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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opal May 07. 2019

예, 술(藝, 酒)

예술인과 술에 대해

 예술과 술은 친했을까? 

 일반적으로는 예술인, 아티스트라고 하면 술과 친할 것 같지만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오히려 창작활동에 방해가 된다며 술을 극도로 멀리했던 예술인들도 있으니 말이다. 

 반대로 술에 의존해 술(酒)이 예(재주, 藝)를 펼치도록 둔 예술인들도 많이 있다. 

 예술과 문학에선 술을 대상으로 하는 장르를 알코올 그래피(alcoholographie)라고 할 정도로 그 관계가 매우 깊다.  특히나 예술과 술이 친밀한 관계로 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취중 예술과 sober 예술의 차이가 과연 그렇게 클까?

 비단 미술뿐 아니라 음악, 글 등 많은 영역에서 그 영향을 미친 술. 유난히 술과 친했던 예술인과 그 작품들을 살펴보자. 


 - 압생트 과 화가들

압생트는 대표적인 ‘예술인의 술’로 알려져 있다. ‘녹색 요정’ 혹은 ‘녹색의 악마’라고 불려지는 압생트는 흰 잔에 따르면 형광 녹색처럼 보인다. 

베르엔비프 압생트

압생트는 마시는 방법도 살짝 특이한데, 잔의 1/3 정도만 따른 후 압생트 전용 스푼을 올린 후 각설탕을 올린 후 각설탕에 불을 붙여 설탕과 물이 섞인 압생트를 원샷하면 된다. 

출처: http://egloos.zum.com/lanugo/v/2279972


고흐의 술로 유명한 압생트는 고흐가 유난히 초록색을 많이 썼던 이유로 거론되기도 한다.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 1888, 아를에서


폴 고갱: <밤의 카페> 1888, 아를에서

고흐가 압생트를 즐기기 위해 자주 찾았다는 아를 밤의 카페, 그리고 고흐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져 있는 고갱이 그린 밤의 카페. 고갱의 그림 속 ‘지누 부인’은 압생트를 마시고 있다.

고흐와 고갱 외에도 압생트를 그림에 포함시킨 작가들은 꽤나 많다. 


마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1859
피카소: <앱상트>
장베르: <The Absent Drinkers>

이토록 꾸준히 작품에 등장했던 압생트. 그 술이 가지고 있는 마력은 무엇이었을까? 대한민국에서는 제조 및 판매가 금지된 압생트지만, 언젠가 해외에서 압생트를 즐기며 당시 작가들의 감성을 공유받고 싶은 마음이다. 


 - 맥주와 하루키

<상실의 시대>, <1Q84>로 잘 알려져 있고 특히나 한국에서 팬이 많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도 술을 사랑하는 예술인으로 유명하다. 특히 본인 스스로 ‘내가 만일 맥주의 나라에 간다면 분명 VIP급의 빈객으로 대우받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맥주 러버’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1Q84>에서는 여주인공 아오마메가 ‘커티삭 하이볼’을 주문하는 남자와 하룻밤 자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이 나오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는 맥주 마시는 장면이 무려 50번이나 나온다. 하루키가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는 ‘삿포로’와 ‘마루이 브로이’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맥주회사들이 하루키를 CF모델로 섭외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정작 본인은 ‘도저히 CF를 보는 시청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맥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CF 제의를 계속해서 거절했다고 한다. 

하루키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위스키와 와인 등 다른 종류의 술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로 위스키와 흑맥주를 테마로 한 여행을 떠난 후 그 여행에서 느꼈던 점을 에세이로 묶어 책을 내기도 했다 


 - 와인과 이우환

이우환 화백은 ‘명화 컬렉션’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프랑스 대표 와인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 2013년 산의 와인 라벨을 그린적이 있다. 


출처: 아영 FBC

단순히 유명 와인 브랜드의 라벨을 그렸다고 이우환 화백이 와인을 사랑하는 예술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이우환 화백은 ‘화가로서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애인처럼 내 옆을 지킨 것은 와인이었다. 와인이 없으면 식사를 못할 정도였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와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우환 화백은 또한 ‘와인은 기본적으로 자연이 바탕이다. 미술도 자연이 가진 물질을 쓰는 것이고 이것을 숙성시키는 작업이다. 와인과 미술 모두 오랫동안 자연의 힘을 받은 것을 인간이 지혜로써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린 창작물’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와인과 미술의 연관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 막걸리와 천상병

문학계에서 대표적인 주당으로 유명한 천상병 시인은 1979년 시집 ‘주막에서’, 1984년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1991년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등 시집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특히나 막걸리를 사랑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천상병 시인은 그와 술 동무로 절친한 사이였던 시인 신경림의 회고에 따르면, 먹성도 주량도 엄청나고 항상 험하게 다니는 데도 다치는 곳 하나 없이 잘 먹고 잘 살았던 탓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 속이 무쇠로 되어있다’라고 말하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옥수수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은 것이다”(천상병, ‘막걸리’ 전문)


천상병 시인의 글처럼, 예전엔 배고플 때 식사대용으로 마시기도 했던 막걸리가 최근엔 새로운 제조 방식으로 브랜딩을 좀 더 젊은 타깃으로 맞춰 시장에 출시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나 2017년엔 20~30대를 타깃으로 전통을 벗어나 바나나 막걸리, 커피 막걸리, 복숭아 막걸리 등 막걸리의 다양성이 크게 늘었다. 

‘막걸리’하면 느껴지는 친숙함과 대중성 덕분인지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막걸리는 창작소재로서 많이 사용되었는데, 대표적으로는 양희은의 ‘막걸리’, 버스커버스커의 ‘막걸리나’ 등이 있다. 


이처럼 영화, 방송,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술은 창작자의 흥을 돋우기도 하고, 예술의 직접적인 소재가 되기도 한다. 술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도 많긴 하지만, 예술인들은 그들이 가진 잠재력과 창의성을 좀 더 자신 있게 이끌어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술을 활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본다. 그에 따라 예술을 보는 사람들도, 술과 친했던 작가의 작품을 볼 때면 그 작가가 즐겨 마셨던 술과 함께 해당 작품을 즐기는 것이 예술을 보다 폭넓게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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