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용금옥
#지안기행
#노포탐방
날씨가 추워지고 몸이 허해질 때면 종종 추어탕을 먹는다. 난 주로 구수하게 된장을 풀고, 우거지가 많이 들어간 남도식 추어탕을 선호했다.
서촌에서 전시를 보고, 빠듯한 시간 내에 점심을 먹으려고 하니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걸어내려오는 길에 용금옥이 보였다. 응? 용금옥은 원래 다동에 있는게 아닌가? 벌건 서울 추탕을 선호하진 않았지만, 시간도 없고 빨리 먹어야 하니 일단 들어갔다.
주문을 하고 조금 기다리니, 곱게 간 미꾸라지에 두부, 버섯, 대파 등이 가득 들어간 서울 추탕이 나왔다. 내가 아는 그 서울 추탕보다 국물이 좀 더 담백해서 좋았다. 곱창 육수 대신 사골 육수를 쓰기 때문인 것 같았다. 여기에 매콤달콤한 무채를 얹어 먹으니 단짠의 합도 잘 맞았다. 깔끔하고 맵싹한 국물에 밥을 비벼 먹다 보니 어느덧 한그릇을 뚝딱 비웠다.
계산을 하면서 여쭤보았다. 왜 서울식 추탕은 맵게 먹고, 버섯을 가득 올리냐고. 사장님이 웃으며 이야기하시길 "이 사람아, 옛날 서울에서는 된장을 그리 많이 먹지 않았어. 먹어도 자작하게 끓인 강된장 정도나 먹었지. 그시절 서울엔 우거지도 그리 많지 않았고. 대신 버섯은 쉽고 싸게 구할 수 있었어. 사실 예전 추탕은 이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오. 당시에는 송이버섯이 저렴해서 그것도 들어갔었거든. 나는 시집와서 먹은 그 추어탕 맛을 잊질 못해. 그걸 재현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공부를 해보았는데, 여러 제약사항들이 있어서 그때만큼 만들긴 어렵더라구."
할머니네는 왜 다동하고 다르게 소면을 안 주세요? 여쭤보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 서울 추탕에는 감자로 만든 국수를 넣는데, 그걸 넣으면 입안에서 샤악-하고 풀어지며 정말 맛있다고. 이제는 감자국수를 만드는 곳이 없어, 대부분 밀가루 면으로 대체한다고 했다. 할머니네도 초기에는 밀가루면을 넣어보았으나, 감자 국수처럼 부드럽게 풀어지지 않아 식감을 해치기에 아예 소면을 제외했다고 한다.
원래 용금옥은 시어머니인 홍기녀씨가 1932년부터 운영했었고, 막내 며느리가 함께 도왔었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다동 용금옥은 큰아들이 물려받고, 막내 며느리인 현 사장님이 이곳 통의동에서 가게를 오픈했다고. "시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그 추어탕이 얼마나 맛있던지"라고 이야기하시는 사장님의 얼굴을 보면서, 노포의 맛은 혈연을 통해서만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맛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계승되는 것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을 선택한 미슐랭의 선택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