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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opal Feb 26. 2019

문화예술? 융합예술? 종합예술?

미술, 음악, 패션, 공연 등 '문화예술'이라는 광범위한 카테고리 안에 무수히도 많은 소분류가 있다. 사실 문화와 예술 혹은 문화예술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 그 경계가 애매모호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최근 뮤지컬이나 패션쇼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기회가 생겨 그것들을 향유하며, 사실상 문화예술의 그 애매한 경계가 흐트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종합예술’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인데, 사실 이것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안 그래도 광범위한 예술에, 종합이라니. 


그럼에도 굳이 나는 그 복잡한 단어를 쓰며 뮤지컬이나 패션쇼, 그 외 무수히 많은 공연들의 의미를 파악하려 하고 있는 중이다. 굳이 깊게 생각 안 하고 그저 좋은 마음으로 즐기다 나오면 되는 것을,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우습게도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 덕분이었다. 


알렉산더 맥퀸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작년에 개봉했을 때 상연관이 적어 도저히 시간대가 맞지 않아 못 보고 있다가, 스트리밍 서비스에 업로드가 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바로 보게 되었다. 


패션에 크게 관심이 있지도 않고 패션 브랜드에 무지한 나는 단지 맥퀸이라는 아티스트에 대한 궁금증으로 그것을 보았는데, 큰 생각을 하지 않고 봐서 그랬을까 혹은 패션에 대한 무지함 때문이었을까 맥퀸의 다큐멘터리는 나에게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특히나 맥퀸의 패션쇼 영상을 보고 나는 무수히 많은 생각이 들었고, 그중에서도 강렬히 남아있는 건 1999년 봄/여름 컬렉션 패션쇼의 엔딩인 기계와 패션의 컬래버레이션 장면이다.


당시 유명한 모델이었던 샬롬 할로우가 무대 중간에 돌아가는 원판 위에 서있고, 그녀 양 옆에 무심하게 서있는 기계 두 개가 그녀의 하얀 드레스 위에 페인트를 뿌리는 장면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패션계의 명장면이다. 


통상적으로 ‘융합예술’이라 하면 예술과 다른 예술의 콜라보 혹은 예술과 다른 분야의 콜라보 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맥퀸의 패션쇼 이후 나는 생각을 조금 다르게 할 수밖에 없었다. 미술, 패션, 음악 등의 단일적 분야로 카테고리를 나누는 것이 해당 콘텐츠를 어떻게 해서든지 한 가지 카테고리에 규격화하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맥퀸의 패션쇼의 경우, 기계와 패션 즉 비예술과 예술의 콜라보로서 융합예술의 전형적인 예시로 자리 잡고 있었지만 사실 맥퀸이 담으려고 했던 건 비단 그뿐만은 아닐 테다. 기계가 페인트로 하얀 옷을 괴롭힐 때, 샬롬 할로우의 연기와 더불어 음악, 무대의 연출, 페인트가 칠해지며 탄생하는 옷과 그의 미술적 형상, 현장 사람들의 반응, 심지어는 그 시대의 사회환경 등 우리는 이 모든 부수적인 것들을 종합해 ‘맥퀸의 1999년도 그 패션쇼’라고 일컫는다. 


이는 단순히 기계와 패션의 콜라보로서의 융합예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많은 것이다. 물론, 안 그래도 문화예술과 융합예술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복잡성에 굳이 종합예술이라는 단어까지 붙여 머리 아프고 싶은 사람은 없겠다만. 눈에 보이는 실체와 대상을 인지해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펼쳐져 있는 ‘종합예술’들이 너무 아깝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맥퀸 사태(?) 이후 최근 한 달 사이 뮤지컬을 2번이나 보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예전엔 가끔 기회가 생길 때 보러 가곤 했지만 이렇게 짧은 텀을 두고 유명한 작품을 연달아 보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뮤지컬을 보면서, 맥퀸의 패션쇼를 떠올리며 뮤지컬이라는 단일적 장르가 아닌 음악, 의상, 무대 연출, 조명, 미술 등 뮤지컬이라는 한 키워드가 생성되기까지 필요한 무수한 요건들을 쪼개 보았다. 동시에 이 3시간 남짓한 길다면 긴, 짧다면 짧은 공연시간 내에 투입된 인원과 각 분야에 전문가들이 공통된 스토리를 최대한 관객들에게 시각적, 청각적으로 잘 전달하기 위한 노고들이 보이게 된 것이다. 이는 쉽게 이야기하면 연예인에게만 갔던 스포트라이트가, 뒤에 있는 스태프들에게까지 가게 된 진귀한 경험이었다. 


복잡한 이야기들과 경험담들을 걷어내면 결국 결론은 그것이다. 예술은 종합적이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이고, 그 뜻이 더 크다는 것. 그리고 그 ‘종합’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우는 것이 아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문화와 예술에 좀 더 폭넓게 다가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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