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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기행 Nov 22. 2018

도심속의 민속촌

익선동


회사를 마치고 오랫만에 익선동에 들렸다. 마지막으로 갔던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했다. 젊은 디벨로퍼들이 막 들어와서 으샤으샤하던 즈음이었는데. 다시 찾은 익선동은 그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해졌고, 사람도 많아졌다.


골목 초입에는 신장개업을 한 세느장이 있었다. 허름한 여관이었던 이곳은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분위기로 손님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곳이었다. 조그만 모자를 살포시 눌러쓰고 기다란 원피스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갔다. 미스터션샤인에 나올 법한 그들은 문 앞에서, 가게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세느장호텔

세느장뿐이 아니었다. 몇몇 다국적 가게들을 제외하고, 많은 가게들이 경성감성을 뿜고 있었다. 동백양과점, 경성과자점, 경양1920 등등. 복고 양장을 차려입은 이들이 가게들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신을 연출하고 있었다.


걷다보니 지인이 추천해 준 가게가 나왔다. 교토 느낌의 가정식집이었다. 중정에는 하얀돌이 깔려 있고, 벽에는 대나무가 심겨져 있었다. 개량한옥을 요렇게 리모델링 할 수도 있었구나. 다소 신선했다. 조선인들을 위해 지어졌던 개량한옥에 일본가옥이 웬말이냐 할 수도 있지만, 1920년대에 멈춰진 익선동이라면 이런 집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일본식 가옥처럼 리모델링한 개량한옥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를 추천받아 주문했다. 메뉴판을 대략 훑어보니 1만 2천원 전후였다. 연간 20%씩 상승한 부동산 가격이 메뉴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 같았다. 과연 이곳의 타겟은 누구일까. 평일 저녁이여서 그런지 과잠을 입고 온 대학생들도 있고, 20대의 젊은 친구들이 주로 보였다. SPA를 선호하고 경험 소비를 즐기는 밀레니얼세대들. 저들이 주요 타겟이라면 가격이 더 오르긴 힘들 것 같았다.


주문한 가지덮밥이 나왔다. 탱글한 노른자를 톡톡 깬 후, 볶은 가지와 비벼 한 술 떴다. 가게에 대학생들이 많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단맛이 가장 강하게 나오고, 뒤로는 짠맛과 고소한맛이 느껴졌다. 말 그대로 단짠단짠. 젊은 친구들 입맛에 맞춰져 있었다.


커피로 입가심을 하기 위해 고민하다, 대문이 두툼한 가게에 들어갔다. 한옥을 시크하게 개조한 까페였다. 곳곳에서 인스타감성이 묻어나왔다. 커피를 주문하고 살펴보니 앙버터를 함께 판다. 설마 여기는 단씁단씁인가 했는데, 정말이었다. 버터와 팥이 들어간 디저트를 버텨내려면, 커피가 이 정도의 쓴맛을 유지해야할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내겐 너무 씁쓸했다.

커피와 앙버터식빵

집으로 돌아와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익선동은 무엇을 파는 곳일까? 지나가던 남편이 한마디한다. "익선동은 민속촌이지. 그냥 체험을 파는 곳이야. 자네처럼 먹으러 가기보단." .


민속촌. 맞는 표현이었다. 개량한옥의 흔적을 간직했던 익선동은 재개발이 풀리며 상업시설로 급격히 변모했다. 바라만 보던 한옥에서,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음식도 먹을 수 있는 민속촌으로 바뀌고 있었다. 레트로 감성을 추구하는 밀레니얼들에게, 1920년대를 느끼게해주는 몇 안되는 공간이었다. 일반적인 음식점들보다, 상당 부분 인테리어에 신경을 써야 하는 민속촌이었다. 맛이 중요한 나보다는, 사진을 잘 찍는 인싸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익선동의 민속촌화,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 바라만 보는 박물관일 때보다, 체험할 수 있는 민속촌이 되었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덕분에 오른 임대료도 낼 수 있었고. 그러나 다음은 어떻게 해야할까? 5년 뒤에도 이 상권이 건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시간이 지나도 이곳이 꾸준하게 지속되기를 바란다면, 한번 왔던 사람들이 다시 오게 만들어야한다. "흉내"가 아니라 "진짜"를 주면서 "유사 경험"이 아닌, "진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품의 재현과 구성이 좀 더 뾰쪽해지고, 디테일해져야겠지. 단짠단짠에 멸치액젓 한숟갈을 더해 맛의 깊이를 내야한다.


빠른 시간 발전하기까지, 누군가의 땀과 눈물이 이곳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섣불리 말하기 조심스럽다. 말하기는 쉬워도 만들기는 정말 어렵지 않은가. 다만 누군가 애정을 쏟아 성장한 이곳이 천천히 주위의 맥락과 어우러지며, 시간의 켜가 쌓여가면 좋겠다는 바램이 들었다. 한번 떴다가 스러져가는 상권이 아니라, 꾸준히 사람들이 찾는 상권이 되기를.


#지안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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