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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는 안 그래요

by 백지안



"쾅"

교실 벽이 흔들린다고 느껴질 정도로 세게 문을 닫고 재훈이가 나갔다. 2층 전체가 다 들었을 만큼의 소리다.

짝꿍 연필을 자꾸 가져다 쓰니까 유빈이가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유빈이 것은 주고 네 연필 써야지" 간단히 말하고 수업을 진행했다.

그 사이 자신을 나무란 선생님의 꾸지람을 견디지 못한 녀석은 불만의 몸짓을 그렇게 보였다. 재훈이한테 가기 위해 반 아이들에게 할 것을 지시해 놓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새 어디로 가버렸는지 아이는커녕 재훈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일이 몇 번째인지 모른다.


재훈이는 2학년이다. 작년에 내가 1학년을 지도할 때 옆 반 아이였다. 트러블 메이커로서 늘 반에 분란을 만드는 존재였다. 재훈이 1학년 담임선생님이 무척 힘들어하셨다. 연수실에 잠깐 모여 있으면 여지없이 그 반 아이들이 담임을 찾았다.

"선생님! 재훈이가요...."

맨날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2학년을 맡게 되었을 때 이 아이가 내 반에 오면 최선을 다해서 아이가 변화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지금은 5월. 재훈이에 대한 결심을 비웃듯이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다. 나는 교만했던 거였다. 건물 뒤쪽을 따라 쭉 돌아도 아이가 안 보였다. 앞 건물 쪽에 있는 주차장을 살피고 급식실 쪽으로 돌아갔다. 재훈이가 한쪽에 있었다. 날 보더니 몸을 급하게 숨긴다.

'그래 거기에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속엣말을 하며 내 마음을 다스렸다.

어떤 경우는 관심을 주고 챙기려 하면 더 말을 안 듣고 어깃장을 놀 때도 있다. 못 본 척하고 교실로 돌아왔다.

교실 안의 2학년 삐약이들은 담임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천방지축이 되어 있었다. 이제 점심 시간이라 배가 고파 더 풀어진 것이다. 요새는 아침을 먹고 오는 아이가 거의 없어 더 그렇다.


"화장실 다녀오고 손 씻고 와요"


줄을 세워 급식실로 갔다. 다른 선생님들이 와서 또 재훈이가 일냈냐고 물어본다. 같이 한숨을 쉰다. 줄 서 있는 아이들 뒤에서 자리로 안 들어가고 재훈이가 빙빙 돈다. 나는 계속 모른 척했다. 전에는 아이를 달래기도 했는데 오히려 역효과만 났었다.


아이들이 식판을 들고 각자의 자리에 가 앉았다. 옆 반 선생님이 나에게 찡긋 윙크를 하고 재훈이에게 다정하게 말하며 식판을 주었다. 입이 앞으로 10센티미터나 나온 채 그것을 받아 자리에 가 앉았다. 오늘도 재훈이의 쇼는 계속되었다.


재훈이는 잘못을 지적당하는 것을 못 참는다. 그러면 잘못을 안 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것을 예사로 한다. 그러면서도 최고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재훈이의 이런 성품은 특히 수업 중에 자주 일어난다. 아이들이 서로 발표하려고 손을 든다. 공정하게 기회가 돌아가야 하는데 재훈이한테 차례가 빨리 안 오거나 발표를 했어도 또 하고 싶은데 안 시켜주면 그럴 때도 삐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따로 없다.


재훈이 엄마는 태국 분으로 다문화가정 어린이집에 근무한다. 바빠서 통화하기 어렵고 저녁에야 겨우 전화를 받으신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할 때마다 재훈이 엄마는 이해를 못하신다.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서, 아니면 서툴러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집에서는 이쁜 아들이란다. 재훈이는 형제 없이 외동이다. 집 안에 갈등 요소가 없는데 엄마가 어떻게 알까?


