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쓸모없는 것들의 다정함

1. 시를 옮겨 적는 아침

by 지안의 문장


붉은빛을 넓게 퍼트리며 나아가는 아침 해를 본다. 지구가 돌아 어둠 속에서 빛을 길어 올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일 마주하는 이 빛은 새삼 경이롭다. 이 귀한 빛을 받아 깨어난 하루를 그저 바쁘게만 쓴다면 조금 슬프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다정함을 주기 위해,

부러 작고 쓸모없는 시간을 만들려 부산을 떤다.


아침 해가 느긋하게 우리 집 창가에 닿을 무렵, 강아지처럼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듯한 아이의 엉덩이와 보폭을 맞춰 화장실로 들어간다. 씻고 나오면 본격적인 ‘등원의 꼬리 물기’가 시작된다. 꼬리 물기란 등원이라는 마침표를 찍어야 비로소 사라지는, 아침 일과의 긴 꼬리를 말한다.


나의 건강을 챙기기도 전에 도마 위 야채를 탁탁 썰어낸다. 매일 먹어도 영양가가 풍부하다는 계란과 함께 지글거리는 냄비 위에서 볶음밥을 뚝딱 만들어낸다. 과일 하나도 씻어서 내오면 식탁 위에 두런두런 이야기가 오간다. 책을 몇 권 읽어주며 생각을 나누고, 아이가 원하는 옷을 골라 입히면 꼬리 물기가 하나씩 이어져 마침내 현관 앞에서 멈춘다. 그다음 등원은 아빠의 몫이 되고, 부단히 움직이던 나의 손과 발은 다시 어질러진 구석구석을 정돈하는 데 힘을 쓴다.


똑같은 풍경에서 아주 조금의 변수만 남은 하루가 쳇바퀴처럼 굴러간다. 그럼에도 이런 매일이 고맙다. 아무 일이 없음에. 무탈함이 남았음에.


그 무탈함은 자연스레 식탁 앞자리로 나를 이끈다. 고요한 순간을 부디 온전히 즐기길 바라며. 식탁 위에는 읽다 만 것들이 쌓여있다. 이야기를 쓰기 위한 작법 책, 좋아하는 소설, 그리고 계속 읽어내고 싶은 시집. 그중 제일 먼저 손이 가는 건 시집이다.

시는 한 번만 읽게 되지 않는다. 읽었던 부분을 다시 곱씹고, 적어보기도 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저 마음에 남기기 위해 문장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짧은 순간 마음이 차오른다. 스스로를 충만하게 했다는 생각에 다정한 기운이 번진다.


아끼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공책. 굳이 잘 쓰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얇은 펜. 그것을 들어 글자를 새겨나가는 풍경을 눈으로 목격하는 시간은, 괜히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 착각을 준다. 그 착각이 싫지 않다.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무언가를 해냈음을 인식하는, 이 ‘쓰는 행위’가 무언의 위로가 된다. 오늘의 나를 꽉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허락한다.


나는 일부러 이 쓸모없는 부산함을 누리기로 했다. 그것은 나와의 친밀도를 높이는 일이라 여겨진다. 마음의 서랍에는 꼬깃한 종이 쪼가리 안에 남긴, 기억나지 않는 글귀까지 담겨있을 테니. 그 서랍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다. 작은 것들의 다정함을 더해 나를 다시 채우기 위해.

사각거리는 종이 위의 펜은 시 한 편을 적어내며 무엇을 그려낼까?


미래로 가는 내가 아닌, 현재의 내가 남긴 기억의 흔적을 고스란히 꾹꾹 누른다. 시를 읽고 적어내는 것은 쓸모없어도 괜찮은 나를 꾹꾹 눌러 담는 일. 그것이 나다운, 나답고 싶은 아름다움이다.


이 작고 쓸모없는 다정함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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