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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기행 Jan 02. 2019

떡볶이와 햄버거에 녹아든 추억

도산공원, 셰이크쉑&도산분식

#지안기행

#셰이크쉑&도산분식


2018년만큼 레트로에 열광했던 때가 있었을까.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이 큰 호응을 얻은 이후, 익선동 일대에서는 경성스타일의 옷들을 빌려입은 젊은이들이 까페에 앉아 사진을 찍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한적함을 자랑했던 도산공원 일대에도 한시간씩 줄을 서는 떡볶이집 도산분식이 생겨났다. 두 지역 모두 [레트로]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분명히 다른 [레트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익선동의 가게들이 경험해보지 않은 경성시대의 과거를 재현해 냈다면, 도산공원의 가게들은 경험해 본 추억을 좀 더 세련되게 표현했다. 두 권역의 지역색도 다르지만, 소비자들도 달랐기에 다른 스타일의 레트로가 인기있던 것일지.


지난주 토요일, 힙하다는 곳을 방문하고자 남편과 함께 도산분식에 갔다. 춥고 배고픈데, 줄이 너무 길었다. 도산공원 일대의 가게들은 적절히 높은 객단가를 유지하며 줄서지 않는 것이 매력이거늘, 이곳의 줄은 최소 한 시간을 넘길 것 같았다. 마누라호기심의 희생양이 된 남편을 달래며 이야기했다. 우선 쉐이크쉑버거를 먹고 오자고. 남편은 흔쾌히 응했고, 오분 거리 앞 쉐이크쉑에 갔다.


버거와 핫도그를 맛있게 냠냠 먹고,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썰어먹어야 하는 수제버거들은 좀 낯설고 불편한데, 쉐이크쉑은 어릴 때 먹던 맥000 햄버거 처럼 한 손에 잡고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비슷한 맛인데 빵안쪽에 버터가 살짝 발라져 있어 부드럽고, 패티도 잘 구워져서 고소하다고. 그는 한손에 잡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버거에서 어릴 적 향수를 느끼는 것 같았다. 물론 어릴 적먹던 그 버거보다 업그레이드 되었지만.


쉐이크쉑이 과거의 버거를 새롭게 해석 한 것은 단순히 맛 은 아닌 것 같았다. 과거 정크푸드로 인식되던 버거가, 이상하게도 쉐이크쉑에오면 건강한 음식일것 같은 착각을 일게 했다. 전광판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시원한 숲과 도시의 이미지들은, 높은 층고와 널찍한 내부와 만나 쾌적함을 자아냈다. 그리고 친절한 직원들의 웃음을 보면서 "이건 먹어도 몸에 나쁘지 않을꺼야"라는 근거없는 착각을 일게 했다. 착각인지는 알지만, 누가 그러지 않았는가.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고.

밀레니얼의 시작 세대인 우리들에게 햄버거는 추억이다. 학원 가기 전 사먹던 버거. 친구들끼리 학교 끝나고 용돈모아 사먹던 그 버거. 추억속의 버거는 고급스러운 버거가 아닌, 한손에 잡고 먹는 버거다. 후렌치 프라이 쟁반 한가득 뿌려두고 케챱 찍어먹던 그 시절이 그리운 세대다.


그러나 그 때 그 버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풍요로운 시대속에서 많은 경험을 해온 이 세대들의 입맛도 성장했기 때문이다. 추억은 지키되, 맛은 더 있어야 하는 어려운 주문이 이 곳 쉐이크쉑에서는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한국에 들어온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인기 있는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배를 토닥토닥 두드리면, 다시 도산분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도산분식의 '맛'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블로그 평도 극과 극이고, 분위기가 좋은 곳이 맛까지 훌륭한 적은 드물기에. 버거로 채운 배를 타복타복 두드리면서 내부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어느정도 빠져서 30분 정도만 기다리면 될 것 같았다.

