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DDP 간송전
#지안기행
남편과 함께 동대문 디디피에서 열린 간송전에 다녀왔다. 초입에 붙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간송에게 투자할 물품을 선정하는 기준에 관해 물어 보았었나보다. 간송의 답변은 간결하였다. "탐나는 물건이 나타났을 때, 스스로의 취향보다는 그것이 이 땅에 꼭 남아야 할지 아닐지를 먼저 생각했소.(중략) 보존할 가치가 있는 귀한 유산이 나타났을 때에는 놓친 적이 거의 없소." .
간송의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 전시를 둘러보던 중, 한 화폭에 눈길이 갔다. 겸재 정선의 진경 산수화였다. 화폭옆에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거간인 장형수가 친일파인 송병준의 집을 구경하는데, 손자인 송재구가 들어오라 했다. 결국 거간은 그 집에서 하루 묵게 되었는데, 변소 가는길에 보니 하인이 겸재 정선의 화첩을 불쏘시개로 사용하려는게 아닌가. 깜짝 놀란 거간은 그 화첩을 20원에 사와 간송에게 되팔았다고 한다. 무려 1500원에. 」
이야기를 읽으면서 의문점이 들었다. 나라를 팔아먹을 정도로 재산 증식에 관심이 많았던 집안에서, 왜 아둔하게 저 그림의 가치는 알아보지 못하고, 불쏘시개로 사용했던 것일까. 그것도 일본 유학을 마치고 사업을 하던 사람이. 거간과 간송은 어떤 연유에서 저것을 구입한것일까? 자문하던 중, 전시를 보기위해 입장할 때 적힌 글귀가 떠올랐다. "이 땅에 꼭 남아야 할 지 아닐지." 겸재 정선은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산을 상상해서 그릴 때, 우리의 산을 직접 발로 걸어 다니며 그린 화가였다. 특히 저 화첩은 겸재가 노년에 다시 금강산을 방문하여 그렸던 것으로, 여백을 통해 서로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조화와 통합의 세계를 표방하고 있는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그의 그림은 우리의 문화를, 정신을 의미했다 .
나라도 파는데, 그 망한 나라에 담긴 정신 따위가 무엇이 중요했으랴. 그들이 이 화첩을 왜 불쏘시개로 사용하려 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켜야 할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가치있는 작품을 놓친 자들. 그들의 모습에 혀를 끌끌 차다, 아차싶어 자문해보았다. 오늘날 나의 모습 속에서 송재구의 어리석음이 발견되지는 않는지 .
물론 지금이 식민시대도 아니고, 나라를 팔아먹는 황당한 일은 없겠지. 그러나 고민의 끝자락에서 "투자와 투기"란 단어가 떠올랐다. 우리가 곧잘 혼용하는 두 단어.
우리는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파는 행위"에 쉽게 투자라는 단어를 붙인다. 하지만, 때론 이런 행위가 투기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투기"란 생산 활동과는 관계 없이 오직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금융자산이나 실물을 구입하는 행위를 일컸는다.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 안에 담긴 뜻을 읽지 못하고, 오직 가격만 바라보고 나의 이득을 생각하는 행위가 투기인 것이다 .
투자 대상의 본질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이 없으면, 쉽사리 투기에 기울게 된다. 조선의 가치를 몰랐기에 송재구는 나라를 쉽게 팔았고, 그 돈으로 재산을 불려나갔다. 그의 재산증식 과정은 투기에 가까웠다. 반면, 조선의 가치를 알고 전 재산을 들여 조선의 얼을 부여잡았던, 간송의 행위는 투자에 가까웠다. 간송이 이마저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우리의 것을 얼마나 알 수 있었을까. 그의 투자는 진정 가치있는 걸음이었다.
초기시점에 투기와 투자를 타인이 판단하기는 어렵다. 번드르한 말로 우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 다른 결과가 나온다. 따뜻한 눈으로 가꾸는 주인과, 그렇지 못한 주인의 결과물은 다르다. 그것이 간송과 송재구의 차이였다. 사람은 인센티브에 민감한 미물이라, 송재구와 같은 우를 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인생의 시간을 쓰기엔, 삶이 너무도 짧지 않은가. 나는 누구의 뒤를 좇아가는지. 누구의 뒤를 좇아가는 사람을 도와야할지 고민하게 되는 저녁이었다. 송재구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야겠다는 생각, 마음에 새기고 되새겼다 .
#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