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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맹이 Apr 25. 2024

준비 ! 탕!


“준비, 탕”

출발신호와 함께 제일 작은 키의 나는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반쯤 찢어진 엄지발가락 때문에 조금 전까지 제대로 걷지도 못했는데 언제 아팠냐는 듯 악착같이 볼살을 흔들며 달렸다.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오직 1등을 향해 뛰었고, 가장 먼저 결승선에 도착했다. 운동화 속 양말이 피에 흥건히 젖을 만큼 열심히 달렸던 초등 2학년 때의 가을 운동회였다.


내 삶은 항상 악착같았다.

지기 싫어했고, 내 단점이 들키는 게 싫어서 더 열심히 살았다.

직장에서도, 엄마로서도, 며느리로서도 참아냈고 이겨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 내가 얻은 건 공황장애다.

그렇다 난 공황장애 환자다.

증상이 심해져서 정신과 진료를 시작했다.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너무 무서웠다.

‘갑자기 쓰러지면 어떡하지?’

매일 아이의 손을 잡고 엄마가 쓰러지면 119에 전화하고 집 주소 말하고 아빠한테 연락하라는 얘길 하며 불안해했다. 연예인들이 많이 걸린다는 병이 연예인 본 적도 없는 내가 걸렸다는 게 이해도 되지 않고 무서웠고 억울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주변에선 공황장애라고 하면 “살만한가 보네, 그런 병 걸리는 거 보니”라는 반응이다.

욕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내가 하는 대답은 “그러게”였다.

이 대답을 한 번, 두 번 반복하게 되면서 갑자기 깨달았다.

‘나 연예인이었구나!’

턱까지 차오르는 욕이 내가 하고 싶은 거였는데 아닌 척, 착한 척, 남들에게 좋은 소리 들으려고,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남들에게 재수 없게 보이지 않으려고 연기하고 살았구나!


‘내 인생에 나는 없었구나!’


갑자기 미안했다. 나를 챙기지 못한 나 자신에게.

목이 아팠다.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열심히만 살아왔구나. 방향도 모른 체…

한참을 아파하다 문득 어쩌면 공황장애가 나 자신을 보듬어 주라고, 이제부터라도 나의 길을 가라고 보내는 신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여기서 다시 시작하라고…’

몇 년 전부터 보내온 그 신호를 이제야 알아차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그래! 다시 해보자. 다시 일어서자. 다시 출발선에 서자.’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아픈 발가락처럼 지금도 아픈 마음을 안고 있지만 이제는 그 때 가보지 않았던 다른 길을 가기 위해 달려보자. 내가 원한다면 그 길이 옳은 길이다. 


“준비”


“탕!”







대표





© nhoizey,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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