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CQ에서 17
2019년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이스크림 장사는 계절을 굉장히 많이 타는데, 오페라하우스 옆의 아이스크림 가게는 거기다가 관광객들의 방문수에 따라 성수기, 비수기의 차이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여름휴가(북반구에는 겨울 휴가)가 모두 끝난 시점에 BRCQ는 파리나 날리고 있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한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께서 갑자기 배스킨 라빈스 본사에서 교육 담당 직원이 방문한다는 말을 했다. 교육이라니? 벌써 BRCQ에서 7개월 가까이 일했는데, 별 다른 이슈도 없었고, 우리는 모두 잘 일하고 있었는데요? 사장님이 말하길 원래 매년 받아야 하는 교육이었는데, 그동안은 Agnes매니저가 잘 무마해서 넘겼었는데, 지금 가게에 매니저가 없는 상황이니 한 번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신청하셨다고 했다.
본사에서 온 교육 담당 직원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분이었다. 금발의 백인이었고, 굉장히 쾌활하고 활기찬 성격으로 직원들을 대해주었다. 그녀는 5일간 BRCQ에서 교육을 진행했는데, 일주일에 6일 근무하는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매일 볼 수밖에 없었다. 호주의 배스킨 라빈스 본사는 브리즈번(Brisbane)에 위치해있는데(시드니에서 북쪽으로 대략 1,000km 정도 떨어진 큰 도시이다), 그러면 5일 동안 시드니 어디서 머무는지 물었더니 호텔에서 생활한다고 했다.
"호텔이요? 그러면 너무 힘들지 않나요? 교육을 우리 지점만 받는 건 아닐 거잖아요."
"네, 하지만 저는 이 일이 좋습니다. 호주 전역을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번 교육이 끝나면 브리즈번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멜버른으로 출장을 간답니다. 새로운 도시로 떠나는 것은 항상 기분 좋은 일이에요."
그녀는 아무래도 본사의 교육 지침들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내려온 직원이어서 그런지, 굉장히 매뉴얼적인 조언들을 항상 해 주었다. 주로 냉장고를 닦는 천은 어디에 두는지, 설거지는 어떻게 하는지 서빙할 때는 어떤 말들을 해야 하는지 등등이었다. 그녀의 교육 내용들은 한가할 때는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는데, 사람이 몰리고 바빠지면 하등 쓸모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손님들이 줄줄이 30분씩 서서 기다리며 앞사람에게 빨리빨리 주문하라고 불평해대는 마당에, 걸레를 어디에 두는지, 서빙할 때 해야 할 말들이 뭐가 있는지 등은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빨리 내가 서빙하는 손님을 넘기고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교육을 마치고 떠난 뒤에, 우리는 한동안 그녀가 전수해 준(?) 지침들을 따라 행동했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는 마당에 손님들이 몰리는 시기도 아니어서 그런지, 크게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6월이 되어 시드니 최대 축제 중 하나인 비비드 축제가 시작되었고, 매장이 다시 한번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장님께서 나서서 말하시길 굳이 교육내용들을 따르지 말고, 빨리 서빙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하라고 하셨다. 결국 아쉽게도 교육은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