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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기행 Mar 13. 2021

반전이 거듭된 커피 공간

ADDICTIVE 논현


회사를 옮기고 한 달이 지났다. 낯설던 생활에 서서히 익숙해지며,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새벽에 출근하고, 점심에 동료들과 밥을 먹고, 저녁에 집에 돌아가 아기와 시간을 보내고. 모든 것들이 참 좋은데. 딱 한 가지 아쉬웠다. 나와 보내는 시간, 내가 생각을 가다듬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일주일에 단 한 시간이라도, 나와 약속을 잡고 시간을 보내자고.


일주일에 단 한 시간. 장소는 멀리 갈 수 없는 만큼 회사 근처에서 찾아야 했다. '빌딩 숲 속 한복판에서 어디를 가야 할까?' 강남역 인근은 음식점과 카페 모두 낯설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인스타그램에 조심스레 올려보았다.


"강남역 인근 괜찮은 카페를 추천해주세요."


글을 올리고, 조금 지나자. 인친 세희 바리스타님께서 답변을 주셨다. "강남역에서는 조금 걸어야 하지만, 논현역 인근 Addictive를 추천드려요." 디엠을 받고, 그제야 떠올랐다. 맞다. 어딕티브가 있었지.  '중독성 있는'이라는 뜻을 담은 어딕티브는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올라왔던 곳이었다. 라테아트도 예뻤고, 지속적으로 피드가 올라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재방문이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세희님께 감사하다고, 곧 가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어딕티브 대표님께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궁금한 것들을 여쭐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세심한 마음씀에 감사했다.  


금요일 저녁. 퇴근을 하고, 논현역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무엇을 타고 가야 하나? 고민을 하다, 동네도 구경할 겸 그냥 걷기로 했다. 서초동 아파트들 옆을 걷다 보니, 다세대 주택들이 모인 곳이 보였다. 행정상으로는 반포동이었지만, 심리적으로는 논현동에 더 가까웠다. 다세대/다가구 주택들이 모여있었지만, 세로수길 인근과 달리, 아직 대부분 주택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오피스가 많지도 않고, 카투를 하는 사람들의 권역도 아니고. 대부분의 수요는 거주하는 사람들일 텐데. 카페를 하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입지였다.


카페로 향하는 가는 길, 그리고 카페 어딕티브의 외관

골목 안으로 들어가 한참을 걷는데,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던 공간이 보였다. '의자 두 개로 만든 힙한 입구.'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딕티브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작지만, 포토존이 정확하게 있는 등. 상당히 인스타그래머블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역시 깔끔하면서도 힙한 공간이 나왔다. 스틸 소재로 바가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었고, 힙한 스티커들과, 보드도 보였다. 나보다 최소 5년은 젊은 감성의 공간. ‘내 동생 방 같은데? 대표님 연배가 젊으신가 보다.’ 추측하며, 라테 한잔(4,500원)을 주문하고 하얀 테이블에 앉았다.


조금 기다리니, 해마가 그려진 라테가 나왔다. 하트가 그려진 라테는 익숙했지만, 해마는 처음이었다. 평범한 라테 가격을 지불했을 뿐인데, 정성 담긴 라테가 나오니 기분이 좋아졌다. 한 모금을 마셔보니, 우유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착 감겼다. '오늘 카투 성공이네.'


해마가 그려진 라테(좌), 웰치스맛이 나는 아이스드립(우)

공간은 젊고, 힙했지만. 내게 전달된 커피에는 내공의 무게가 쌓여있었다. 가볍게 만들어진 커피가 아니었다. 궁금해졌다. 이 공간을 만든 분은 어떤 분일까?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마시고, 대표님으로 추측되는 분께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대표님께서는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간단히 소개를 여쭈었다.


대표님께서는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저는 호텔리어 출신이에요. 신라호텔 드림팀에서 10년을 일하고, JW메리엇에서 근무하는 등. 총 16년을 근무하다, 시드니로 유학을 갔어요. 거기서 커피의 매력에 빠져, 업을 바꾸었고요."


