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안기행 Nov 16. 2018

가성비 좋은 스시야

광화문

#지안기행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입이 매우 깔깔한 날.


피곤해서 그런지 입맛도 없고.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남편은 이런 날일수록 더 잘 먹어야 한다며,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회사 근방엔 이제 더 이상 색다른게 없어 남편. 그 밥이 그 밥이야.' 그래도 무언가 먹어야 하니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가 생각났다.


시엔스시 바이 오가와.

오가와에서 최근에 런칭한 세컨브랜드. 르메이에르 어딘가 오픈했다고 했는데, 그래 거기 한번 가보자.


광화문에서 가장 못생긴 빌딩으로 꼽히는 르메이에르 빌딩. 판매시설이 5층까지 있지만, 여기가 거기 같고, 저기도 거기 같은 동선 계획에 내부에서 길을 잃기 부지기수다. 오늘도 수차례 길을 잃고 간신히 찾아갔다. 지하에 있는줄 알았는데 2층 옛 감촌자리에 있더라.


시엔스시는 오마카세를 제공하는 오가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가격은 절반 가량에, 좀더 캐쥬얼한 느낌이었다. 맛도 가격에 비례할까봐 걱정하며 시엔초밥과 스페셜초밥을 시켰다.


스시가 나오고 한입 베어물자, 웃음이 나왔다. 최근에 누군가 블로그에 너무 맛있다고 "가세요 또 가세요"를 남발했는데 그 문구가 떠올랐다. 네타(생선살)가 하나 하나 정성껏 숙성되어 있었다. 오가와처럼 생선의 육즙이 잘 살아있었다. 향긋한 시소잎이 들어간 흰살 생선은 발란스가 훌륭했고, 신선한 우니는 쿰쿰한 잡내없이 단맛이 감돌았다.


시엔스시 2만3천원, 스페셜초밥 3만원. 점심런치는 1만5천원이었다. 가격 대비 만족도를 생각하면, 서울 내 단연 최고였다. 이 정도면 원가율이 많이 높을 것 같은데, 수지가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맛이 어떠셨어요?" 조심스레 물어보시는 사장님께 대답했다. "정말 맛있어요. 오가와랑 맛은 같은데 가격은 반값이네요." 사장님께서 웃으며 대답하셨다. 오가와와 시엔스시가 매일 함께 재료를 구입하여 비용은 낮추고 선도를 올린다고. 메인셰프가 여기에 상주하고 있어, 오가와의 맛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고 하셨다.


여기 임대료가 오가와가 있는 로얄빌딩보다 저렴한가요? 라고 여쭙고 싶었지만, 초면에 너무 실례가 될 것 같아 꾸욱 눌러참았다. 어쨌든 이 못생긴 르메이에르 빌딩의 낮은 임대료 덕분에, 원가율 높은 맛있는 스시를 광화문 한복판에서 먹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높은 임대료를 받는 건물을 만들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래서 층고도 높이고, 천장도 뚫고, 건물 밖 파사드도 바꿔보고, 서점과 같은 집객 시설도 넣어본다. 그런데 진짜 임대료를 잘 받는 건물을 만들기 위해선, 외부시설을 바꾸는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진정성 있는 임차인을 찾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


르메이에르 빌딩처럼 MD가 엉망이고, 내부 환기도 잘 안되고, 가게 찾기도 힘든 건물일지라도, 그 안에 맛있는 집들이 있으면 사람들은 꾸역 꾸역 찾아간다. 정성을 기울여 장사하는 가게들을 신기하게도 금방 알아챈다. 이런 진정성 있는 임차인들이 잘되고, 그들이 성장하여 임대료를 많이 내게 될 때, 비로소 그 건물도 좋은 건물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아이가 커가듯이, 좋은 건물로 서기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기달려줘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때로 우리는 너무 단시간에 성과를 보기위해 조급해하는 것이 아닌지. 숙성된 스시를 먹으며, 건물의 숙성에 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스시의숙성

#건물의숙성

#백투더베이직

#지안기행

매거진의 이전글 여우같은 플레그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