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이 낳는 불안함
저는 항상 시간을 의미 있고,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잠시 공중에 뜨는 시간조차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려 이동할 때면 지하철 안 그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굳이 뉴스를 찾아보고, 저에게 유용한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며 조금의 시간이라도 다량의 정보 습득을 위해 빽빽하게 채워나갔습니다. 그렇게 잠들기 전까지 온종일 제 뇌에 꾹꾹 눌러 담아 놓고 나면, 나름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흔한 말이지만, 누구에게나 전부 공평하게 주어지는 유일한 것이 바로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 시간의 사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모두 개인의 몫이긴 합니다.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니, 남들보다 효율적으로 써야 그 시간을 '잘 썼다'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당최 잘 쓰는 시간이란 무엇인지 너무나도 어려운 논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저의 기준에서 시간을 잘 쓴다는 것은 그 시간을 최대한으로 절약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을 아끼고 아껴, 1시간 동안 할 수 있는 2가지의 일을 30분 동안 모두 해내는 것이 저에게는 시간을 잘 쓴다는 의미였고 궁극적으로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시간을 아끼려 했는지 사실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꽉꽉 채워 쓴다는 것은 결국 시간을 아낀다는 것과 같은 건데, 시간을 아끼고 아낀 후 남은 시간에는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요? 더 많은 것들을 하려고 했을까요? 더 많은 것들을 하고 난 후 저는 결국 무엇이 되려고 했을까요?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투성입니다. 제가 시간을 아끼려고 한 이유는 말이죠. 시간을 아끼면, 목표하는 바가 비교적 빨리 이루어지리라 생각했을까요? 왜 그리도 빠르게 이루려 한 것일까요? 무언가를 빨리 이룬다는 것은 왜 그리도 중요한 것일까요?
어느 순간 시간을 아껴야 해!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한 저 자신이, 그런 저를 위로하기 위해 아니야, 쉬고 싶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쉬어도 돼.라는 또 다른 저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때부터는 이동할 때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저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며 일에 관한 생각을 잠시 멈추고 저 자신을 쉬어 주게 했습니다.
제가 시간을 열심히 활용하고 싶을 때는 한도 끝도 없이 집중해서 그 시간을 사용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 시간을 붙잡고 있는 저를 잠시 놓아주기도 했죠.
무엇하나 마음 편히 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쓰는 것도, 쓰지 않는 것도 모두요. 시간을 쓴다는 말 자체가 애초에 모순적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시간은 그냥 흘러갑니다. 그 안에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내가 사실 무슨 행동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든 시간을 흘러가기 마련이니까요.
대신 그 시간 동안 무얼 하든, 잘하자는 생각은 듭니다. 쉴 거면 아무 생각 없이 잘 쉬고, 바쁠 거면 정신없이 잘 바빠지자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