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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내 생일이란 말이에요!

BRCQ에서 8

by 지안

BRCQ는 위치가 위치인 만큼 단골 고객들보다는 한번 오고 마는 관광객들이 고객의 주를 이뤘다. 그리고 BRCQ를 찾는 관광객들 역시 굳이 배스킨라빈스를 찾아왔다기보다는 오페라 하우스로 가는 길에 배스킨라빈스가 있으니 먹고 간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들이 프로모션을 외우는 것에 약했다. 프로모션을 따로 챙기거나 이벤트 바우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손님들이 거의 없던 탓이다.


하루는 가게를 오픈하고 몇 분 안 됐을 때, 혼자 일하고 있었다. 한 여고생 무리가 가게 앞을 지나갔다. 얼핏 세어보니 7명쯤으로 보였다. 그녀들이 가게 앞을 지나갈 때, 속으로 제발 그냥 지나가라 그냥 지나가라 빌었는데, 불길한 예감은 틀리질 않네. 그녀들은 가게 앞을 지나가나 싶더니, 무리 중 한 학생이 "얘들아 아이스크림 먹을래?" 하는 외침에 모두 우르르 매장으로 다가왔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매장 직원이 나 혼자였는데, 미쳐 다른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서빙을 시작했다. 심지어 한 사람이 몰아서 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씩 자기 몫만 결제를 했다. 그렇게 시간이 좀 걸렸고 마지막 일곱 번째 학생 차례가 왔다. 맨 처음 서빙해준 친구는 이미 자기 몫을 다 먹었고 친구들이 주문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괜시리 미안하네.


"주문 도와드릴까요?"

"네, 저... 민트 초콜릿 칩 아이스크림이요. 컵에 주세요."

"네. 민트 초콜릿 칩. 컵에요."
"아 저기, 혹시 무료 아이스크림으로 받을 수 있나요?"

"예?"


갑자기 무료로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무슨 말이지?


"무료로 아이스크림을 달라구요? ...왜요?"

"오늘이 내 생일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배스킨라빈스의 프로모션들을 잘 숙지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 미안해요 학생. 하지만 그때는 도대체 네 생일인 거랑 내가 무료로 아이스크림을 주는 거랑 무슨 상관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안 됩니다. 무료로 아이스크림을 드릴 수는 없어요."

"네? 하지만 오늘이 내 생일이란 말이에요!"


학생이 격양된 목소리로 생일을 한 번 더 강조하자 옆에 친구들이 맞장구치며 생일인데 왜 무료 아이스크림이 없는지 추궁하기 시작했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무료 아이스크림은 없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으면 돈을 내라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배스킨라빈스 앱을 깔고 생일을 등록하면 생일 날짜에 맞춰 무료 아이스크림 한 스쿱이 바우처 형태로 지급되는 것이었다. 미안해요 학생들. 나는 정말 학생들이 생일을 핑계로 가게를 돌아다니며 터무니없는 걸 요구하고 다니는 불량배들인 줄 알았어.




BRCQ에서 일하다 보면 주로 이상한 손님들은 낮보다는 밤에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은 오페라 하우스 근처 바(bar)에서 술에 취해서 오는 사람들이었는데, 오히려 이런 취객들은 말만 잘 맞춰주면 상대하기 쉬웠다. 진짜 상대하기 어려운 손님들은 자기들 나라에서, 자기들 사회에서만 통용되는 논리를 가지고 와서 직원들과 자꾸 말싸움을 걸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2019년 5월의 어느 날, 마감조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시간은 10시가 넘었고 슬슬 청소를 시작하는 등 마감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한 젊은 여자 손님이 가게에 찾아와서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나는 청소를 준비하고 있었고, 다른 직원이 서빙을 해 드렸는데, 결제를 하는 데 문제가 있는지 그 직원이 나를 급하게 불렀다. 무슨 일인가 하고 봤는데, 손님이 한 번도 못 본 할인 코드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손님 이 할인 코드는 저희 매장 시스템에 전혀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혹시 다른 바우처를 가지고 있진 않으세요?"

"네? 저 저번에도 이 코드로 여기서 할인받았어요."

"네? 저번에도 할인을 받으셨다고요? 그럼 이 코드가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저번에 사용하셨는데?"

"네 물론이죠. 여기 그렇게 쓰여 있잖아요."


그녀가 보여준 상세페이지에는 그냥 할인을 위한 코드라고만 쓰여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녀는 그 코드를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도 이미 우리 가게에서 사용한 적이 있다고 했으니, 이 코드가 뭔지 아는 다른 직원이 있다는 뜻인가?


"혹시 저번에 이 코드를 저희 가게에서 사용하실 때 어떤 직원이 서빙을 해 드렸나요?"

"잘은 모르겠어요. 저번에 와서 쓴 것은 확실해요."

"혹시 직원이 남자였나요? 여자였나요?"

"남자였어요."


거짓말이다. 2019년 5월에 매장에서 주 6일 이상 일하는 남자 직원은 나밖에 없었고, 다른 세명의 남자 직원들은 각자 사정을 바빠져서 일주일에 한 번이나 일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것도 모두 나와 함께 일하는 시프트로.


"남자 직원이 확실한가요? 저희가 본사로부터 전달받은 프로모션에는 해당 코드가 전혀 없어요. 리딤(Redeem)하는 방법도 없고요."

"아뇨... 정확하진 않은데... 다른 곳에서 썼나..? 아무튼 썼어요! 저번에는 할인을 받았다고요."


99% 확률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본사랑 직접 소통하는 사람도 아니고, 만약에 진짜 할인 코드라면 우리 쪽에 등록이 안 되었다는 이유로 할인을 해 주지 않는다면 손님에게 큰 실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중에 사장님께 다시 물어보기로 하고 일단은 할인된 가격으로 결제해 주었다.


나중에 사장님께 직접 물어봤는데, 당신도 할인 코드 같은 건 금시초문이라고 알아보겠다고 했다. 사장님은 매장 매출에는 지대한 관심이 있지만, 매장 운영과 직원들의 애로사항에는 크게 방점을 두는 인물은 아니었다. 결국 2019년 6월 말, 내가 일을 그만둘 때까지 할인 코드는 진짜였는지 모른 채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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