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나는 여전히 웃는다

by 맑을담


“아, 당신도 외로웠구나.”


며칠 전, 아내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이 자꾸 떠오른다.
그날 이후,

나는 아내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아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아내는 변했다.
출산 이후 30kg 이상 불어난 몸은

이제 그녀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고,
그 무게만큼이나 말수도 줄었다.


아이는 여전히 엄마 곁에서 자고,
나는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켜놓고 맥주를 마신다.


볼륨은 꺼두었다.

그냥 화면만 본다.
익숙한 장면이다.

매주 반복되는 토요일 밤.


아내는 예전엔 자주 웃었다.
밥을 먹다가, 드라마보다가,

아무 말도 없이 혼자 피식 웃던 사람.


요즘은 글쎄.
언제 마지막으로 웃는 얼굴을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날, 회사에서 일찍 끝나 오랜만에 꽃을 샀다.
별 뜻은 없었다.
퇴근길 슈퍼 앞에서 문득 생각났다.


“애 엄마한테 꽃이라도 사다 줄까?”


예전엔 종종 했던 일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꽃다발을 건넸을 때,

아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뭐야?”


“그냥. 지나가다 보여서.”


아내는 꽃을 받아들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 미소가 조금 아팠다.
예전 같았으면

“와, 꽃이다~” 하며 좋아했을 텐데.


기쁨보다,

멈칫거리는 조심스러움이 먼저였다.


며칠 뒤, 그 꽃은

주방 창가에 그대로 있었다.


물을 자주 갈아주진 못했는지,

금방 시들었다.


나는 시든 꽃을 버리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얼마나 오랫동안,

기뻐하는 법을 잊고 있었을까.


기뻐해도 되는 순간에 망설여야 했던 걸까.


나는 아직 잘 웃는다.
아이가 “아빠~” 하며 달려오면 자동처럼 웃고,
동네 슈퍼 주인이 “고생 많으시죠” 하면 웃는다.

그래야 다 괜찮은 것 같으니까.
사실은 괜찮지 않아도.


하지만 그 웃음 뒤엔,

자주 쓸쓸함이 따라온다.


그 쓸쓸함이 그녀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그녀가 변한 만큼, 나도 분명 변했을 테니까.


요즘 나는 아내를 자주 본다.
말은 없지만, 관찰한다.


아이 머리를 묶어주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 모든 장면에서
그녀는 늘 바쁘다.
숨 쉴 틈도 없이, 누군가를 챙긴다.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있는 그녀를 보면
왠지 모르게 미안해진다.


잠깐이라도 ‘쉬는 중’이 아니라

‘고장난 기계처럼 멈춰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내가 본 것보다,

보지 못한 게 많았겠구나.
내가 들은 것보다,

듣지 않은 말이 훨씬 많았겠구나.
늦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웃는다.


예전처럼 가볍진 않다.
이제는 조금 묵직한 마음으로 웃는다.


그녀가 걸어온 길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사람의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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