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ICO art & 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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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VALICO 회사의 정진용 이사님이 룩셈부르크 출장을 다녀오시면서, 룩셈부르크 국립현대미술관 MUDAM의 관장님이신 수잔 코터와 단독 인터뷰에 성공하셨다.
미술계에선 매우 높은 자리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공손하고 매너있는 그녀의 모습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는 후기도 들려주셨다. 직접 만나보진 못했지만 수잔 코티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그녀만의 강한 신념이 느껴진다.
정진용(이하 정): 나는 룩셈부르크가 다양한 언어들로 어우러지는 멜팅팟이자 매우 독특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이곳 사람들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그리고 룩셈부르크 고유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존재하는 가운데, 역동성을 자랑하는 룩셈부르크 미술산업을 어떻게 보는가? 항상 그렇게 역동적이었는가, 아니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단순한 사업적 이유로 왕래하는 것인가?
수잔 코터(이하 코터): 우선 룩셈부르크에는 예술산업이 없다. 룩셈부르크는 인구 100만 명 미만의 아주 작은 나라다. 이곳에는 미술전문양성 기관이나 학원 또는 예술전문대학교가 없다. 이곳의 모든 대학들은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라의 작은 규모 때문에 역사적으로 룩셈부르크는 학생들을 외국으로 보내 교육시키는 일에 더 집중하였다. 이는 룩셈부르크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이었고, 자국민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유럽에서는 대학 간 교류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었다. 학생들이 자국에 머물더라도, 다른 외국 대학에서 1년 간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유럽의 단일 공동체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보다 적극적으로 더 넓은 세상을 배울 수 있도록 유도하려는 목적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유럽 내 다양성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룩셈부르크에 미술전문 아카데미가 없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예술시장은 룩셈부르크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물론 이곳에는 예술가들이 존재하고, 이전에도 지금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티스트들이 있지만, 이들은 주로 파리, 베를린, 뉴욕, 런던 그리고 외국의 다양한 곳에서 공부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다. 이들은 룩셈부르크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브뤼셀, 베를린, 파리, 뉴욕, 런던, 프랑스 또는 다른 도시에 개인 스튜디오를 열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룩셈부르크의 특수성이다. 이들은 룩셈부르크에서 활동하면서도 동시에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룩셈부르크는 최소 3개 국어를 구사하는 시민들로 구성된 나라다. 또한 여러 국가의 국경을 넘나들며 일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의 나라이기도 하다.
정: MUDAM 미술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룩셈부르크에서 미술관 관장으로써의 역할과 비전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술과 문화적 차원에서 다른 도시들과 비교하였을 때 룩셈부르크는 어떤가?
코터: 예술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룩셈부르크에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예술가와 갤러리들이 존재하고 수집가들도 있다. 그리고 올해로 3년째를 맞는 미술박람회도 있다. 알다시피 룩셈부르크는 결코 뉴욕, 런던, 파리, 홍콩과 같은 미술 시장의 주요 중심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룩셈부르크가 유럽 내의 미술시장에서 경제적으로 좋은 역할을 하는 곳이기를 바라고 있다. 단적인 예로 미술관이 바로 그 창구라고 생각한다.
MUDAM은 룩셈부르크 최초의 현대 미술미술관으로써 세계적인 건축가인 I.M. Pei에 의해 아름답게 설계되었다. MUDAM의 건축양식은 룩셈부르크가 단지 예술이나 시장만을 쫓는 것이 아닌 문화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픈 국가적 야망을 반영하고 있다. MUDAM의 관장으로서, 나는 진심으로 이 미술관이 다른 미술관과 유럽,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의 미술 산업에 기여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내가 기회로 보는 것은 유럽 내 미술 산업의 전반적인 맥락과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다양한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것들은 룩셈부르크가 현재 분기점에 서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당신이 언급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일하기 위함뿐 아니라 거주의 목적으로도 자주 찾는 곳이 바로 룩셈부르크다. 현재 룩셈부르크에는 약 169개국 출신의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으며,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통계적으로 보자면 토종 룩셈부르크 출신은 전체 인구의 50%이고 나머지 50%는 169개의 국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매우 놀랍고 또한 인상적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미술관의 관장으로서 나에게 의미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 미술관을 찾는 방문객들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지식을 전달해준다.
