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새로운 가정을 꾸려도 본래의 가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결혼할 때쯤 내가 나이 든 만큼 부모님도 딱 그만큼 나이 드신다. 태산 같던 부모님의 어깨가 이제는 왠지 축 처져 보여 코 끝이 찡할 때가 있다. 부모님의 생애주기 단계가 노년기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결혼을 하면 내 인생만 바뀌는 게 아니라, 부모님의 삶의 형태도 바뀐다. 그리고 가족 속에 오래 묵어있던 혹은 예정된 문제나 사건들이 벌어진다. 나이가 드시면서 부모님의 건강이 약해진다. 은퇴 시기와 맞물리면서 부모님의 관계나 경제적인 문제가 터지기도 한다. 형제나 자매가 결혼해서 가족 형태가 변하고 또 부모님의 새로운 역할이 생기기도 한다. 가족 간의 갈등이 해결되기도 하고, 그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
물론 부모님께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실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늘 난관에 부딪히는 때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실 때다. 그래서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할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수많은 영향을 받아오며 느낀 점이 있다.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개입하면 할수록 나아지는 영역이 있고, 함께 우울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가족마다 살아온 방식이 달라서 이게 정답이라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나의 삶도 계속해서 굴러가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 옆에 딱 달라붙어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 드릴 수 없다. 하지만 자식인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처해 볼 수는 있다. 단계별로 시도하거나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1. 옆에 있어드리기 2. 함께 고민하기 3. 단호하게 외면하기. 가능하면 3번은 피하는 게 좋다.
첫째, 옆에 있어드리기. 나이가 들고 몸이 하나씩 고장 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이다. 몸도 마음도 약해진다. 부모님께서 걱정이 있으실 때, 울적하실 때, 지쳐하실 때 잔소리하거나 짜증만 낼 것이 아니다.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드라마에서는 노인이 된 두 친구 “희자”와 “정아”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부모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정아: (다리를 삐끗하며 소리를 낸다.) 아얏.
희자: 다쳤어? 앉아봐, 괜찮아?
정아: 나이를 먹으니까 자꾸 다리에 힘이 빠지네…
희자: 자식들은 우리가 다리에 힘 빠지는 건 모르고, 우리 늙은이들더러 정신 차리라고만 하잖아. 갓난쟁이가 정신 차린다고 잘 걷니? 우리도 그냥 나이가 그런 건데. 그냥 좀 앉았다 가자. 내가 기운이 있으면 널 업고 갈 텐데.
그렇다. 부모님과 함께 길을 걷다 힘에 부쳐하시면 그저 잠깐 쉬어가면 된다. 부모는 자식을 키울 때 자식 문제를 내 문제라 생각하고 온 힘을 쏟아 해결한다. 하지만 자식은 크고 나면 자기 혼자 큰 줄 안다. 부모님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라며 단호하게 잘라내기도 한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별로 좋지 않은 말이 있는데, 부모님 입장에서는 다 큰 자식들이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으실 것 같다.
부모님이 힘들어하실 때는 그냥 마음으로 옆에 있어드리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기운 내실 때가 많다. 문제를 직접 해결해드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부모님은 내면에 힘이 있으시다. 체력은 덜 할지 모르지만 우리보다 곱절 이상 더 산 세월만큼 쌓인 연륜이 있다. 그 힘을 믿어드리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힘도 없는 노인으로 취급하는 순간, 그때 부모님은 진짜로 힘없는 노인이 되는 거다.
둘째, 함께 고민해 드리기. 해결 가능한 것들은 같이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언젠가 친정에 금전적인 문제가 생긴 적이 있다. 친정 부모님께서는 은퇴 시점과 더불어 이런저런 일들이 한꺼번에 맞물리는 바람에 사면초가 상태에 놓이셨다. 사람이 너무 고립되거나 궁지에 몰리면 제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한순간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질 수 있다는 걸 그때 부모님을 보면서 느꼈다. 자식들이 당장 그만한 큰돈을 모아놓은 상태도 아니었다. 하지만 언니와 나는 힘을 모아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너무 고맙고 감사하게도 남편과 형부까지 힘을 더해줬다. 직접 돈을 보태어 도움을 드리기도 하고, 은행권에서 가능한 방법을 백방으로 찾아드리기도 했다.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숨통을 조여오던 큰일이 일단락됐다. 그 후 부모님께서는 자식과 사위들에게 면목이 없다며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 반면, 자식들은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가 그럴 나이가 된 것뿐이다. 부모의 보호 속에만 있다가, 부모를 보호해야 하는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셋째, 단호하게 외면하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때는 결단력 있게 끊어내야 한다. 인연을 끊으라는 게 아니다. 마음에서 적정한 거리를 두고 감정적으로 분리를 잘하라는 뜻이다. 내가 아빠에게 그랬다. 몇 년 전 아빠의 정년퇴직은 좋은 의미로 또 나쁜 의미로도 집안의 큰 사건이었다. 모 대기업에서 35년 이상 근속하신 아빠는 회사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시다. 그래서 퇴직 후 허탈함과 상실감이라는 엄청난 후폭풍이 아빠를 뒤덮쳤다. 매일 같이 나가던 직장이 사라지고, 하루 24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생활하시는 게 쉽지 않은 일이셨을 것이다.
