛 아이스크림을 건네주고 나에게 아멕스 카드를 건네주었다.
"손님, 정말 죄송하지만 저희 가게는 아멕스 카드를 받지 않습니다. 혹시 다른 카드를 가지고 계신가요?"
"네? 저 다른 카드는 없어요. 아멕스만 두 개 있는데요?"
같은 카드사 카드만 두 개라고? 카드 운용을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나?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할머니가 지갑을 열어 보이며 다른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똑같은 아멕스 카드였다. 심지어 내게 미리 건네준 것과 똑같은 종류의 것.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황당해하고 있었는데, 마침 다른 일행의 서빙을 마친 Hee가 무슨 일인가 싶어 내 쪽으로 다가왔다.
"Hee, 이 손님이 아멕스만 두 개인데 이거 뭐 어떻게 하지?"
"아멕스만 두 개라고? (할머니가 손에 든 카드를 보더니)와 정말이네? 혹시 현금은 없으신가요?"
할머니는 주머니를 열심히 뒤져 1달러 80센트를 꺼냈다.
"현금은 이게 다예요."
할머니도 어쩔 줄 몰라하며 우리를 번갈아 보셨다. 결국 Hee가 할머니가 가진 현금만 받고 보내드렸다. 내가 이렇게 해도 되냐고 물으니,
"뭐 다른 방법이 없잖아?"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4년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다르네. 이렇게 해도 사장님이 크게 간섭하지는 않나 보다. 워낙 매출이 높은 매장이라 그런가...
나중에 매니저 님께 혹시 손님이 아멕스만 가지고 있어서 결제를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냐 물었더니, 결제가 불가능 하니 이미 서빙이 나갔어도 다시 아이스크림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Hee, 너 일을 너무 대충 배운 거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