'응, 16년?'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실례지만, 혹시 대표님 연배가..." 머뭇거리는 내게, 대표님께서 이야기하셨다. "저 생각보다 나이 많아요." 경력 16년에 호주로 유학까지 다녀오셨다면, 분명 최소 나보다 5-6살은 위이실 터. 아니, 그런데 어떻게. 이런 젊고 힙한 감성이 자연스레 공간에 배어 나오는 거지? 어안이 벙벙해진 내게. 대표님께서 설명을 덧붙이셨다.


"자영업을 하니, 생각처럼 밖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 모든 것을 이 공간 안에서 해결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제 모든 취미가 이곳에 녹아졌어요. 저는 보드를 타는 것도 좋아하고, 마술도 좋아하고 클라이밍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손님께서 오시면 마술도 보여드리고, 보드도 타실수 있게 해 드리고. 클라이밍에 관한 이야기도 나눠요. 함께  모여 노는 기분으로 이곳을 즐겁게 운영하고 있어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젊고 힙한 감성의 이 카페가 단순히 컨셉추얼 한 공간으로만 다가온 것이 아닌 이유를. 이 곳이 내 동생 방 같이 편안하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힙하면서도,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 흉내만 내었던 공간이 아니라, 만든 이가 온전히 담겨 있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머리를 쾅 맞은 것 같았다.


트렌드가 중요한 카페 업에서도 힙한 인테리어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은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얼마나 "주인장이 온전히 담겨있고, 자연스레 녹아져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궁금했던 사항들이 조금씩 풀려나갔다. 신라호텔 드림팀, JW 메리어트에서 갈고닦았던 경험은 자유분방하고 힙한 이 공간에서 중심축을 잡아주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화제가 된 라이프스타일 호텔들이 떠올랐다. 하얏트 계열의 안다즈를 비롯해, 호텔들은 벽을 허물고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었더랬지.


품격과 퀄리티는 잃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편안하게 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데. 어딕티브 또한 라이프스타일 호텔처럼 그것들을 아주 편안하고, 훌륭하게 수행해내고 있었다. 작지만, 분명 시대에 맞는 공간이었다.


대표님의 이야기가 좀 더 궁금해서 여쭤보았다. 16년 호텔리어 경력에 유학까지 갔는데도 불구하고. 업을 바꾸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대표님은 웃으며 대답하셨다. "시드니에 호텔에 관해 공부하러 갔는데, 오히려 커피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즐겁게 커피와 함께 하는 삶을 살다 보니, 어느덧 커피에 빠져 있더라고요. 시드니에서 커피는 제게 삶의 일부이자, 즐거움이었거든요. 인상적이었던 것이, 호주에서는 각 가게들에서 조그만 배틀 같은 것을 많이 열어요. 대회에 임하는 사람은 최선을 다하지만, 함께 축제처럼 즐기는 것이죠. 저도 이 공간에서도 그런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가게에서 대회를 연다고? 궁금한 마음에 조금 더 여쭤보니 대표님은 가게에서, 실력 있는 바리스타님을 심사위원으로 모셔놓고 대회를 진행했다고 하셨다. 대회의 주제는 "종이컵으로 만드는 라테아트" 신선했다. 피쳐 대신 종이컵으로 라테아트를 만든다니! 형식은 깼지만, 피쳐보다 약한 종이컵으로 라테아트를 만들려면 더 노련함이 필요했다.


종이컵으로 그린 해마 라테


가게를 돌아보니, 아기자기한 그림과 꽃다발들이 가득했다. 저건 무언가 보고 있는데 대표님께서 이야기하셨다. '지인분들께서 주신 선물들이에요. 어쩌면 제가 추구했던 공간의 느낌과는 조금 이질적일 수 있지만, 마음이 정말 고마워서. 잊고 싶지 않아서. 하나둘씩 걸어두기 시작했어요.' 손님들의 마음을 귀하게 여기는 대표님의 생각을 들으며, 온기가 느껴졌다. 스틸 소재로 둘러싸인 이 공간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모여서, 축제 같은 커피 대회를 열고. 서로 기뻐하고 즐기고. 선물도 주고받고.


어딕티브는 힙했지만, 내공은 깊었으며, 온도는 따스했다.


카페를 운영하기에 쉽지 않은 이 곳에서 단단하게 뿌리내려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간이 사람에게 다가온다는 것. 동네에 필요한 곳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 기분 좋은 금요일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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