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이미 들을 만큼 들어온 이 명제는 놀랍게도 여전히, 여러 강연의 주제로 등장한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단어를 바꿔가며 멋을 부릴 뿐, 결국 실체는 '그러니까 사실 네 마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스무 살 초반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 나도 이제 마음을 좀 다르게 먹어보자."라고 다짐을 했었지만 요즘은 아니다. 결국엔 뻔한 얘기인데 마치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듯,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에겐 외려 반감이 든다.
"누가 그걸 모르나요?"
사람들은 종종 행복하기 위해서, 내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회사에서도 상사가 시키는 일만 해서는 절대 발전할 수 없고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서 해야 한다고 말이다. 또, 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그 상황을 현명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누가 그걸 모르냐고요."
신입사원 시절, 나의 첫 팀장은 몹시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본인의 권위를 '명령에의 복종'으로 확인받고 싶어 했던 그가 당시 내게 내린 명령 중 하나는 오전 7시 40분까지 출근 하란 것이었다. (회사의 공식 출근시간은 9시고, 분위기상 출근시간은 8시 30분이었다.) 팀장은 세 번을 어기면 아주 크게 혼낼 거라는 조건도 달았다. 그동안 이미 '어떠한 정당성도 없는' 명령들에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고 있던 나는 숨이 막혔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기왕 일찍 오는 거 기분 좋게 출근해. 아침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면 좋잖아? 시키는 대로 하면 노예가 될 뿐이야. 스스로 부지런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마음가짐을 달리해 봐. 아침에 와서 30분간 독서를 하든지. 그런 식으로 시간을 지혜롭게 쓰면 서로 좋은 거 아니겠어?"
암요. 그렇고말고요. 그러나 매일 아침 시간에 쫓기며 압박감 속에 출근했던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침잠이 많고 출퇴근 거리가 멀었던 이유도 있지만, 강압에 의한 정신적인 피로가 쌓이자 자꾸 몸에도 이상이 왔다. 모든 것이 전부 싫어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대체 왜'라는 물음표가 떠다니기 시작했고 나는 울면서 출근하고 울면서 퇴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누군가 내게 이에 대해 '마음의 문제'를 들먹인다면, 나는 당신이 과연 어떤 상황에서도 교과서처럼 마음을 빠르고 쉽게 고쳐먹고, 교과서처럼 의연하게 행동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그리고 그 교과서에는 왜 '친구를 진심으로 위로하는 방법'은 없는지도.
힘들다는 친구에게 '힘내'라는 위로만큼 무성의한 게 없는 것처럼, 마음이 지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네 마음의 문제'라고 하는 건, 이미 알고 있는 병명을 굳이 한 번 더 알려주는 매우 불필요한 친절함 일 것이다. 힘든 시간을 보낸 후 나에게 '위로'는 칭찬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됐다. 누군가의 아픔에 습관처럼 내뱉던 '힘내'라는 말 역시 내 사전에서 지워졌다.
조금만 마음을 고쳐먹으면 모든 것이 변할 거라는 말 때문에, 가뜩이나 아픈 마음, 잘 고쳐지지도 않는다며 속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많은 질병들의 치료는, 완치보다는 더 악화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데 목표를 두기도 하니까. 사람 마음은 모양도 점성도 다 다르다. 때문에 누군가의 마음은 말랑말랑해서 변형이 자유롭다 해도 다른 누군가에겐 미미한 변화도 몹시 어려운 일이 된다. 게다가 결국 따져보면 마음의 문제가 아닌 경우도 많지 않나. 그러니 더이상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말로 우리를 '내 마음 하나 제대로 조절 못하는 바보'로 내몰지 말아주기를. 'mindset의 차이죠'라는 말로 내겐 너무도 벅찬 문제들을 함부로 단정 짓지 말아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