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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맹이 Apr 29. 2024

착각이 준 선물

(그림은 초등 2학년 아이의 선물입니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배신한 남자 친구에게 물을 뿌리고 가는 모습, 그때 남자 친구가 가지 말라며 여주인공의 손목을 잡는 모습이 나왔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의 여중생이라서 그랬던 걸까? 나도 그런 장면을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남자에게 손 한번 잡혀보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 집, 독서실만 오가는 내 삶에서 남자친구를 만날 기회는 없었다. 또 내 모습에 자신이 없던 시절이라 솔직히 지나친 욕심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학교 3학년의 어느 날.

독서실에서 공부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인데 뒤에서 누군가가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동네에서 잘 생겼다고 소문난 재만 오빠였다. 처음엔 내 주위의 다른 사람을 향한 듯한 오빠의 눈빛이 가까이 올수록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 나였다! 분명히.


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오다니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순간이 바로 이런 걸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가까이 온 재만 오빠는 내 손을 확 잡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잡혀 본 남자의 손이었다.

오빠는 당시 귀하디 귀한 포카칩까지 내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이거 큰언니한테 좀 가져다줄래?”


접시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기분이었다. 여주인공은 단 몇 초 만에 배경이 되었다. 잘 생겼던 재만 오빠 얼굴은 완전 밉상이 되었고, 손에 쥔 포카칩은 제일 싫어하는 과자가 되었다. 되돌아가는 재만 오빠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집으로 가는 내내 부끄럽고 민망했다.

결국 포카칩은 내가 다 먹어버렸고, 큰언니에겐 그 일을 말하지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하고 싶었던 그 경험을 아직도 이루지 못한 채 내 나이 마흔여덟살이 되었다. 

세월이 약이라서일까? 아니면 그 오빠보다 더 멋진 신랑을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서일까? 

가끔 편의점에서 포카칩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포카칩 때문에, 그 오빠 때문에 민망하고 부끄러웠던 내가,

포카칩 덕분에, 그 오빠 덕분에 지금은 웃고 있다.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처럼 시간이 흐르니 그날의 일들은 다시 안 올 나의 중학교 3학년 시절을 소중하고 값지게 돌아볼 수 있게 만든 추억이 되었다. 

가슴 깊이 간직한 바람이 있었던 그 시절의 나,

잠깐이었지만, 비록 착각이었지만, 설렘 가득했던 여중생 시절의 나를 그리워할 수 있는 선물 같은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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