학교에서도 오직 자기가 최고여야 하는데 맘대로 안될 때마다 자기 성질을 못 다스리는 재훈이의 모습을 엄마는 전혀 모른다. 재훈이 문제로 통화를 하다 보니 이제 내 말을 솔직하게 다 쏟을 정도가 되었다. 이대로 둬선 큰일이겠다 싶었다. 엄마한테 함께 책 읽기를 권하니 책이 없단다. 명작동화 CD를 들려주라고 했다.


내드린 과제를 잘하고 있나 싶어 전화를 드렸더니 아뿔사. 재훈이 어머니께서 아이의 눈높이를 못 맞췄다. 불경을 읽어주셨단다. 나쁜 일하면 지옥 가고 착한 일해야 천국 간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다면서 이제 잘할 거라고 하신다.


학교에서 아이의 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재훈이는 하교하고 나면 지역아동센터에 잠시 머물다가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혼자 집에서 보내는 것이 일상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TV나 인터넷의 접속에 제한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살고 있는 셈이다.


난 아이의 상황이 위험등급 1호라고 생각했고 날마다 전화해서 엄마를 볶았다. 그래도 이 어머님이 착하셔서 내 말을 받아주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자기 아이 말을 더 신뢰하고 교사를 도무지 존중하지 않는 학부모도 많다. 교사는 조언을 할 때,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 한다.


볶임을 견디다 못해 어머니가 학교에 오셨다. 아이의 수업 참관을 하기 위해서이다. 아이 옆에서 하루를 보내보시라고 넌지시 권유했었다.

그날은 두 시간을 아이 옆에 앉아 있다 가셨는데, 엄마가 계신 동안은 재훈이가 수업 중에 장난도 안 치고 오히려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세상 아이들에게 엄마만큼 좋은 약은 없는가 보다. 그 짧은 두 시간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엄마도 아시고 다음 날도 두 시간을 계시다 가셨다. 그러면서 짝꿍 책과 재훈이의 책을 비교해 보셨던 것 같다. 재훈이가 평소에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고 가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일주일 뒤 세 번째 날은 어린이집 원장님과 함께 오셨다.


"선생님~ 제가 재훈이 책을 보고 나니까 아이가 평상시 어떻게 하는지 보였어요. 그런데 제가 잘 몰라서 원장님과 함께 왔어요."


원장님은 한 시간을 함께 수업을 듣고 재훈이를 관찰하고 재훈이의 교과서와 수업 결과물을 다 살피셨다.


"선생님,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 다 믿겠습니다. 이것들을 보니 아이의 행동이 보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두 사람을 돕겠습니다."


그 뒤에 재훈이는 미술치료 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상담센터를 연결해줘도 바쁘다고 안 다니시던 어머니였다. 그러던 어머니가 행동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들은 자기 집에서 자신의 아이 한 명만을 보기 때문에 아이가 단체생활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상상을 못 하신다. 수시로 친구를 괴롭히고, 물건을 빼앗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어쩌다 수업에 참여해도 소황제가 되지 않으면 못 견뎌 하는 아이의 정체를 엄마는 모른다.


시나브로 재훈이는 부드러워져 갔다. 원장님도 주말이면 재훈이네 모자를 야외로 초대해 함께 움직인 이야기를 전달해 주셨다. 때로는 어린이집 주말 체험학습에 재훈이도 데려가 동생들을 돌보는 경험을 시키고 칭찬도 해주셨다. 물론 처음부터 잘되지는 않았다.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가 어떻게 남을 돌보겠는가. 자기 말을 안 들었다고 네 살짜리 아이를 때려서 식겁을 한 적도 있었단다.


그러나 재훈이는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눈빛도 안정되어 가고 차분해져 갔다. 방학을 보내고 온 재훈이는 특유의 트레이드 마크인 짜증기가 얼굴에서 다 가시고 없었다.

당신이 보는 아이의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재훈이 어머니는 어느 날 내게 전화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생님~ 우리 재훈이에게 이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어요. 요즘 너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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