정: 그저께 룩셈부르크의 총리 자비에르 베텔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만나본 국가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밝고 창의적인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ICT 행사장에서 룩셈부르크를 국가로써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다양한 기술의 융합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룩셈부르크가 주변 국가들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고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지에 대하여 언급했는데, 정말 놀라웠다. 이러한 강점들이 룩셈부르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성장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술적인 면에서는 룩셈부르크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거대한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MUDAM의 관장으로서, 외국에서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 룩셈부르크 출신의 예술가나 인디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차별화된 전략이 있는가? 아니면 룩셈부르크의 작은 시장 규모 때문에, 그들이 해외에서 계속 활동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가?
코터: 예술가들은 시장을 쫓지 않는다. 반드시 이해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미술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고 미술산업에서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 즉 예술가들은 사람과 연결되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가진 곳에서 살며 작업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네트워킹은 스튜디오 지원, 다른 예술가들, 제작자들, 특수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지만, 결국 이는 모든 사물이 연결된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룩셈부르크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예술가들은 여기서 충분히 일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그 네트워크가 단순히 미술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적인 직업에 관한 것 일수도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네트워크를 움직이는 시장만으로 귀결되지 않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시장은 언제나 예술가들이 있는 곳에서 발전한다.
그런 면에서 뉴욕은 시장이다. 미술시장이 된 것은 지극히 정상이지만, 이는 곧 뉴욕에 예술가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LA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많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곳이며 LA의 미술시장은 어떻게 보면 다른 도시에 비해 좀 더 새롭고 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경우, 시장이 형성되기 전부터 예술가가 존재했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시장이 존재하기에 예술가들은 어디서나 작품활동을 할 수 있으며 선택에 따라 강사나 어시스턴트로서도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 결국 시장은 고객들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예를 들어, 홍콩의 아트 바젤은 중국,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에서 엄청나게 많은 수집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홍콩은 금융허브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아시아인들이 유럽의 예술가들을 위한 플랫폼이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알고 있고 한국에서도 배웠듯이, 한국은 수세기 동안 이어져온 위대한 예술가들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사실은 곧 작품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공생관계와도 같다.
그러한 차원에서 나는 시장을 위한 아트페어를 제안하는 것은 오히려 순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이 더 발전할 수 있는 풍부한 인프라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시장이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적어도 나의 견해는 그렇다. 시장은 예술가들의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인 셈이다. 다시 룩셈부르크로 돌아가보면, 이곳의 시장 규모는 작다. 갤러리들은 수집가들 때문에 번창한다. 몇몇 예술가들은 여기서 활동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한국이나 중국처럼 시장 규모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MUDAM 컬렉션을 위해 함께 일하는 아티스트가 있지만 실제로 그녀는 벨기에에 거주한다. MUDAM까지는 차로 약 3시간정도 소요된다. 그녀의 가족도 여전히 벨기에에 거주하고 있다. 예를 들어 뉴욕 북부에 살면서 맨하탄까지 차로 약 3시간정도 소요된다. 그러므로 국경을 넘나드는 일은 룩셈부르크에서만큼은 정말 다르다. 그래서 룩셈부르크가 더 흥미로운 곳이라고 생각한다.
정: 국립 박물관으로서, 루브르 미술관의 모나리자나 오르세 미술관의 모네 그리고 마네의 명작들에 견줄만한 MUDAM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룩셈부르크에서 국립 미술관과 관장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인가? MUDAM은 전시회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가, 아니면 다른 나라로부터 더 많은 예술적, 문화적 관심을 끌고 룩셈부르크의 다양성을 홍보하기 위한 일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가?