기다리는 동안 주문을 하라고 했다. 메뉴판에는 떡볶이만 있는게 아니었다. 돈까츠샌드와 홍콩토스트, 육개장라면 등등 일반 분식집과는 좀 다른 메뉴들이 있었다. '그냥 사장님 먹고 싶은 것들을 메뉴로 만든것 같은데.' 우선 왕어묵꼬치떡볶이와 돈까스샌드를 주문했다. 음료의 구성도 독특했다. 콜라, 사이다, 맥콜, 사이다, 미린다 등등. 맥콜을 좋아했던 나로써는 어릴적 그때가 묘하게 떠올랐다. 요즘은 잘 먹기 힘드니까.


차례가 되어 들어갔다. 옷을 보관하는 박스가 낯이 익다. 우유 급식통이다. 초등학생시절 주번하면 질질 끌고 왔던 그 우유통. 식탁위에 놓여있는 델몬트 물병도 재미있다. 어릴적 델몬트 병에 담긴 오렌지주스의 추억이 누구나 있을텐데. 묘하게 계속해서 향수를 자아낸다. 델몬트 병에 표시된 꽃모양의 로고를 자세히 보니 무궁화 마크다. 이 무궁화 마크는 직원들의 머리띠에도, 간판의 로고에도 곳곳에 있었다. 한국의 분식을 재미있게 표현하구나. 집요한 이들의 디테일에 나도모르게 "힙하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왕어묵 꼬치 떡볶이가 나왔다. 뭐 떡복이가 그게 그거지 하고 먹었는데, 풉하고 웃었다. 이거 딱 그맛이다. "달달한 밀떡". 어릴적 친구들사이에서는 은마떡볶이와 신사시장 떡볶이가 유명했다. 이 사장님, 그 떡볶이 좀 드셔보셨군. 우리가 알던 그 밀떡에 조금 더 매운 고추가루맛이 첨가되었다. 그래서 중독성있다. 사실 이런 떡볶이는 건강한 떡볶이와는 매우 거리가 있다. 엄마 몰래 먹는 떡볶이. 엄마가 알면 등짝 스매싱을 감수해야할 그런 맛. 궁중떡볶이나 쌀 떡볶이 같이 고급스럽고 건강한 떡볶이도 좋지만, 가끔씩 생각나는 이 촌스러운 밀떡이 너무 반가웠다. 튀긴어묵꼬치도 함께 먹으니 맛있었다. 원래 떡볶이 먹을 때, 오뎅 추가해서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는 것이 정석 아닌가. 그 오뎅을 튀겼으니, 맛은 배가 되었다.


떡볶이의 다음타자는, 돈까스 샌드. 흠, 튀김전문점도 아니고 돈까스 샌드가 맛이 있을까 했는데, 아. CNP 좀 나뻤다. 맛있었다.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두툼한 돈까스를 잘 튀긴후, 일제 돈까스 소스를 살짝 발라 부드러운 식빵에 포개어 냈다. 베어물면 오독하는 소리와 함께 돈까스의 고소함이 육즙과 함께 넘어온다. 고기 잡내도 하나 없다. 일본가서 먹던 가츠 샌드맛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맛이었다. 음식을 하나씩 주문해서 먹을 때마다, 추억들이 예쁘게 포장되어 떠올랐다.


사실 그렇다. 추억의 장소를 되돌아 가보면 실망할 때가 많다. 어릴때 크게만 느꼈던 학교는 작아져 있고. 힘들게 달리기를 했던 운동장은 이것 밖에 안 되었나 싶을 때가 많았다. 추억 자체도 늘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의 학창시절은 학업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성적이 세상의 전부인냥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때 먹던 떡볶이는 기쁨의 떡볶이 보다는 눈물의 떡볶이가 더 많았다. 이래서 대학은 갈 수 있을까. 대학 못 가면 앞으로 어떻게 살지 뭐 이런 고민들. 어쨌든 그시절을 지나 지금 이곳에서 먹는 떡볶이는 그 모든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곳의 매력은 그런게 아닐까. 과거를 과거보다 더 예쁘게 추억할 수 있는 마법을 부린 것 말이다.


사람마다 도산분식에 관한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줄이 조금 줄어든다면 나는 또 이곳에 가고 싶었다. 내가 먹던 그 음식을 힙하게 표현한 것도 좋았지만, 일관된 디테일로 나의 추억을 예쁘게 꺼내 주는 이곳이 좋았다. CNP의 아우어베이커리만 힙한 줄 알았는데. 도산분식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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