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CQ에서 10
2018년 11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었다. 계절은 어느덧 완연한 여름으로 접어들었고, 나는 주 72시간 노동의 한가운데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체력적으로 힘들어질 것이 뻔하긴 했는데, 당시 나는 시급이 싸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고 일이 그렇기 힘들지 않은 BRCQ와 시급이 조금 더 낫지만, 몸을 주로 쓰는 일이라, 체력적으로 조금 힘든 편인 양산박에서 동시에 일하고 있었다.
하루는 BRCQ 사장님이 나를 조용히 불러내더니, 양산박 일을 그만두고 BRCQ에 전념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다. 시급도 올려주겠다고 했는데, 무려 지급받고 있는 13불에서 17불로 파격적인 제안을 하셨다. 사장님이 그러한 제안을 한 이유는 (지난 글에서 이미 설명한) Hannah의 출퇴근 문제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현재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Agnes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곧 그만두어야 한다는 점이 컸다. 매니저가 하는 일은 단순히 서빙 외에도 이것저것 잡다한 일이 많았는데, 사장님은 새로운 매니저를 뽑는 것보다는, 나와 Hannah, 그리고, 나보다 3개월 정도 빨리 일을 시작한 Jin에게 매니저 일감을 시간별로 나눠서 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투잡을 뛰고 있는 지금 보다야 한 주간 벌이는 더 낮아지겠지만, 좀 더 일이 쉽고 편하고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높은 시급으로 일할 수 있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사장님의 바로 제안을 수락했다.
Jin은 나보다 4살 어린 학생이었다. 185cm 정도의 큰 키에 포동포동한 몸 때문인지 실제 나이보다는 좀 더 성숙해 보였다. 그는 국적은 한국이지만, 시드니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어렸을 때는 중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살았다고 한다. 물론 중국어도 잘했다. 그는 일에 관해서는 조금 까탈스러운 성격이었는데, 본인과 본인이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는 유독 관대한, 약간 어린애 같은 면이 있는 친구였다. 뭐, 그만큼 그를 싫어하는 직원들도 몇몇 있었다. 일을 절대 못하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장님이 꽤나 아끼는 직원이기도 했다. 영어도 잘하고 중국어도 잘하는 데다, 말이 많기도 하고 활발한 편이라 그런지 업 세일링(Upsailing, 고객들에게 은근히 더 좋은 옵션들을 소개해서 손님들이 기꺼이 돈을 더 내고 물건을 구매하게 하는 것) 분야에서는 매장 내 직원들 중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부매니저가 되었다고 해도, 하고 있는 일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Agnes 매니저님이 떠나기 전에 알아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을 알려주었고, (카드결제기 터미널에 따른 카드 할인 방법이라던지,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코카콜라 영업관리 담당자가 하는 일과 응대하는 법이라던지 등이었다) 곧바로 다음 주에 나는 주 17불을 받으며 행복한 알바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Agnes 매니저님은 2019년 2월에 그만두게 되었다. 당초 예상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그래도 그 빈자리가 꽤 컸다. 무엇보다 직원 대부분 학생비자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일했기 때문에, 3개월만 넘겨도 일을 좀 오래 하는 사람이 돼버리는 환경에서는, 몇 년간 일을 해 온 매니저님의 공백이 결코 작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터졌을 때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어져 버리기도 했고. 이제 적어도 내가 일하는 시간에는 내가 매니저님처럼 든든한 사람이 되어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