코터: 엄밀히 따지자면 둘 다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지금 MUDAM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아직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우린 아직 역사가 짧은 미술관이다. 우리는 몇몇 주요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의미 있는 작품을 보유하고 전시하고 싶고 현재 그것을 진행하는 과정에 있다. 전시의 관점에서 보자면, 내가 큐레이터 팀과 함께 준비하고 있는 모든 전시는 곧 우리가 현대 작품을 보는 시각, 즉 가장 최우선적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작품을 서로 다른 각도를 통해 보는 시각의 산물인 셈이다. 미술의 역사로 풀어내자면, 현대 미술은 실제로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우리가 흔히 일컫는 모던 아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모던 아트는 1863년 마네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럼 우리는 과연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현대미술의 시대로 판단해야 할까? 1960년대는 미술 제작에 있어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으로 거대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변화를 한번 더 겪고 있다. 시대는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향후 21세기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21세기의 미술관이 존재하게 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21세기에 문을 연 박물관들이 있지만, 실상은 여전히 20세기의 작품들을 구입하고 전시하고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시회를 통해, 우리는 미술, 아티스트, 아이디어, 그리고 더 큰 규모의 전시회를 보게 될 것이다.
그 안에서, 나는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온 다양한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는 특혜를 바탕으로 문화와 역사의 다양성과 관련된 예술적 접점을 가진 룩셈부르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글로벌한 세상에 살고 있으며 여기엔 특수성이 존재한다. 다시 MUDAM의 방문객들의 정체성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관람객들은 결국 전세계에서 오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결국 관건은 우리가 항상 어떠한 주제와 방식으로 전시 프로그램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되고 그들이 예술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정: 미술 산업에 대한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다년간 IT 업계에 종사하다 보니, 미술 산업을 좀 더 기술적인 차원에서 많이 접근한다. 최근 들어, 많은 스타트업들이 미술 산업에 대한 다양한 기술적 접근과 솔루션을 만들기 시작하고 있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를 통해 예술작품의 일부를 소유할 수 있다. 또는 중간 개입자 없이 더 나은 지불 방식과 추적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미술품 거래방식과 거래 생태계를 개선하고 보다 투명한 방식으로 바꾸려는 프로젝트도 있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예술가들은 불투명한 시스템에서 공정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 미술 산업에서의 수년간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위작산업이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바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코터: 나는 현존하는 작가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위작에 대해 전문가들만큼 잘 알지는 못한다. 사실 위작이라는 것은 이미 작고한 과거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한 행위들이다. 그래서 나는 위작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90년대 초에 피에로 만조니의 전시회에 참여하여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우리는 매우 유명한 큐레이터와 함께 전시회를 준비하며 수집가들로부터 엄청난 요청을 받았다. 그들은 만조니 전시회에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만조니 소장품을 포함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에는 팩스로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하던 시절이었는데 수집가들이 보내온 작품들의 팩스와 사진만 봐도 만조니의 오리지널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소장품이 전시회를 통해 검증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25년 전의 일이다.
지금의 위작 행위는 그 당시보다 훨씬 더 정교하다. 나는 온라인 상의 잦은 구매와 판매가 엄청난 위험요소를 동반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진위여부의 문제다. 우선적으로 작품에 대한 진위 증명서가 발행되어야 한다. 물론 증명서 역시 위조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미술 시장이 거대해지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미술품은 이미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모든 부분에서 거대한 산업을 만들어냈다. 한편으로는 조금 무섭기도 하다. 우리가 더 많은 역사적 작품들을 검증한다면, 미술관 관장으로서 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부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MoMa, 루브르, 테이트, 그리고 관련된 모든 종사자들이 이미 이를 시행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기술이 사람들의 일과 공간을 바꾸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한다.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경우, 한 계좌에서 다른 계좌로 이체할 경우 자금의 보안을 확보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어느 정도 있다. 그러나 나는 실제 미술작품에 대해서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작품은 실질적으로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를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은 매력적인 영역이다. 우리가 지금의 디지털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정: 전통적인 미술사적 관점에서 볼 때, 기술은 동시에 혁신과 위협으로 비춰질 수 있다. 기술은 작품 위조에 악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만약 위작이 원본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기술적인 완성도를 자랑한다면, 수집가들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구매할 가치가 있는 셈이다. 기술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미술품 위작도 진일보할 것이다. 미술 산업 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급격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코터: 매우 광범위한 질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현 미술산업은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에 영향을 받고 있다. 나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이 책들은 매우 흥미롭다. 기술의 현주소를 다시금 알려주면서 한편으로는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결국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에 대한 가능성이 열어두었다. 즉 인간이라는 존재는 기술이 지닌 잠재력을 통해 점점 더 발전하고자 하는 흐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인간이 점점 더 무관하게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까? 글쎄, 그건 결국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뛰어난 학습 능력으로 무장하여 그 지배영역을 빠르게 넓혀가는 인공지능의 세계 안에서 인간은 이류처럼 퇴색해가고 있다.
