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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opal Mar 24. 2019

[전시] 박관택, 여백

미술관의 역할-1

얼마 전 인사 미술공간에서 진행됐던 박관택 작가의 개인적을 다녀왔다. 

전시 구성은 다소 특이하게 돼있었는데, 전시장에 들어간 순간 눈에 보이는 것은 전시 제목 말 그대로 '여백'

아무 그림도 걸려있지 않은 그곳에서 관람객은 UX 손전등 라이트를 통해서만 작가가 나열해 놓은 그림을 확인해볼 수 있다. 

인터넷이 널리 상용화되기 전인 1983년에 일어난 대한항공 여객기 007편 격추 사건을 중심으로, 동시대 다른 정보들의 검색 결과가 여백 공간에 흩뿌려져 있었다. 관람객은 손전등을 비춰보며 정보를 탐색하는 '탐색자'가 되어 전시 공간을 헤매게 된다. 


사실 이곳에서의 전시 동선이란 정해져 있지 않다. 

말 그대로 내가 여러 정보들을 탐색하는 하나의 웹 상의 마우스가 되어 공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다소 특이한 전시 콘셉트에서 나는 그림 혹은 정보들을 보기 위한 손전등이 하나의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으로 느껴졌다. 무언가를 찾고 싶어 스마트폰을 들면 무수히도 많은 정보들이 눈 앞에 펼쳐지지만 막상 또 그것을 내려놓게 되면 아무것도 없는 무無, 즉 여백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뿐만 아니라 전시장에 있어서 그런지, 전시와 그림, 갤러리 등 그림을 보는 공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어떠한 경험과 정보를 얻게 되는 것일까? 

이미 해당 작가가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야 미술관에 있는 도슨트나 캡션, 오디오 가이드 등 불필요한 것이 너무 많다고 느낄 수야 있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처음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으러 가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기존 갤러리에서 준비한 것들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대체로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 '이스트 빌리지' 전시를 보러 갔을 때에도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 등 동시대 많은 거장들의 생활과 작품을 보고 경험하러 갔는데, 그래서 뭐라고? 하는 거꾸로 호기심들만 가득 생겨 집에 돌아와 이스트 빌리지에 대한 정보를 더 찾을 수밖에 없었다.  

갤러리가 모든 정보를 다 제공해주는 구글은 아니지만, 최소한 관람객이 그에 대한 어떤 경험과 최소한의 정보는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내가 너무 많이 바라는 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재미없는 도슨트 프로그램이나 기타 가이드들을 제외하고서라도 그 안에서 좀 더 풍부한 경험들을 제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전시 '여백'에서 느꼈던 것처럼, 내가 정보를 찾고자 하는 의지, 손전등을 놓게 되는 순간 다시 여백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다른 미술관에서도 많은 것들을 보고 손전등을 내려놓았을 때 더 이상 여백이 아닌 다양한 색체가 그 안에 남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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