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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기행 Aug 07. 2022

오래가는 빙수집의 비결

장꼬방에서 맛본 8월의 맛


#지안기행

#열무엄마의동네열바퀴


8월의 첫 금요일. 이 무더운 여름에 빙수를 먹으러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럴 수가. 어디에 가면 빙수를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 퇴근길에 보았던 근처 장꼬방이 떠올랐다. 국내산 팥 100%라고 큼직하게 써 붙인 곳. 직접 팥을 쑤는 만큼 맛도 좋을 것  같아, 점심을 가볍게 먹고 길을 나섰다.


회사 앞 진흥아파트 사거리는 볼 때마다 흥미로운 권역이다. 한쪽은 개발을 기다리는 롯데칠성 부지. 건너편은 재개발을 기다리는 진흥아파트. 그 건너편은 대형 학원인 해커스. 다른 한쪽은 오피스. 회사원, 거주민,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가 존재하는 곳. 다양한 수요가 있는 입지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무엇을 팔아야 권역의 수요에 부합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게의 문을 열었다.


진흥아파트 사거리


우선 빙수 한 그릇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오픈 주방 한쪽에는 팥 삶는 가마솥이 있고. 한쪽에서는 떡을 팔고 있다. 팥을 매개로 빙수와 단팥죽을 팔고 있었다. 아무래도 빙수는 여름에 찾는 손님이 많다 보니, 계절을 타지 않는 떡을 파는 것이 현명한 선택 같았다.


떡을 파는 입구와 가마솥이 있는 주방


 "오픈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물어보니 1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한 자리에서 10년을 잘 버텼다는 것은 그 동네에 잘 스며들었다는 것 아닐까? 누가 이곳의 손님일까? 생각하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기 손을 붙잡고 온 엄마, 친구분들과 함께 오신 할머니. 편안한 캐주얼 복장의 직장인들. 모자 푹 눌러쓰고 온 고등학생. 다들 편안하게 빙수 한 그릇 먹으러 온 모습이었다. 매장이 가득 차진 했지만 그렇다고 줄을 서야 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슬리퍼 신고 와서, 맛있게 한 그릇 먹고 가는 곳이었다.


주문한 빙수가 나왔다. 하얀 우유 얼음이 소복하게 쌓여있고. 그 위에 동글동글한 팥들이 올라가 있다. 팥은 뭉개지지 않았음에도 아주 부드럽게 삶겨있었다. 뭉개지기 직전까지 그 경계선을 아주 잘 넘나들면서 부드럽게 삶은 맛있는 팥이었다. 과히 달지 않은 우유얼음과 함께 떠먹으니 좋았다. 채를 썰어 얹어준 밤도 오도독 씹히며 고급스러운 단맛을 더했다. 우유얼음, 팥, 밤 이렇게 세 가지 재료만 들어갔는데 정말 맛있었다. 딱 기본에 충실한 맛.


기본에 충실한 팥빙수

화려하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은데 금세 빙수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집밥 같은 빙수였다.


빙수를 한 그릇 다 비우고 나자, 어떻게 이 집이 10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켰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정성스럽게 팥을 삶고 우유얼음을 내어 내 가족 먹이듯이 한 그릇 한 그릇 팔고 있었다. 그랬기에 근처에 사시는 할머니도, 어머니들도 학생들도 아이들도. 그리고 직장인들도 이 집으로 발걸음하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


다채로운 수요를 보유한 입지 선택도 훌륭했지만, 그 수요를 자꾸 오는 손님으로 만드는 실력도 탁월한 집이었다. 나의 8월도 이 집의 빙수처럼 편안하지만, 담백하고 여운이 남기를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8월의

#장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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