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처음 보게 됐던 맨 프롬 어스(Man from Earth). 약 1시간 30분 동안 줄곧 한 장면. 더 자세히 얘기하면 같은 공간 안에서 계속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는 같은 해에 개봉한 서클(미국 영화)과 비슷한데, 비슷한 러닝타임 안에서 아래와 같은 한 장면이 영화의 99%를 차지한다.
(이 영화도 할 얘기가 많은데, 이건 나중에 하는 걸로.)
맨 프롬 어스와 서클의 가장 큰 차이점을 이야기하자면, 서클은 다양한 사람이 모여 갑론을박을 펼치는 내용이라면 맨 프롬 어스는 단 한 사람의 이야기에 대한 갑론을박이 주 내용이다.
*조금의 스포 주의
주인공인 존 올드먼은 한 대학에서 촉망받는 교수로서 재직을 하다 돌연 아무런 이유도 말하지 않고 학교를 떠나겠다는 깜짝 발표를 하게 된다.
그의 동료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선택에 궁금증을 품고 여러 추궁을 하게 된다.
계속해서 답변을 거부하던 존은 무언가 마음을 먹은 듯 동료들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게 된다.
바로 자신이 14,000년 동안 한 번도 죽지 않고 살아온 '크로마뇽인'이라는 것.
처음엔 다들 어이없어 하지만 그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을 이어가는 존을 동료들은 점점 믿게 됨과 동시에 강한 의심을 품게 된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동료들이 질문하고 존이 그에 대해 답변하는 장면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러니 예산이 적게 들어갈 수밖에)
더욱 웃긴(?)점은, 존이 바로 '예수'라는 사실이었다.
이 부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이디스(동료 교수)의 신념을 와장창 깨뜨리게 된다. 이디스는 그의 말을 듣고는 '너는 예수가 아니야'라며 격분한다.
결국 존이 정신병자라고 생각한 한 동료는 심리학자 교수를 불러 좀 더 심도 깊은 질문을 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존은 사람들이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줘'라는 요청에 웃음을 지으며 '그래. 다 거짓말이었어'라고 답변해버린다. 그제야 사람들은 안심? 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과연 그들은 어느 쪽에 안심한 걸까?
[상상 자극 영화]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에서는 장면 전환이 되지 않는다. 존이 과거의 얘기를 할 때에도, 회상 장면이나 과거의 정보제공이 될만한 장면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크로마뇽인'이라는 원시인으로 살아가면서 있었던 일, 반 고흐와 함께 그림과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눈 일(이 부분은 영화를 볼 때 즈음 '러빙 빈센트'를 봤기 때문에 비교적 상상이 쉬웠다), 여러 도시에서 교수로 살아가며 있었던 일 등.
이 영화에게 고마운 점은, '원시시대'나 '혁명시대' 등 우리가 흔히 교과서에서 배워 뻔하게 그릴 수 있는 부분을 뻔하게 회상하지 않고 모든 상상과 그림을 우리에게 온전히 주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존의 말에 따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존이 사실 '예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장면부터 나는 '종교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논란이 됐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그들이 정의하는 예수와 바이블에 형용되는 예수와는 존의 모습이 전혀 딴판인 데다가 존은 예수가 본인과의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 과대평가되었다고 '해명'하는 장면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부처의 가르침을 그저 서양에 전파한 것일 뿐, 물 위를 걸은 적도 없고 동양의 의술을 병자에게 쓴 적만 있을 뿐 사람을 되살리는 기적 또한 만들어낸 적 없다고 말이다. 더 나아가 지금의 예수는 모두 말이 전파되고 양상 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종교인이 아닌 나로서는 존의 말을 들으며 서서히 설득당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SNS에서 한때 유명했던 '무신론자 교수와 기독교 학생의 대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https://blog.naver.com/osm4709/220804222530 참고)
신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종교인에게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신은 꼭 있어야 하는가? 신의 탄생 배경과 그 당시 사람들의 심리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등 다양한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물론 나는 신의 존재를 부정할 생각이 없다. 누군가에게 신은 꼭 필요한 존재이고,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속 존의 이야기가 신빙성 있게 다가왔던 것은, 자신은 대단한 기적을 일으킨 신보다는 그저 가르침을 전파한, 오래 산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 때문이었다.
가르침을 전파하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 예수가 탄생했다고 말이다.
내 예상대로 맨 프롬 어스 영화가 나왔을 당시 커다란 논란이 있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부분을 논한다기보다는 이 영화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 생각에는 정답도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답 없는 질문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꼭 보면 좋은 영화로 추천한다. (2편도 봤는데, 1편보다 못하다. 보다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