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릴 때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신랑의 실직. 그 후로 이어진 생활고.
꼭 필요한 곳 말고는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아이 내복 살 돈도 없던 시절이라.
몇 천 원 하는 커피는 그야말로 사치였다.
그런데 나의 입은 눈치 없게 커피가 계속 먹고 싶었다.
돈은 없는데 중독처럼 카페인이 생각나 하루는 농*가서 먹고 하루는 새*을*고 가서 먹기를 반복하며 살았다.
그러길 몇 년
남편이 사업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른 체 겁 없이, 급한 마음에 시작한 터라 원래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매니저에게 대부분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직원들 간에 약간의 다툼이 생겼고 신랑이 매니저를 진정시킨다며 아메리카노를 사다 줬다.
순간 눈깔이 뒤집혔다. 그건 나에게 단순한 커피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힘들고 속상할 때 자신도 태어나서 이런 시련이 처음이라며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살던 남편이었는데 누군가를 위로하고 챙겨 준다는 자체가 분노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싸구려 커피 마시려고 여기저기 구걸하러 돌아다닌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해 펑펑 울었다.
나를 더 화나게 한 건 그런 내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남편의 말과 마음이었다.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을 밤새 남편에게 퍼부었다.
퍼부어도 퍼부어도 미안하다는 한 마디 들을 수 없어 나의 악다구니는 더 독해지기만 했다.
그러고 얼마 후 내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
지루해하는 빈이를 데리고 편의점으로 가신 시어머니 “빈아 먹고 싶은 거 다 골라 할머니가 다 사줄게”라고 하셨는데 우리 빈이는 딱 하나 고르더니 “이거면 됐어요 할머니” 했단다.
더 골라도 된다는 할머니에게 괜찮다며 얼른 가자고...
그러곤 쏜살같이 나에게 달려와
“엄마! 이거 아 메 리 카 노 맞지?”
라며 일곱 살 작은 손에 들려있던 커피를 내밀었다.
막 한글을 배우고 있을 때였는데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엄마가 소리치며 먹고 싶다던 그 아메리카노를 아이의 마음에 새겼던 그날, 얼마나 아팠을까?
난 아이를 안고 그날의 나처럼 또 한 번 펑펑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