얼마 뒤 언니가 아이를 가졌고, 아빠에게 첫 손주가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다른 집 할아버지들은 손주 보는 낙에 살아가신다던데, 우리 아빠에게는 그 기쁨마저도 순간의 감정이신 것 같았다. 여전히 아빠는 가족과의 시간이나 새로운 취미를 즐기시는 것보다 사회에서 계속 필요한 존재로 남고 싶어 하셨다. 또 주관이 굉장히 강하시고 정치, 사회, 역사에 대한 주제를 좋아하신다. 그러다 보니 가족과는 깊은 대화를 많이 해오지 않으셨고, 딸들과도 자꾸 생각이 어긋날 때가 많았다.
결정적으로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끝없는 우울의 동굴 속으로 들어갈 때가 많다. 아빠는 다소 비관적인 면이 있으시다. 가족들은 지금까지 아빠가 이루신 성취들과 그에 대한 감사함을 많이 표현했다. 한 회사에서 정년퇴직까지 버티신 것, 두 딸 모두 명문대에 보내 사회인으로 성장시키신 것, 퇴직 전에 자식들 다 결혼시키신 것, 든든한 두 사위들을 가족으로 맞이하신 것, 보물 같은 첫 손자가 생기신 것. 이 외에도 여러 밝은 면들을 강조하며 아빠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닿지 못했다. 아빠는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면들을 자꾸 곱씹으셨다. 은퇴 후 시간이 많아지자, 아빠 스스로 본인의 인생에서 해결하지 못한 여러 지점들을 생각하셨다. 본인의 힘들었던 유년기와 청년기의 상처, 당신의 부모에 대한 원망스러움, 형제들과 해결하지 못한 갈등에 대한 아쉬움, 아내와 자식들은 본인을 온전히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서러움, 더 이상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못한다는 허망감. 아빠는 이와 같은 감정들에 집중하며 우울로 빠져드셨다.
또 가족들은 아빠에게 그동안 수고 많으셨다고 휴식을 취하시라 했다. 하지만 아빠는 재취업을 위해 끊임없이 면접을 보러 다니셨고, 떨어지실 때마다 아빠의 자존감은 곤두박질쳤다. 이제 그 우울감은 가족이 도무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위로의 말도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오히려 그런 아빠와 계속 대화하다 보면 내 일상까지 우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나는 아빠와 감정적으로 분리되기로 결심했다. 아빠에게도 드디어 본인의 인생을 돌아보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신 거라 믿었다. 그렇다. 내 속 편하자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다짐했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아빠의 감정이 더 이상 나의 감정이 되지 않도록 거리를 뒀다.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옆에 붙어 있으면 서로 상처 주는 말만 오갈 뿐이다.
아빠가 가진 마음의 문제는 결국 아빠가 해결하셔야 한다. 나에게도 소중한 나의 인생이 있고, 새롭게 꾸린 가정도 있다. 내 인생과 내 가정을 지키는 것 또한 나의 임무다. 이제 내가 아빠에게 바라는 건 단 하나다. 그 시간을 충분히 잘 보내신 후 다시 가족들과 추억을 만들어갈 의지를 가지고 돌아오시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선택한 방법은 멀리서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방법을 선택해서 부모님을 대하든 그건 각자의 자유다. 어떤 쪽을 선택하든 그 결과를 책임지면 된다. 모든 문제를 직접 다 해결해 드리면 효심 가득한 자식이라는 뿌듯함을 얻는다. 대신 그 시간 동안 내 인생 그리고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균형이 깨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반대로 외면하는 것만이 답도 아니다. 미우나 고우나 나의 부모다. 자식은 부모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절연한다 하더라도 걱정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잘 결정해야 한다. 우선 부모와의 관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부터 구분 지어야 한다. 나아가 내가 할 수도 있고 의욕도 있는 일, 할 수는 있지만 내 삶의 균형이 크게 깨지는 일, 하면서도 신경질낼 일, 기분 좋게 흔쾌히 할 수 있는 일로 더 세분화해야 한다. 그리고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떤 종류에 해당하는 문제인지 신중히 판단해서 주체적으로 대처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섣불리 개입하면 안 된다. 코 앞에 닥친 문제는 해결되더라도, 오히려 부모와의 관계는 한층 더 틀어질 수 있다.
쉽고도 어려운 것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