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깊은 밤을 날아서

by 지안의 문장


홀로 넘어서야 하는 밤이 있다. 그 밤 안에서 어떤 외로움은 꼭 필요하다. 어둠을 뚫고 해가 뜨며 밝은 하루를 다시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이 꼭 있어야만 하는 것처럼.


밤 9시에서 10시 사이는 아이가 잠드는 시간이다. 이른 시간인 8시에 잠자리로 들어가도 꼭 9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곤 한다. 잠이 드는 시간 동안 아이의 고단함을 씻어주려 마사지도 해주고, 책도 읽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날은 이 모든 걸 다 해주어도 자기 싫다며 투정 섞인 울음을 보인다. 그러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주전자 속 물이 팔팔 끓어 넘치듯 아이를 향한 인내심이 바닥나며 화도 난다.


‘할 일이 남았는데...’


아빠가 재워주면 고맙겠지만 나의 아이는 엄마하고만 자고 싶어 한다. 아이의 깊고도 한없는 사랑을 받는 건데도 아주 가끔은 이른 육퇴를 해 보고 싶다.


참 희한하게도 ‘밤에 좀 더 늦게까지 써 보자. 수정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는 날이면, 독심술을 써서 듣기라도 한 건지 아이는 아예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엄마 옆에 더 붙어있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다. 간신히 재우고 지친 마음을 이끌어 거실 식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컴컴한 거실. 주황색 불빛이 도는 보조등만 켜두고 오전에 써둔 글을 다시 읽어보는 시간 동안 냉장고와 공기청정기가 돌아가는 낮은 웅웅 거림만이 들려온다. 이 밤의 소리를 들으며 어느새 옆에 앉아 있는 남편과 함께 타닥타닥 타자기 소리를 얹는다. 외로움을 이겨내야 하는 밤이 찾아온 것이다. 조용한 집안의 소음을 듣고 있자면 알아서 졸음이 눈꺼풀로 내린다. 그 무거움을 떨치며 머리를 부여잡고 집중한다.


극 중에 내던져진 은수가 화장실의 세계에서 고군분투할 때, 그가 존재하기 위해 흘린 땀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화장실의 가파른 중력을 피해 어항 속 물고기가 되게 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작가가 된 나는 더욱 무겁게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마치 본드가 발라져 있는 것처럼. 흘러가는 밤의 시간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오래 앉아 생긴 허리로 전해오는 뻐근한 통증과 글을 쓰기 시작한 20대부터 생긴 목과 어깨의 뒤틀림, 손목의 시큰함을 무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은수가 중력을 거스르는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새벽 1시. 다음 날을 위해서는 이만 잠자리에 들어서야 한다. 기다려온 시간이니만큼 두 다리를 쭉 뻗고 그저 눈만 감으면 되는 것이다.


‘이다음은 어떻게 수정할 건데요. 작가님?’


잠을 자러 들어가려던 내 엉덩이를 붙잡는 모니터 속 커서는 멈추지 않고 깜빡이며 재촉한다. 더 이상 머리를 돌아가게 하려고 해도 가동할 동력이 없다. 그럼에도 들여다본다. 이 깊은 밤의 시간을 지나야 하니까. 따뜻했던 차 한 잔은 작은 컵 속에서 밍밍하게 식어버렸다. 시원하지도 뜨겁지도 않은 차를 입안에 머금으며 희곡 속 은수와 만난다.


“근데 계속 읽을수록 은수의 말투가 너무 상투적이야.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거 같아.”


은수도 식어버린 차와 같은 말투를 쓰는 건가? 밤을 날아오르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모든 뻐근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썼는데. 읽어내는 남편의 입에서 새어 나온 저 말이 날개를 꺾어버리니 말이다.


“그럼 어쩌지?”


막막함에 불쑥 나온 말. 어쩌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지. 작가가 만든 세계를 공연이 올라가기 직전까지 고치는 것은 숙명인데.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인 거다. 은수의 말투를 재정비하기로 했다.


‘은수 너는 온갖 생산성을 위한 시스템들과 맞짱 떠야 하는 존재야. 그런데 그렇게 나긋하고 고분고분하면 얻다 써먹니.’


이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그의 세계를 또 바꾼다.


“대공사일 거 같은데... 괜한 말을 했나?”


웃기게도 남편이 미안해한다.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데.


“해야지 뭐. 그것밖에 방법이 없으니까.”


일주일 남았다. 그 시간 동안 이 깊은 밤을 계속해서 날아오를 수밖에. 외로움을 이겨내고 엉덩이를 식탁 의자에 딱 붙여 놓고.


"엄마..."


아이가 안방 문을 열고 나온다. 엄마가 없어서 잠을 잘 수 없다며 놀라서 다가간 나를 꼭 안아준다. 남은 밤은 아이의 옆에서 눈을 감고 자야 하나 보다. 남편과 함께 거실의 소음을 뒤로한 채 잠자리로 들어선다.


가족의 모든 밤이 깊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혼자 외로움을 감당하고, 홀로 밤을 건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렇지 않음을 안다. 작은 희망을 갖고 바늘구멍처럼 좁은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합격의 문턱을 넘고자 애쓴다. 비록 닿지 못하더라도, 무거운 엉덩이로 식탁을 지키며 함께 날아오른 이 깊은 밤이 우리 가족의 역사에 두고두고 새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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