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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Sep 14. 2023

우리도 이제 누군가의 부모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뭐 하나 완벽하게 이뤄진 건 없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아이를 갖는 일만은 계획대로 됐다. 나는 내 인생이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 임신에 대해서 늘 고민이었다. 아기를 좋아하지만, 엄마가 될 준비는 한참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다툼이 있을 때마다 속으로 되뇌기도 했다. “휴… 다행이다. 아직 아이가 없어서. 그럼 이혼 못할 뻔했네.”라고 말이다. 신혼 초에는 남편과의 관계가 변함없이 굳건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기에 더 조심스러웠다.


남편은 아이를 원했지만, 내 결정을 기다릴 뿐이었다. 육아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어쨌거나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많은 부분 여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임신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선, 남편과 관계가 안정됐다. 남편이 나와 미래에 생길 아이를 중심으로 가정을 지킬 거라는 믿음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바뀌었다. 부모가 되려면 몸과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건강을 관리하고, 본가나 친구보다도 언제나 새로운 가정을 최우선으로 움직여야 한다. 덜컥 아이를 가진다고 진짜 부모가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언젠가 남편과 이혼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내가 감당할 자신이 생겼을 때 아이를 계획했다. 남편은 이 점을 매우 서운해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부부는 서로 의존적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말이다.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러지 못해서, 결혼하고 난 후 마음 준비를 하는데만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굳이 그렇게까지 고민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겠지만, 이 시간은 아이를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다. 행복한 가정 혹은 위기가 있더라도 부모가 씩씩하게 살아가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건강하게 잘 성장할 수 있다. 또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임신하면 어떤 힘든 일이 닥쳐와도 나 스스로 잘 이겨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남편에게 아이를 갖자고 이야기했다. 배란테스트기까지 구매해서 계획한 달에 임신 시도를 했다. 다행히 한 번에 성공했다. 나와 남편은 엄마와 아빠가 됐다는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함께 부모가 되는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약속하고 실천에 옮겼다. 부모가 되려면 어떤 형태로든 “부모 교육”을 받고 가능만 하다면 “부모 자격증”까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생명을 온전히 키워내기 위해서는 부모도 자격이 필요하다. 낳는다고 다가 아니다. 물론 부모도 모든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늘 노력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남편과 나는 전문가들의 각종 영상과 책을 통해 육아를 공부했다. 소아과 의사, 소아정신과 전문의, 임상심리전문가를 비롯해 관련 전문가들을 통해 배우고 있다. 생각보다 부모가 되는 과정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준비 없이 아이를 키울 수도 있겠지만, 공부를 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글로 배운 것과 현실 사이에 다른 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모험하는 것보다 100배 아니 1000배는 더 나을 것이다.


부모가 되기 위해 또 하나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나와 부모의 관계,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아야 한다. 좋은 기억은 되살리고, 힘들었던 경험이 있으면 그 감정을 잘 해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와 부모와의 관계를 나와 자식의 관계에 대입하거나, 내 감정을 자식에게 전가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말하길, 부모와의 관계가 다시 대물림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결국 우리도 부모와 형성된 애착관계를 토대로 성인이 되었고 또다시 누군가의 부모가 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결혼하기 전에 이미 이 작업을 한 적이 있다. 20대 중반에 어떤 선배와 고민을 상담하며 부모님과의 관계 그리고 유년기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선배는 대뜸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감은 단 한 스푼도 들어있지 않았다. “너도 이제 곧 30살이야. 부모님과의 관계와 유년기의 경험을 탓하기에는, 너도 이제 다 큰 어른이야. 설령 니가 아직까지 그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부터 니 인생은 다 니가 만든 결과야.” 내 지인들은 왜 죄다 이 모양일까. 공감능력 제로다. 아프지만 맞는 말이라 참는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마냥 좋기만 한 자식은 이 나라에 아니 이 지구에 없을 것이다. 사랑과 증오, 이해와 원망이 짬뽕된 관계다. 부모님은 우리 나이 혹은 그보다 더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됐다. 요즘처럼 정보도 많이 없고 먹고살기 바쁜 시대에 이 정도 키워주셨으면 최선을 다하신 거다. 설령 그게 아니라도 지금 와서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그래서 생각한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부모님과의 관계에 아쉬움을 느끼는 것보다, 내가 조금 더 좋은 부모가 되는 걸 꿈꾸는 것도 좋겠다고.


아이를 가지면 부모님을 이해하는 부분도 늘어난다. 처음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했을 때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다음에는 난황, 그다음에는 꿈틀거리는 태아 그리고 그 이후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경한 감정을 느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모든 단계가 부모로서 처음 겪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겠지. 매번 처음 겪는 상황에 부딪히며 적응할 부분도 산더미일 것이다. 나 역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지만, 모든 미션을 한 번에 성공하지는 못할 것 같다. 부모도 자식과 함께 성장해갈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 자식도 나에 대해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며 가끔 원망도 할 것이다. 나는 그때 또 한 번 부모님을 이해하는 시간을 경험할 것이다.


아이는 나와 남편이 만든 사랑의 결실이자, 부모님을 이해하는 통로다. 아이 갖기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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