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필요했던 어른들
꼭 누군가와 이성적 만남을 갖지 않아도 저는 대체로 저와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분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최근 소위 '꼰대' 같은 분들과는 저도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곤 하지만, 그래도 좋은 말씀을 편안히 해주시며 저에게 따듯한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왠지 모를 위로를 받게 됩니다.
실제 그전에 만났던 남자 친구들도, 대체로 저와 나이 차이가 어느 정도 나는 편에 속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에게 '이제 내 또래 좀 만나고 싶다'라는 소리도 했을 정도니까요. 그들이 단순히 나이가 많아 좋아했던 건 아녔겠지요. 저는 딱히 뚜렷한 이상형도 없어서 몇 안 되는 연애지만 모두 성향이나, 겉모습이 천차만별이었습니다. 하지만 유일한 공통점이 있었다면 바로 일정 년수 이상의 나이 차이였습니다.
저는 왜 그들에게 이성적 호감을 느끼게 되었을까요? 아니 그 이전에, 왜 그들에게 인간적 호감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물론 나이에 따라 지혜나 혜안이 비례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른'이라는 타이틀이 저에게 주는 포근함은 있습니다. 여태껏, 저를 호되게 혼내는 어른은 없었습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할 때 '이쪽으로 가는 게 어때?'라고 이야기해주는 어른 또한 없었고요.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가끔 생각해보면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부모님은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저의 선택을 존중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하지만, 가끔 따끔한 잔소리나 강력한 반대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복에 겨운 우스운 이야기지요.
저는 중학교 때 자퇴를 했습니다. 학교에 왜 있어야 하는지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덩달아 당시 고등학교 자퇴 후 18살에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한 청년의 기사를 읽은 것이 결정적인 트리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자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당연히 부모님은 반대하셨지만, 약 3개월 동안 저는 부모님을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 건지에 대해서 열심히 토로하며 말이죠. 물론 자퇴를 하고 나서 제가 이야기했던 계획 거의 대부분을 실현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꿈과도 같은 이상적인 구름 잡기식 이야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넘어가 주신 부모님께 새삼 감사드립니다) 이미 부모님의 허락을 받은 터라, 자퇴 의향을 밝혔을 때 학교 선생님은 힘없이 알겠다며 도장을 찍어주셨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 최고로 잘한 것이 당시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만약 그 선생님이 저에게 '왜 나가려고 해?' 혹은 '앞으로의 계획이 뭐야?'라고 한마디만 물어봐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죠.
그 한마디가 제 인생을 바꿔주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지만, 그 딱 한 마디 듣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곤 합니다. 자퇴한 덕분에 저는 또래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나이 때 할 수 있는 것들을 놓치면서도, 그 또래 경험의 부재가 주변인들의 걱정만큼 치명적인 결점으로 다가오지도 않았고요. 그러나 그만큼 겪지 않아도 되는 다른 경험이 일정 부분 채워지긴 했습니다. 이 또한 저의 자양분이 되었으리라 생각하지만, 모든 것을 받아들인 지금의 저로서는, 과거의 제가 가끔 안쓰럽기도 합니다. 제가 그 시절 저의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굉장히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그럴 때면 과거의 저를 '너무 어렸다'라고 탓하기보다, 제 주변에 부재했던 어른들을 아쉬워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정상적인 교육 절차를 밟아오지 않은 제가, 궁극적으로 뭐 하고 싶어? 질문을 받으면 매번 '교육'이라고 답하곤 합니다.
딱딱하게 학문적인, 학교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더라도 좋은 어른들이,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들이 필터링 없이 냉철하게 본인들의 경험담을 공유해 줄 수 있는 그런 교육 공간을 설립하고 싶다고 말이죠.
최근 '꼰대'라는 말이 늘어 아직 고지식하고 본인의 경험이 마치 삶의 정답처럼 이야기하는 어른들이 모든 '어른'의 표상인 것처럼 보급되어 가끔 마음이 아픕니다. 분명 좋은 어른도 많거든요. 많다고 믿고 싶거든요.
그래도 살다 보니 그런 좋은 어른을 몇 번 만나게 되기도 했습니다. 꾸준한 관계를 이어나가지 못하더라도 그분들의 털털한 이야기를 듣고, 또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럴 때마다 항상 또 다짐하게 되기도 하죠.
나도 좋은 어른이 되어야지. 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