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야한 농담의 이유

가짜 어른이 되기 위한 노력

by jiaopal

저는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정확히는 18살에 동네에 있던 단골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여러 회사 및 창업을 거쳐 지금의 제가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사회적으로는 어린 나이에 속하지만, 그보다 더 어릴 적이었던 19살, 20살 때에는 소위 어른스럽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성숙(한 척)해 보이는 옷을 입고 항상 짙은 화장과 높은 구두를 신었고, 사람들을 만날 때 제 또래들이 좋아할 법한 것들을 오히려 싫다며 손사래 쳤었죠. 당시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00 씨는 참 성숙해요- 혹은 참 어른스러워 보이네요- 라는 말을 무조건 저에게 하곤 했습니다. 다른 건 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도, 제가 가짜 어른이 되기 위해 했던 것 중에 지금 돌이켜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지나친 야한 농담들'이었죠.


처음엔 어른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다 '어쭈? 얘 봐라?'라는 반응이 재밌었겠지요. 그러다 보니 제가 먼저 야한 농담을 던지는 때가 늘어났습니다. 점점 '얘 재밌다! 얘 나이에 비해 아는 게 많아!'라는 노골적인 반응에 더욱더 의무적으로 하게 되었고, 그 의무감은 곧 시간이 지나 저의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누굴 만나든, 어느 자리에 있든 은근슬쩍 그런 농담들을 던지게 된 것이지요. 오죽하면 당시 만나고 있던 남자 친구가 그러한 제 언행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대 중반이 될 무렵, 한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직원이 저의 또래 혹은 5~6살 터울의 선배들이었고, 저는 또래 직원들끼리 모여있을 때면 여전히, 그리고 역시나 더러운 농담들을 쉽게 뱉곤 했습니다.

한 번은 회식 자리였습니다. 언제나처럼 즐겁게 술을 마시며 일 얘기와 더불어 실없는 농담 따먹기가 오고 가던 자리였습니다. 분위기에 휩쓸려 저는 평소보다 조금 더 수위가 높은 농담을 뱉었죠. 제가 농담을 뱉자마자 다 함께 깔깔깔 웃어댔습니다. 저는 역시나 만족감을 느끼며 함께 웃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옆을 보니, 당시 제 직속 상사였던 몇 살 터울 안 나는 한 선배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차- 싶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그 선배는 무척이나 대수로워 보였습니다. 잠시 멈춘 상태가 되어 무언가 생각을 하더니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습니다.


‘근데.. 이런 농담을 다른 이성이 했으면 어땠을까?’


그 한마디에 모두가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네?’라고 반문했습니다.


‘방금 00 씨가 이야기한 농담을 반대 이성이 했으면 과연 반응이 어땠을까 궁금해서.’


회식 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물론 마무리는 다들 웃으며 헤어졌지만 저는 그 선배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사실 말보다는 그의 표정이 계속해서 아른거렸습니다. 약 5~6년간 야한 농담을 하면서 처음 접해보는 상대의 표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부분은 어이없어하며 웃거나, 오히려 저를 존경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눈빛들이 대다수였는데 이제 와서 뜬금없이 경멸 섞인 표정이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안 했지, 라는 쓸데없이 억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머지않아 지인과의 창업을 위해 그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한동안은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진지하게 저의 미래에 대해 고민도 하면서 말이죠. 회사 법인 설립이 이뤄지기까지 약 반년 정도의 준비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 반년을 일과 미래를 설계하는 데 모두 집중했지만,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그 선배의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한창 진지한 생각을 할 때니, 그 선배의 표정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전보다 더 진지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곤 문득. 정말 재미없게도 ‘내가 왜 그랬지?’라는 생각이 뒤늦게서야 들었습니다.


왜 나는 그런 말들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 했을까, 왜 그래 보이는 척하려 했을까. 물론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도, 저는 동시에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위에서 얘기했다시피 저는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었죠. 실제 어른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농담들은 목적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습니다. 6년이 지나 그 목적을 다시 찾아보니, 이미 그것은 저에게 의미가 없는 목적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가짜 어른에서 조금은 진짜 어른으로 바뀌게 된, 웃긴 계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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