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 오프화이트
CNP가 만든 도산분식, 아우어 같이 [힙함]을 표방하는 가게들 기저에는 묘하게 흐르는 기류가 있었다. 차분하고, 디테일도 좋은데, 무언가 모르게 느껴지는 해방감. 고즈넉한 이 동네들에서 뿜어져나오는 이 기류들은 어디서부터 시작된것인지 궁금했다.
CNP의 창립 멤버인 서한영 스타일리스트의 글을 읽다가 독특한 구절을 발견했다. "저는 스니커즈를 정말 좋아해요." 아, 이거 였다. #shoegames
지난번 갤러리아명품관에 들렸다가 놀랐던 기억이 있다. 명품관 대부분의 매장에서 스니커즈를 팔고 있는 것. 이것은 현대백화점 본점도 비슷했다. 양말 같이 생긴 스피드러너를 흥행시킨 발렌시아가. 힙의 대세가 된 구찌 뿐만이 아니었다. 고전적인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도, 루이비통도, 샤넬도 모두 스니커즈를 팔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잘".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작년 한해의 스니커즈 매출이 10% 성장한 4.4조원으로 핸드백보다 나은 성과를 보였다고 한다. 엔트리급 명품으로 밀레니얼 세대와의 접점도 높이고, 매출도 늘리고. 명품브랜드들이 스니커즈에 집중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처사였다. 명품에서 시작된 이 열풍은, 컨템포러리브랜드나 Zara와 같은 SPA까지 빠르게 번졌고 대세가 되었다.
열심히 스니커즈를 구경하면서 돌아다니는데, 명품관에서 유난히 사람들이 많은 가게가 있었다. 오프화이트. 페이크 퍼 같은 옷들도 보이고, 자유분방한 옷과 스니커즈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전 같으면 명품관에 입점할 브랜드가 아닌 것 같은데. 뭐지? 신생 브랜드인가. 찾아보니, 현재 루이비통의 디자이너로 발탁된 버질아블로의 브랜드였다. 여러 브랜드들과 협업을 하며, 외연을 확장한 오프 화이트는 2018년 3분기 구찌와 발렌시아가를 뒤로하고, 핫한 패션브랜드 1위로 꼽혔다고.
이 정도 브랜드면 플래그십이 하나 정도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과연 어느 동네에 오픈했을까. 궁금했다. Hip 아이콘이 된 오프-화이트 플래그십은 2018년 청담동에 오픈했다. '이젠 청담동도 젊어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슬몃 들었다.
오프화이트 서울 프리스탠딩은 고즈넉한 청담동 이면에 위치해 있었다. 무게감 있는 어두운 톤의 건물에, 하얗게 빛나고 있는 미스매치가 예뻤다. 과하지 않으나, 묘한 일탈감이 느껴졌다. 매장안에는 한정판으로 줄을 서서 샀다던, 컨버스와 콜라보한 [척 70]이 있었다. 하얀 컨버스 신발에 오프화이트 패턴이 들어가있고, 주황색 끈이 둘러져있었다. 차분하지만 세련되었고, 일탈감과 함께 묘한 쾌감이 이는 디자인이었다. 패알못인 내가 봐도 정말 예뻤다. 이거 지금 살수 있나요? 라는 질문에, 직원은 "아니요. 인스타그램으로 등록하시고 신청하셔야 하는데 이미 모두 완판 되었습니다."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아이고, 무슨 신발 하나 사는 것이 이리 힘든가. 당시 발매가는 7만원이었는데, 현재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리셀가격은 약 40만원대였다.
저 상품이라면, 적당히 내가 추구하는 컨셉을 표현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클래식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해방감이 느껴지는 세련된 감성. 물론 오프화이트의 모든 제품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었다. 컨버스와 콜라보한 저 제품이 그랬다는것이지. 아 사고 싶었다.
사람들이 명품을 소비하는 심리에는 나를 표현하기 위함이 기저에 깔려있다. 한정판 명품 스니커즈가 잘 팔리는 이유는, 명품의 무게감은 지니되, Hip한 나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재미있는 것은, 단순한 명품이 인기있던 시대에서 힙한 명품들이 인기를 얻는 지금, 그것을 품고 있는 동네의 기운도 변하고 성장해간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트렌드가 된 이 젊은 느낌을 잘 기억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