하지만 이는 먼 미래의 이야기에 가깝다. 현재,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예술의 공유 가치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아날로그나 디지털이라는 이유로 예술을 보고 싶어하거나 예술에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아니다. 지금의 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미술작품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 가에 대해 자문하는 것에 더 가깝다. 이는 곧 우리 자신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의 관심사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지. 인간이라는 존재를 묻는 궁극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스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른다. 예술은 우리가 스스로 하여금 심오한 질문을 던지거나, 혹은 색깔을 통해 우리의 기분을 바꾸거나 다양한 모습들로 우리의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자극한다.
우리가 감상하는 모네의 그림은 100여 년 전에 그려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작품들을 사랑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뭔가를 발견한다. 예술가들은 바로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전히 모네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지만, 그들은 예술적인 언어를 통해 좀 더 기술적으로 발전된 형태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들은 그림 그리는 것,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미술은 전통과 혁신의 문제다. 내가 이해하기에 이는 한국의 문화와 예술의 지속적인 가치를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예술에 관한 모든 것이 완전히 디지털화 된다고 하여도, 우리는 그 시대의 역사를 거치며 만들어진 예술작품에 대해 여전히 감사할 것이다. 우리에게 작품을 구입하고 전시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에 가는 것을 즐긴다.
많은 미술관 관장들은 예술작품전시를 통해 디지털 기술과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세대와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이들로 하여금 미술작품에 대한 접근과 이해를 돕는 일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우리가 예술 작품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이다. 젊은 세대들이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경험인 셈이다. 이것이 지난 10년 이상, 미술관이 작품과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우리가 지금보다 이전에 만들어진 작품에 대해서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미술작품들은 사람과 사회 그리고 소속된 장소를 의미한다. 우리의 경우,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하러 미술관을 방문한다. 이는 자기 스스로를 성찰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 미술은 상품이 되었고, 이전의 미술을 바라보는 시선과는 다른 시대가 되었지만 상품으로써의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미술관이다.
정: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활동했다. 당신의 관점에서 본다면 시간과 장소 그리고 하고 있는 일과 상관없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아티스트의 본질은 무엇인가? 많은 아티스트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결국 그런 이유로 아티스트들은 상업적인 작품들을 치중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아티스트들은 어떤 진로를 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가?
코터: 그것은 전적으로 아티스트들에게 달려있다.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만약 작품을 통해서 자신이 지향하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고 느낀다면, 그들을 위한 시장이 분명 존재한다. 렘브란트가 그랬다. 그는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누구나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감상할 수 있고 그의 작품에 감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렘브란트는 길드, 교회, 그리고 개인 고객들을 통해 활동 자금을 지원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계속 원했고 렘브란트는 작품이 팔릴 때마다 꾸준히 고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이 아티스트의 역사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다양한 집, 궁전, 그리고 교회를 위한 작품 제작을 의뢰 받았다. 결국 그들은 시장의 필요를 충족시켰던 것이다. 그들이 더 이상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 없을 때까지 그들을 필요로 하는 시장은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예술가를 정의하는 것은 그들의 작품과 작품의 지속성이다. 하지만 그들이 시장을 만족시키기 위해 너무 많은 일을 함으로써 사람들이 그들에게 원했던 본래의 모습과 작품의 취지가 변질될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수집가나 관객들을 포함한 대중들을 지속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에 대해 자문하는 능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에는 대중들이 작품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며 구입하던 호황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 후 미술작품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2, 30년 동안 관객의 취향은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은 여전히 작품을 만들고 있었고, 이러한 작품들은 또 다른 30년이 지난 후에 갑작스런 대중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작품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예술과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새로운 세대와 함께 새로운 작품들을 발견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예술가의 삶을 되돌아보며 시장도 인정했던 그들의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그것이 나에게는 인류와 세계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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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DAM은 룩셈부르크에서 2006년 개관하여 회화, 드로잉, 조각, 사진, 디자인, 패션, 뉴미디어 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룩셈부르크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한국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소장품 전이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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