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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기행 Nov 16. 2018

맛을 이어가는 것

장충동, 태극당


인근에서 세미나를 마친 후, 태극당에 들렸다. 나에게 태극당이란, 일부로 찾아가진 못해도 근처에 가면 꼭 들리게 되는 그런곳이다.


6학년 때였나, 교과서에서 태극당을 발견하고 꽤 놀란 기억이 있다. 할머니댁 근처에 있는 오래되고 낡은 동네 빵집인줄 알았던 태극당. 그러나 기록에 따르면, 이곳은 1970년대에는 꽤나 센세이셔널했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었다.


어릴적에 태극당에 가면 모나카 아이스크림만 먹었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놓여진 옛날 빵들은 꽤 비싼가격에 그리 맛있어보이지 않아 손이 선뜻 가지 않았다.


그런 태극당이 2015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공사를 하고 참 많이 바뀌었다. 손주의 손을 거쳐, 오래되고 컴컴했던 공간은 훨씬 밝아지고, 전반적인 브랜드 통일성도 갖추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빵들을 먹음직하게 전시해, 한번 들어가면 두 손 양가득 들고 나오게 되는 가게로 바뀌었다.


대단한 빵을 팔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에 가면 크림빵, 슈크림, 카스테라 이런 촌스럽고 오래된 빵들을 수북히 집어온다 .(물론 모나카 아이스크림 한통은 필수다.)

대단한 빵은 아니지만, 한입 베물면 행복하다. 계란 노른자가 가득 들어가 진한 크림이 담뿍 올려진 슈크림빵을 한입 베물면. '아 이게 진정한 슈크림이지'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 카스테라보다 몇 배 큰 사이즈의 고방 카스테라는 따끈한 우유랑 먹으면 부드럽고, 고소한 맛에 아주 기분이 좋아진다. 남편이 항상 찾는 크림빵은 맨빵에 생크림만 가득 올라가 있는데, 심플한 이 두가지가 잘 어울려 훌륭하다. (아쉽게도 오늘은 크림빵이 모두 매진되어 사질 못했다.)


태극당 내부 전경


태극당을 보면서 "계승"이란건 이런게 아닌가 싶었다. 오랜 시간 내려온 그 맛을 깊숙히 파고들어, 가장 핵심을 오늘날의 언어로 전달하는것. 내려온 맛이 시대의 흐름속에서 외면될 때, 왜 과거에 그 맛이 사랑받았는지 깊이 고민하고, 시대적 흐름에 맞춰 다시 전달하는 것.


태극당은 자신들의 맛의 본질이 좋은 재료, 한입 베물 때 입안 가득 채우는 그 풍성함에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작업을 통한 그들의 성공 비결은, 단순히 외관만 바꾼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맛을 고민하고, 그것을 최대한 잘 전달하려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제보다 포동이가되었다.


#지안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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