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CQ에서 18
BRCQ에서 일하면서, 한국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과 비교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차이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장애인 손님'이라고 말할 것이다.
BRCQ에는 몇몇 단골손님들이 있었다. 그래도 9개월 가까이 일 했던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아이스크림을 항상 주문하는지 모두 외울 수 있었고, 실제로 단골손님들이 오면 모두 내가 도맡아서 서빙을 했다. 단골손님들은 대게 평범한 한 스쿱 두 스쿱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그들이 좋아하는 레시피의 아이스크림이 따로 있었고, 그걸 다른 직원들이 일일이 듣는 것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내가 맡아서 진행하는 편이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BRCQ의 단골손님 중에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커플도 있었다. 남자 손님은 까무잡잡한 얼굴과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 그리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기른 듯한 콧수염과 턱수염이 인상적인 사람이었고, 여자 손님은 약간 어두운 금발에 사시 눈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 손님은 매주 항상 찾아왔고, 여자 손님은 함께 올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았을 때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의 주문은 항상 똑같았는데, 남자는 초콜릿 브라우니와 피넛 버터 초콜릿 아이스크림에 생크림을 얹지 않는 선데(Sundae), 여자는 초콜릿 무스 아이스크림 컵으로 한 스쿱이었다.
처음에는 Agnes매니저님께서 이분들의 주문을 받았고, 옆에서 와플을 구우면서 매니저님 서빙을 보고 있던 나에게 저분들이 단골손님이며, 항상 똑같은 메뉴를 주문해서, 아예 외워버리면 편하다고 알려주었다. 이후 Agnes가 떠나가고 내가 이 분들은 도맡다시피 했는데, 어느 날 문득, 이 분들은 어떻게 BRCQ까지 와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쉽게 오페라하우스 쪽으로 관광 올 수 있도록, 써큘러 키(Circular Quay) 역 내에서 오페라하우스까지는 턱이 단 한 군데도 존재하지 않았다. 완벽한 평지였다. 물론 계단은 있었지만, 계단이 있는 곳 옆에는 반드시 엘리베이터 혹은 경사로가 있었다. 지하철을 탈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드니의 지하철은 2층으로 되어있는데, 좌석이 2층으로 배열된 것이고, 차량의 문 앞에는 반드시 큰 공간과 좌석이 따로 있었다. 모두 장애인 승객을 위한 공간이었다.
휠체어를 탄 승객이 탈 수 있는 차량이 따로 있는 한국 지하철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BRCQ에서 일하면서 맞은 손님들 중에 적어도 5-6%는 장애인 손님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오는 사람, 지팡이로 앞을 짚으면서 오는 사람, 화상으로 얼굴 한 편이 크게 다친 사람, 지적장애로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 알비노 환자 등등 수많은 장애인 손님들을 맞았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아니, 굳이 일이 아니라, 그냥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장애인들을 볼 수 있었나? 생각해 보았는데, 결코 아니었다. 한국이 호주보다 더 장애인이 적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어쩌면 조그마한 문턱에 막혀 사회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가끔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