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안 Sep 15. 2023

이혼하는 과정인 줄 알았더니, 철이 드는 과정이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때의 의미와 이치를 알고 적절하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이 표현은 농부의 말에서 유래됐다는 의견이 있는데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농부는 매 절기마다 반복해서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때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잘 지을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 농부에게는 절기가 바뀌는 “철”을 아는 게 중요하다.


사람들은 이를 인생에 비유하면서 여러 의미로 사용한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 함부로 화내지 않는 것,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지는 것, 겸손해지는 것, 배려하는 것. 이외에도 다양하게 표현하지만, 핵심은 자기중심적인 삶의 형태에서 벗어나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것을 뜻한다.


철이 들기 위해서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또 내가 깎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진득한 사랑”에 빠져보는 것이다. 반드시 이성과의 사랑이 아니어도 된다. 부모, 자식, 형제자매, 연인, 친구, 반려동물 모두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랑을 하면서 크게 부딪히는 난관은 바로 상대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 슬픔, 낙담, 체념, 질투, 미움, 짜증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온갖 애를 쓴다. 화를 내기도 하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하고, 논리적으로 싸워보기도 하고, 속임수를 써보기도 하고, 감언이설로 회유해보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매달려보기까지 한다. 하지만 만만치 않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 오로지 나 혼자 존재할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 누군가와 부딪히고 맞춰가면서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무인도에 고립되어 있지 않다. 언제나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내 마음 같지 않은 일들 속에 파묻힌다. 그리고 매번 벌어지는 새로운 일들에 대처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성적인 접촉뿐만 아니라 배려, 공감, 보살핌, 존중, 헌신, 연민, 신뢰라는 또 다른 사랑의 모양까지 계속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나는 연애와 결혼 그리고 이혼을 고민하다가 다시 회복해서 남편과 결혼을 유지하고 있는 이 길고도 짧은 5년 동안 철이 들고 있었다.


한 사람과 깊은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때로는 아팠고 때로는 행복했다. 그리고 나와 가족 그리고 타인과 사회를 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뾰족했던 성격도 사회화가 됐다. 꼭 결혼의 형태가 아니어도 되지만, 가능하다면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성숙해지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이다. 어쨌거나 단단히 발이 묶인 상태에서 함께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등학생 때부터 이미 터득한 사실이 있다. 시험을 치지 않으면 절대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마감 기한이 있고 또 그 결과가 나오는 상황에 놓일 때 두뇌는 빠르게 회전하고 묘수가 떠오르기도 한다. 게다가 팀플레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승리를 위해서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과도 협동해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성장해 왔다.


결혼을 하고 난 후 그 가정을 유지하는 건 시험과 마찬가지다. 어떤 방식과 형태로든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면 그 안에서 나름대로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거다. 물론 이혼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해보았는지 여부에 따라서 그 결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충분히 노력한 후 이별을 택한다면 그다음 찾아오는 사랑은 훨씬 더 성숙하게 지킬 수 있을 거다. 막상 주변을 둘러보면 결혼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꽤 많다. 하지만 막장 드라마 같은 이혼 사건들이 자극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막연하게 결혼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가지는 것 같다. 참 안타깝다. 


비혼주의자들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그 생각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확고한 신념인지, 왜 자신이 비혼주의를 택하게 되었는지, 막연히 내 여건상 못할 것 같아서 체념한 것은 아닌지, 주변에서 보고 듣는 말들을 내 신념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주워들은 말은 어떤 사람의 입을 통해 나왔는지, 그 사람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의 “진짜 신념”이 아닌데 어설프게 내 것이라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지금 그 착각 때문에 좋은 인연을 만나 사랑할 타이밍을 놓쳐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길 바란다.


어쩌면, 사회적으로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아지는 요즘 상황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두 눈 크게 뜨고 미래를 함께 할 원석을 찾기 딱 좋은 시기라는 말이다. 서로의 진가를 알아봐 주고 함께 성장할 사람을 만나는 건 일생일대 최고의 기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