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
2018년 가로수길은 애플의 입성으로 말이 많았다. 유동인구도 적은데, 임대료는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이제 가로수길이 한물 갔다고 이야기했다. 누가 요즘 가로수길에 가냐고. 애플이 들어온 것을 감안해도 좀 심하다고. 저러다 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매매가 이뤄지고있다. 무슨 연유일까.
이유를 찾기 위해, 가로수길의 트렌드를 시기별로 짚어 보았다. 가로수길 상권은 크게 세번의 트렌드가 형성되었다. 1)소규모 가게들이 생겨난 시기 2)Zara나 H&M과 같이 대형 SPA 브랜드가 점령한 시기 3)애플 및 다양한 플레그십이 진격한 시기.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상권들은 대형 SPA 브랜드들이 점령한 시기에 스러졌다. 해당 상권의 특색이 사라지고, 굳이 그곳까지 찾아갈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로수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애플이 들어오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개인투자자들이 소유했던 건물이 기관투자자들에게 손바뀜되며, 일반적인 프랜차이즈나 대형 SPA 대신, 유니크한 외산브랜드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적절한 임차인을 구하지 못할 때에도 투자자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다양한 팝업 매장을 운영하며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2018년 애플을 시작으로, 비파티세리, 메종키츠네, 더앨리 등등의 다양한 외산브랜드들이 가로수길에 들어왔다. 반응이 좋았다.
애플은 오픈한 1월부터 핫했다.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핸드폰 사용 인구의 1/4 이상이 애플 유저인것을 감안하면, 한국에 하나 밖에 없는 매장이 핫한 것은 당연했다. 이 곳을 찾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애플의 효과는 생각보다 강력했다.
샌프란시스코의 3대빵집이라고 불리우는 비파티세리. 4월 오픈 이후 방문객이 줄어드는 듯 하더니, 점차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증가하였다. 처음에는 비어있던 4개층이 채워졌고, 주말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이 집의 시그니쳐 퀸아망은 베어물면 파샥하고 바스러진다. 바사삭한 겉과 달리 속에는 촉촉하게 설탕이 발려있어, 달콤하고 녹진했다. 버터 때문에 기름질 것 같아 우려했지만, 예상과 달리 텍스쳐가 산뜻했다. 이 샌프란시스코발 퀸아망은 프랑스에서 온 정통 퀸아망과는 달랐다. 이 개량종은 플레인 뿐 아니라 참깨, 맛차, 초콜릿 등 다양하게 변주를 주며 흥미를 유발했다. 생긴 것과 달리 부담 없는 가벼운 맛으로 많은 팬덤을 확보하며 손님들의 재방문을 유도하고 있었다.
정원 입구부터 줄을 서는 메종키츠네. 시럽같은 쫀쫀한 커피와 여우 쿠키로 인기몰이를 하는 곳이다. 커피를 미끼삼아 옷가게를 둘러보게 만든다. 오모테산도 감성의 대나무길을 들어가면, 매장 내부에서는 파리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삼성물산이 최근 재배치한 5개의 플래그십 중 밀레니얼세대의 트렌드를 가장 잘 간파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곳이다.
대만 프리미엄 밀크티를 파는 더앨리. 유동인구가 적은 평일 저녁에도 사람들이 북적인다. 식상할것 같은 밀크티에 왜 사람들이 몰려들까 싶어 주문을 했다. 점원은 따뜻하게 차를 우린 후, 신선한 우유를 넣어 밀크티를 건냈다. 부드럽게 삶긴 펄은 흐물거리지 않고 쫄깃했다. 시그니쳐 메뉴인 브라운슈거 디어리오카 밀크를 마시고 있노라니, 일본에서 건너온 흑사탕이 떠올랐다. 엄청 달달한데, 나름 흑당의 깊은 맛이 있었다 .
사람들은 왜 이 외산브랜드들에 반응하는 것일까? 과연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이고, 소비 접점은 무엇일까.
서울1호점이다. 서울에서 가장 먼저 오픈했고, 가로수길에만 있거나 다른지역에 몇 개 없으니 다들 이곳에 몰려들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엔 조금 부족하다. 다른 소비 접점은 없을까 .
가만히 살펴보면, 공간 내부에 공통점이 있다. 군더더기가 적고, 자연이 주는 따뜻함이 있다. 밝은 톤의 나무, 따뜻한 조명, 포근한 벽돌, 이따금씩 보이는 초록 풀떼기들, 환한 햇살. 자연의 소재를 많이 이용했지만, 과하지 않고 차분하다. 화려하지 않은 공간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다. 건물과 배경이 사람을 압도하지 않고, 묵묵하게 뒷배가 되어 사람을 돋보이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이 두 조건을 충족한다고, 소비자들이 모두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조건이긴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뒹굴뒹굴하며 남편에게 물어보니 시크하게 대답한다.
"긴데긴거아닌긴거같은것". 맞는 말 같다. 트렌드의 변화 속도가 빠른 가로수길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그대로 전달할 때엔 미동하지 않는다. 그것보다 반 발자국 앞서 나가야 한다. 남편이 덧붙인다. 가로수길에서 가장 위험한 장사는 누군가 성공한 아이템을 카피하는 가게나, 어디서나 볼 법한 프랜차이즈를 오픈하는 것이라고. 이곳은 익숙하지만 낯설어야 하며, 이전보다 나은 퀄리티를 선사하는 가게를 오픈해야 한다고. 그래서 어쩌면 성공한 외산 브랜드들이 2018년 이곳에 진격한 것이 아닐지.
2018년 외국에서 날라왔던 외산브랜드 1호점들은 딱 반 발자국 앞서있었다. 우리가 알던 납작한 퀸아망은 위로 크게 부풀었고, 생각지도 않았던 맛들의 변주가 있었다. 참깨가 발린 패스츄리라니. 우리가 생각했던 일본식 까페에서는, 파리의 엣지있는 감성이 베어나왔다. 일반적인 밀크티를 생각하고 마셨는데, 깊은 흑당의 달콤함이 혀를 감돌았다.
2019년 또 어떤 유니크하고 참신한 가게들이 이곳을 활성화시킬지 궁금해지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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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