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고침 1. 안녕, 넌 언제 그렇게 커버린 거니.

과잉 자의식 해체하기

by 플럼

타이밍이라는 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책에도 타이밍이 있다. 똑같은 글도 언제 어떤 식으로 읽게 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되기도 한다.


어느 날 남편이 내게 책 한 권을 추천해 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음을 좀 열고 읽어봐~.” 역행자 68쪽, 남편이 읽자마자 내가 덮어버릴까 걱정했던 바로 그 부분에서 나는 무언가 꽝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과잉자의식. 대다수의 머리 좋은 사람들이 일정 나이부터 ‘남 탓’만 하며 영원히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과잉 자의식이라는 이야기였다. 꽤 많은 불행과 가난이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이 한 문장은 30년 넘게, 그리고 지금도 나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모두 사실은 ‘나’에게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깨달음을 주고 말았다.


35년 만에 내 안에서 제멋대로 커져버린 거대한 자아에서 빠져나와 똑바로 마주하게 된 나는 어쩐지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키 160이 채 되지 않는 아담한 내 안에서 대체 이 자아는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걸까. 그 대책 없음에 어처구니가 없어 실실 웃음이 나기도 했다. (미친 건가)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전혀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남편이 지난 몇 년 동안 조심스레 몇 번씩 건네던 이야기이기도 했고, 유튜브나 여러 매체를 통해서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비현실적 계획을 세우고 미루기를 반복하는 학생들에게 ‘그건 자의식 과잉 아닐까?’라는 말도 수십 번 했던 나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난데없이 이 단어가 던진 화살이 내 자아에 명중한 꼴이다.


나는 모든 것들이 갑자기 한 번에 이해되기 시작했다. 넘치는 자신감에 비해 끊이질 않던 불평불만(결국 자신감이 아니었던 거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나 견딜 수 없었던 순간들, 내 곁을 떠나가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어리석게도 잘난 나를 시기 질투한다고 믿고 살던 날들. 꾸준한 노력으로 실력을 쌓을 생각 대신 따라주지 않던 운과 타이밍 탓만 하고 살던 시간들.


거대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자아를 원래의 크기대로돌아오게 하려면, 결국 날 향해 화살을 쏴야만 했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단단해진 자아는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아서, 나는 몇 번이고 날 향해 화살을 쏘아야만 했다. 많은 생각들이 잘못 되었음을,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은 나에게 있었음을. 잘난 맛에 살던 나의 자아에겐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일이 버거웠다.


이런 깨달음이 내게 왔다는 게 놀랍고,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몹시 괴롭고 아직도 진행 중이라, 이 글을 쓰면서도 자꾸 눈물이 난다. 모르고 살았으면 속은 편했을 텐데.


나는 누구보다도 날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나는 누구보다도 잘났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사실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는 걸 받아들이려니, 어쩐지 지난 시간 동안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 같아,

나에게 한없이 미안해지는 밤이다.


극복할 수 있을까.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 진짜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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