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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아서 병난 여자 Jun 20. 2020

02. 엄마가 되면 다 요리사가 되는 줄 알았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1의 마지막 회에서는, 생존 가능성이 없는 한 환자가 나온다. 의사마저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말했고, 부모 역시 그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래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입었던 배냇저고리를 가져다주고, 뭐, 여차 저차 해서 기적처럼 환자는 살아난다. 그래, 여기까지는 눈물겹고, 감동적이었다고 치자.  


  그렇게 기적처럼 살아나서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날.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이 엄마는 아들에게 뭐가 제일 먹고 싶냐고 묻는다. 그리고 설마, 설마 했는데 역시나 아들은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라고 대답을 한다. 그래. 물론 감동적이고 훈훈한 마무리다. 


  하지만, 드라마 속 아들의 대사를 들으며 엄마인 나는 생각한 것이다. 

  ‘아니?! 엄마도 지 병간호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집에 가자마자 또 김치찌개 끓여서 밥을 대령하라는 거야? 또, 김치찌개 하나만 달랑 끓일 순 없잖아? 이것저것 다른 반찬도 해야 되고, 또 김치찌개는 오래 끓여야 제 맛인데, 언제 집에 가서 언제 밥을 하라는 거야? 엄마를 꼭 그렇게 고생시켜야겠어?’ 

  라고 나는 혼자 억울해하고 있었다. 

  

  엄마가 된 이후, 나는 ‘엄마 밥상’이라는 말이, ‘엄마 손맛’이라는 말이 싫어졌다. 그 말은 순전히 받아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나오는 말이지, 그 밥상을 차리는 엄마의 입장은 전혀 담겨있지 않은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로 자식들에게 밥 한 끼 손수 차려주는 것이 행복하고 기쁜 엄마들도 있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렇지 않다. 이렇게 고백하기까지도 참 오래 걸렸다. 밥하기를 싫어한다는 것은, 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밥을 차려주지 못하는 것은,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시선이 그랬고, 나 역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밥을 잘 차려주는 다른 엄마들이 부러웠고, 그러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럽고, 주눅 들었다. 우리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잘 못 얻어먹고사는 것 같아 미안하고 때로는 안쓰러웠다. 그 모든 짐을 엄마라는 이유로 내가 짊어져야 했다. 

 

  결혼을 하면서도, 아이를 낳기 전에도 나는 밥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고단함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삼시 세 끼. 너무나 당연하게 엄마의 밥상을 받고 살면서 몰랐던 것을 엄마가 된 이후에야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나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삼 남매를 낳은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다양한 밥상을 차릴 수 있었을까. 엄마의 머릿속 어디에 그렇게 다양한 국과 찌개와 반찬이 들어 있는지, 나는 아직도 신기할 따름이다. 어떻게 엄마는 날마다 세 아이의 도시락을 두 개씩 싸줄 수가 있었을까. 어떻게 겨우 전기밥솥 하나로 그렇게 촉촉하고 부드러운 카스테라를 만들 수가 있었을까. 그 모든 궁금증을 뒤로하고 남는, 가장 큰 궁금증과 미안함. 

엄마는 그 긴 세월 동안, 무슨 마음으로 밥상을 차렸을까. 

  

  엄마가 되면 당연히 요리사가 되는 건 줄 알았다. 우리 엄마처럼 척척 나도 밥상을 차려낼 줄로만 알았다. 어림도 없는 소리. 요리 실력은 절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요리라는 것에 대해 아예 무지했던 나는 반찬 하나 하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지도 몰랐고, 이렇게 머리를 써야 하는지도 몰랐다. 밥 하는 일이 이렇게 사람 잡는 일인지도 몰랐다. 

 

  결혼 1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나는 칼질이 서투르고, ‘각종’ 양념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겠으며, 소금으로 간을 하는 반찬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레시피를 봐야만 요리를 할 수 있다. (레시피 없이도 척척 양념을 하는 사람은 모두 천재다!) 매끼 식사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오늘 뭐 먹을까?'라는 생각에 스트레스받고,  아이들이 '오늘 저녁 뭐예요?'라는 말에 짜증이 나며 '아, 배고프다'라는 말이 무섭다. 


  얼마 전,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공부하기가 너무 싫어요!” 

  그래서 나도 얼른 대꾸했다. 

“어머?! 채민아. 엄마랑 똑같다. 엄마는 요리를 너무 잘하고 싶은데 요리하기가 싫어!” 

  

  어느새 마흔 중반이 넘은,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지만, 결혼과 동시에 주부로 살아온 지 12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밥하는 일이 너무 싫다. 나도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좋고, 그중에서도 우리 엄마 밥상이 제일 좋다. 하지만 그래서 요즘 친정 엄마를 만날 때마다 말한다.  

  “엄마. 뭐 힘들게 밥하고 그래요! 우리 나가서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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