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디스토피아를 좋아하는 이유

나약함의 인정

by jiaopal

제목이 강렬하네요. 디스토피아라기보다, 저는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등 그 장르를 이야기할 때 조금 세게 이야기하기 위해 '인간이 파멸하는 장르를 좋아한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저도 인간입니다만, 같은 종족이 파멸되고 파괴되는 것을 볼 때 느껴지는 무언의 희열감이 있기 때문일까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제가 굉장히 파괴적인 사람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부연설명을 덧붙이자면, 저는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스스로 자멸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거나 아무런 힘도 없이 외부의 힘에 의해 처절하게 파멸되는 장면의 나열을 좋아합니다. 영화 '괴물', '우주 전쟁' 혹은 기타 자연재해 영화로 예를 들면 이해가 더 편히 갈 것 같습니다.


저는 왜 이런 장르를 좋아하게 되었을까요? 사실 이 답은 찾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앞에서 부인하긴 했지만 정말 내면에 파괴적인 성질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모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모두 나약함을 절제하도록 교육받았습니다. 아닌 분들도 있겠지만, 최소한 제가 살아가며 느끼는 이 사회 안에서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상한 반골 기질이 있는 것인지, 여자니까 잘 운다, 힘이 약하다는 어쩌면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기질 또한 사회적으로는 부정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왔습니다.

일부러 눈물을 잘 보이지도 않고 무거운 짐들을 번쩍번쩍 들기도 했죠. 이건 제가 여자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제가 남자였어도 마찬가지로 남자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여러 사회적 기대를 어떻게든 탈피하려 애를 썼을 것입니다. 비단 성적인 부분 때문이 아니더라도 쉽게 무너지고, 나를 비하하는 소리를 하며, 우울하다는 표현 혹은 슬프다는 표현으로부터 그리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더 깊게 파고들자면, 어렸을 적부터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더더욱 그렇게 형성되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에게 칭얼대지 않고, 친구에게 칭얼대지 않고, 사회적으로는 어른스러워 보여야 하는. 그래야 사회적으로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물론 정말 친한 친구에게는 가끔 칭얼대기는 합니다만, 제 내면에 숨어있는 깊은 나약함까지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이 친구에게도 피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날을 잡고(?) 저 혼자 펑펑 우는 날이 있습니다. 운동하는 사람으로 치면 치팅 데이나 마찬가지겠지요. 펑펑 울어 내 모든 약 감정과 악감정을 토해내고 나면 마음이 한껏 후련해집니다. 그리고는 다시 정비하죠. 눈을 날카롭게 뜨면서 말입니다. 여하튼 이렇듯 자의로, 타의로 절제 받길 강요당한 저의 나약함은 이런 곳에서 발현되곤 합니다.


굳이 인간이 파멸해야 하는 이유까지는 없지만, 우리의 나약함이 극단적으로 표현되는 장면들을 보면 알게 모르게 속으로 '그래, 저게 우리지.'라는 생각도 하곤 합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우리는 모두 나약한 존재다.'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꼭 종교적인 맥락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인간이 100% 나약하다는 극단적인 도출보다, 나약함이란 우리에게 분명히 존재하는 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분명한 모습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표현하지 않으려,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러면 그 한순간 나약함의 표출로 인해 그동안 열심히 이 악물고 해왔던 모든 것들이 무너질 것 같으니까요.


저는 미국 드라마, 미드를 좋아하는 편인데 그걸 볼 때마다 가끔 부러움을 느끼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다 같이 손잡고 각자의 나약함을 이야기하는 모임 장면이 나올 때입니다. 누군가 'Hello, I'm Samantha, and I'm alcoholic(안녕, 난 사만다고 난 알코올 중독자야)'이라고 하면 다 같이 'Hello, Samantha(안녕, 사만다)'라고 인사를 건네줍니다. 그것이 실제 재활 혹은 심리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의 관습 같은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모임이 더 선행되고 대중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심리 치료나 심리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일부분 나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데, 그것이 아직 쉽게 용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신 주변을 돌아보면, 저 포함해서 사주를 종종 보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사주'가 한국에 있는 심리치료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이유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의 모든 고민과 생각을 털어놓은 것이, 마치 고민 상담과도 느껴지곤 합니다.


그렇다고 사주가 더 널리 널리 선행되어라! 할 수는 없으니, 제 소박한 희망 사항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짜고짜 눈물부터 쏟아내는 모임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괜찮아, 우리는 약하니까.라고 서로에 대한 나약함을 인정해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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